"우리 생전에 높은 도덕성의 대통령 한번 봤으면"
대선때 문재인 후보를 찍었던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12일 "진정으로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국민과 함께 웃어주고, 아무런 사심 없이 국정을 운영하는 높은 도덕성의 소유자인 대통령을 우리 생전에 한 번은 봐야만 하는 게 아닌가"라며 박근혜 당선인이 최소한 탕평과 대통합 공약만은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
이준구 교수는 이날 오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새 정부에 거는 기대, 그리고 우려'라는 장문의 글을 통해 "우리는 그 동안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대통령을 갖는 행운과는 인연이 멀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자신이 왜 박 당선인을 찍지 않았는가를 상세히 밝힌 뒤, "내가 지지하지 않았던 후보가 대통령으로 뽑히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5년 전만큼 불안하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그때는 한반도대운하니 747이니 하는 허황된 공약이 나를 몹시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것들을 지키려 든다면 우리 사회와 경제에 엄청나게 큰 혼란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또한 마치 점령군이나 되듯 모든 것을 뜯어고치겠다고 허장성세를 부리는 인수위원회를 보면서 또 다시 불안감이 밀려옴을 느꼈다"며 5년전 MB정권 출범 때를 회상했다.
그는 이어 "이번 박근혜 당선인의 캠프에서는 그런 불안감이 느껴지지 않아 다행이다. 또한 박 당선인의 발언 중에는 적극적으로 기대를 걸어볼 만한 대목이 있어 보인다"며 "예를 들어 탕평과 대통합을 주요한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것은 나의 기대를 한껏 부풀게 만든다. 내편 네편을 철저히 가르는 패거리정치로 일관했던 MB정부 5년 동안 갈기갈기 찢어졌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유일한 방책이 탕평과 대화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박 당선인이 내건 복지 공약도 기대를 걸어봄직 하다고 생각한다. 그 약속을 지키는 데 필요한 엄청난 재원을 성공적으로 마련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지만, 만약 성공적으로 그 약속을 지킨다면 우리 사회의 복지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 분명하다"며 "뿐만 아니라 국민의 손톱밑 가시를 빼주겠노라는 박 당선인의 발언에도 기대가 크다. 국민의 아픈 가슴을 쓸어주고 불편한 것을 모두 해소시켜 주겠다는 약속이니만큼 그 약속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나아질 테니 말이다. 자신은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원칙을 갖고 있다는 박당선인의 말에 속는 셈 치고 한 번 기대를 걸어보려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새 정부에 대한 기대에 가득 차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를 가장 걱정스럽게 만든 것은 인수위 대변인과 헌재소장에 지명된 사람들의 됨됨이"라며 "의문의 여지없이 강경 보수 색채를 지닌 그들을 선택한 것은 박 당선인이 내건 탕평, 대통합과 전혀 걸맞지 않는 일"이라며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과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 내정을 질타했다.
그는 또 "요즈음 언론보도를 보면 대통합 인사의 모범사례로 호남출신 총리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나는 이런 말이 호남의 민심을 달래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화나게 만들 것이라고 본다. 호남총리는 과거 대부분의 경상도 출신 대통령이 즐겨 쓰던 케케묵은 수법이 아니던가?"라고 호남총리론을 힐난했다.
그는 박 당선인의 언론정책에 대해서도 "나는 우선 박 당선인이 MBC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주목해 보려고 한다"며 "만약 또 다른 정권의 하수인으로 MBC를 이끌게 만든다면 그것은 언론을 계속 집권세력의 지배하에 놓아두겠다는 의지로 읽힐 수밖에 없다. 그것이 대통합의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은 구태여 말할 필요조차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박근혜 당선인이 아무리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지금 공약한 것을 모두 지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때는 설사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이해해 줄 용의가 있다"며 "그러나 탕평과 대통합의 공약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모든 권력을 독차지하겠다는 욕심 하나만 버리면 이 공약을 실천에 옮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며 탕평과 대통합 공약만은 반드시 지켜줄 것을 주문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새 정부에 거는 기대, 그리고 우려
솔직히 말해 나는 지난 대선 결과에 대해 크게 실망한 사람 중 하나다. 이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나는 ‘그 나물에 그 밥’인 새누리당 후보에 기대를 걸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 동안 당의 이름이 공화당에서 민정당으로, 거기서 다시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거쳐 새누리당이 되었지만, 이름이 아무리 바뀌어도 내가 보기에 이 당의 본질만은 공화당 그 시절과 아무 다름이 없다. 즉 기득권 세력들이 결집해 변화에 한사코 반대하는 기본 속성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본다는 뜻이다.
누구나 인정하듯, 지난 대선을 보면 공약이란 측면에서 두 후보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약이 더 훌륭하게 보여 2번을 지지했다고 말하는 것은 솔직하지 않은 태도다. 나는 현재 우리 사회에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될 부분이 너무나 많다고 보았으며, 그 일을 과감하게 수행하는 데 누가 더 적합한지의 관점에서 지지 후보를 결정했다.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뀐다고 집권 여당의 체질이 본질적으로 바뀔 리 없으리라는 의구심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1번은 선택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장 간절하게 바랐던 변화는 경제의 민주화였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힘있는 1%와 힘없는 99% 사이의 간극은 나날이 벌어져 가고 있다. 힘있는 1%를 대변하는 재벌들은 MB정부하에서 엄청난 속도로 몸집을 불려 이제는 정치적 권력으로도 통제하기 어려운 공룡이 되어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나날의 삶이 힘에 겨운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은 이들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에 코너로 몰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친재벌로 시작한 이 정부는 힘이 다 빠져버린 임기 말에 새삼스럽게 ‘상생’을 부르짖어 봤지만 이룬 것 하나도 없이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켰을 따름이다.
경제민주화라는 것이 대기업의 손발을 묶어 이들을 비효율적인 조직으로 전락시키자는 말이 아니다. 사디스트가 아닌 바에야 대기업 잘 나가는 꼴이 보기 싫어 이들을 망하게 하자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방면의 전문가가 지적하고 있듯, 재벌 문제와 대기업 문제는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1) 대기업의 효율적 경영 덕분에 우리 경제가 활성화되고 일자리가 늘어난다면 당연히 응원해 주고 도와줘야 한다. 경제민주화, 좀 더 좁게 말해 재벌 개혁이란 것은 대기업의 장점을 죽여 버리자는 뜻이 아니고 재벌들의 파울 플레이를 막는 기본질서를 확립하자는 뜻이다.
일부 재벌들의 파울 플레이는 공평성의 측면과 효율성의 측면 모두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이런 파울 플레이가 나오지 못하는 기본질서를 정착시켜 공평성과 함께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 바로 경제민주화의 목표다. 재벌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때 우리 경제의 효율성이 최고 수준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편법 증여나 일감 몰아주기,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인력 빼오기 같은 불공정한 행위를 뿌리 뽑으면 우리 경제의 효율성이 한층 더 높아질 수 있다. 나아가 시장원칙을 확립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의결권과 이익 청구권 사이의 엄청난 괴리를 해소하는 지배구조 개혁이 필수적 요건이다.
이와 더불어 내가 바랐던 변화는 사회 도처에서 무너져 가고 있는 정의의 기반을 바로 세우는 일이었다. 사회의 소금이어야 할 검찰의 추락은 이제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사회 정의를 바로 잡는 기능을 맡아야 할 검찰에 정권의 보위 역할을 맡기니 그런 비참한 추락을 맛볼 수밖에 없다. 가장 정의감에 불타고 가장 능력 있는 사람 위주로 인사를 해야 하는데, 가장 입맛에 맞고 가장 다루기 쉬운 사람 위주로 인사를 하니 기강이 제대로 설 리 없다. 지난 5년 동안 제 편은 두루뭉술한 잣대로 감싸고 남의 편은 먼지까지 털어내는 편파수사를 일삼은 검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정의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또한 측근 인사를 통해 언론을 장악함으로써 사회비판 기능을 마비시켜 버린 것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지 정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마치 자기네들이 주인인 양 모든 보도를 자기들 입맛대로 통제하기를 일삼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언론자유를 부르짖으며 일어선 양심적인 언론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잔인한 보복이었다. 지금도 해직 언론인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데 이 문제는 해결될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언론이 본래의 사회비판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주장이 그와 같은 잔인한 보복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이 땅의 정의가 땅에 떨어져 버렸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교육의 측면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사교육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대학입시를 기형적으로 만들어 버린 탓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입학지도 교사들마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입시제도는 돈으로 정보를 살 수 있는 부유층 학부모에게만 유리한 구도를 만들었다. 또한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 없이 자의적으로 운영되는 입학사정관제 역시 스펙 쌓기를 시킬 수 있는 부유층 학부모들로 하여금 결정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복잡하고 기형적일 뿐 아니라 불공정하기까지 한 대입제도를 하루 빨리 뜯어 고쳐야만 한다고 믿었다.
또한 국제중으로부터 시작해 특목고와 자사고로 이어지는 ‘저들만의 리그’를 개혁하는 일도 대입제도 개혁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라고 보았다. 만약 자사고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 바람직한 것이라면 왜 공립학교에서는 그런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는가? 돈이 없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공교육에 돈을 더 부어넣으면 되지 않는가? 왜 돈 있는 학부모의 자제는 질 좋은 교육을 받고 돈 없는 학부모의 자제는 질 나쁜 교육에 만족해야 하는지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교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일진데, 이런 투자에 돈을 좀 더 많이 쓴다고 해서 낭비라고 말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만약 공교육은 틀에 얽매어 있기 때문에 창의적인 교육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 공교육의 족쇄를 풀어버리면 될 것 아닌가? 그 족쇄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정부인데 그것 탓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진보적인 교육감들이 육성하려 하는 혁신학교를 정부가 한사코 막으려고 나서는 이유가 무언지도 나는 잘 모른다. 고루한 틀에서 벗어나려는 취지는 자사고나 혁신학교나 똑같을 텐데 왜 하나는 적극 육성의 대상이 되고 하나는 훼방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저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싶어 하는 일부 계층에 영합하려는 의도 말고는 달리 생각나는 이유가 없다.
나는 이런 개혁 과제들을 누가 더 과감하게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판단해 지지 후보를 선택했다. 그러나 이제 선거는 모두 끝났고 이제는 새로이 대통령으로 뽑힌 사람에게 희망을 걸어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비록 어떤 것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 나와 똑같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올바른 방향으로는 나가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아니, 방법론상으로는 내 생각과 판이하게 다르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든다면 나는 흔쾌히 박수를 보낼 용의가 있다.
내가 지지하지 않았던 후보가 대통령으로 뽑히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5년 전만큼 불안하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때는 한반도대운하니 747이니 하는 허황된 공약이 나를 몹시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것들을 지키려 든다면 우리 사회와 경제에 엄청나게 큰 혼란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또한 마치 점령군이나 되듯 모든 것을 뜯어고치겠다고 허장성세를 부리는 인수위원회를 보면서 또 다시 불안감이 밀려옴을 느꼈다. ‘어륀지 파동’이 상징하고 있듯, 고쳐야 할 것 고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지 않고 설익은 개혁을 하겠다고 덤비는 태도가 너무나도 불안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들이 자신의 지도이념으로 내걸고 있는 어설픈 신자유주의가 나를 몹시 불안하게 만들었다. 부자를 더 부유하게 만들어줌으로서 서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만들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적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입증된 사실이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아일랜드에서 행해진 실험은 재정적자나 양극화 심화 같은 부작용만 남겼을 뿐 기대했던 효과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판명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신자유주의 이념의 노예가 된 그들은 당당하게 ‘부자감세’를 경제 살리기의 결정적 카드로 들고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가 점차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부자 편을 든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이번 박근혜 당선인의 캠프에서는 그런 불안감이 느껴지지 않아 다행이다. 또한 박 당선인의 발언 중에는 적극적으로 기대를 걸어볼 만한 대목이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탕평과 대통합을 주요한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것은 나의 기대를 한껏 부풀게 만든다. 내편 네편을 철저히 가르는 패거리정치로 일관했던 MB정부 5년 동안 갈기갈기 찢어졌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유일한 방책이 탕평과 대화합이다. 그 동안 우리 사회의 고질로 자리 잡아 왔고 이번 선거에서도 유감없이 그 위력을 발휘한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안이 바로 탕평과 대통합임도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박 당선인이 내건 복지 공약도 기대를 걸어봄직 하다고 생각한다. 그 약속을 지키는 데 필요한 엄청난 재원을 성공적으로 마련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지만, 만약 성공적으로 그 약속을 지킨다면 우리 사회의 복지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손톱밑 가시를 빼주겠노라는 박 당선인의 발언에도 기대가 크다. 국민의 아픈 가슴을 쓸어주고 불편한 것을 모두 해소시켜 주겠다는 약속이니만큼 그 약속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나아질 테니 말이다. 자신은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원칙을 갖고 있다는 박당선인의 말에 속는 셈 치고 한 번 기대를 걸어보려 한다.
그러나 박근혜 당선인이 막상 정권을 잡았을 때 이 모든 약속을 충실히 이행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일이다. 모든 대통령이 자기가 한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면 지금쯤 우리나라는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어야 마땅한 일이다. 그렇지만 일단은 그 약속을 믿기로 하고 지켜봐 주는 것이 국민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대통령 선거 이전에 갖고 있던 생각은 모두 털어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새 정부의 행보를 주시해 보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새 정부에 대한 기대에 가득 차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를 가장 걱정스럽게 만든 것은 인수위 대변인과 헌재소장에 지명된 사람들의 됨됨이다. 의문의 여지없이 강경 보수 색채를 지닌 그들을 선택한 것은 박 당선인이 내건 탕평, 대통합과 전혀 걸맞지 않는 일이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주는 이미지는 화합이 아니라 대결이다. 특히 헌재소장처럼 우리 사회의 기본질서에 대해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기관의 수장을 그렇게 뚜렷한 이념적 성향의 사람으로 앉힌다는 것은 사회통합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으로 읽힌다.
요즈음 언론보도를 보면 대통합 인사의 모범사례로 호남출신 총리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나는 이런 말이 호남의 민심을 달래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화나게 만들 것이라고 본다. 호남총리는 과거 대부분의 경상도 출신 대통령이 즐겨 쓰던 케케묵은 수법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해서 호남인들이 고맙다고 감격의 눈물이라도 흘린 적이 한 번이라도 있나 묻고 싶다.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만들어 주지 못하듯, 한 사람의 호남총리가 대통합을 구현할 수 없다. 총리로 뽑힌 그 개인은 가문의 영광일지 몰라도 호남인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탕평과 대통합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그것은 지난 선거에서 2번에게 표를 던진 48%의 유권자의 뜻을 받들어 모신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선거 그 자체는 단 한 표라도 더 많은 사람이 독식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대의민주제하에서 그와 같은 방식으로 뽑혔다 하더라도 일단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자기를 지지하지 않은 소수파의 의견도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박 당선인이 바로 이런 의미에서 탕평과 대통합을 부르짖었다면 그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 될 수 있다. 단지 호남출신의 인사를 총리자리에 앉히는 것이 아니라, 호남인이 갈구하던 바, 즉 사회의 변화를 바라던 그 희망을 정치에 반영하는 것이 진정한 탕평이자 대통합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정권들은 힘없는 총리 자리에 타지 출신을 앉히고 권력의 핵심은 모두 자기 지역 출신으로 채우는 전법을 즐겨 써왔다. 박근혜 후보가 진심에서 탕평과 대통합을 부르짖고 있는지의 여부는 이와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지의 여부에 의해 결정적으로 판가름 날 것이다.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나는 우선 박 당선인이 MBC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주목해 보려고 한다. 만약 또 다른 정권의 하수인으로 MBC를 이끌게 만든다면 그것은 언론을 계속 집권세력의 지배하에 놓아두겠다는 의지로 읽힐 수밖에 없다. 그것이 대통합의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은 구태여 말할 필요조차 없다.
헌재소장 자리가 권력의 핵심 중 핵심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히 중요한 자리인 것은 사실이고, 따라서 어떤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려 하는지롤 보고 앞날을 어느 정도 점쳐 볼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헌재소장으로 선택된 사람을 보고 든 느낌은 솔직히 말해 “약간 불안하다”는 것이다. MB정부에서는 출범 초기의 고소영, 강부자의 악령이 임기 내내 그 정권의 주위를 맴돌았다. 새 정부는 그런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앞으로 줄지어 발표될 새 정부 중요 인사들의 면면 역시 헌재소장의 경우와 그리 다르지 않다면 우리의 기대는 곧바로 실망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아무리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지금 공약한 것을 모두 지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때는 설사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이해해 줄 용의가 있다. 예컨대 복지공약 같은 것은 현실적 여건상 100% 충실하게 지켜지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리해서 공약을 지키려 하느니보다 오히려 국민의 양해를 구하고 포기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탕평과 대통합의 공약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모든 권력을 독차지하겠다는 욕심 하나만 버리면 이 공약을 실천에 옮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동안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대통령을 갖는 행운과는 인연이 멀었다. 진정으로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국민과 함께 웃어주고, 아무런 사심 없이 국정을 운영하는 높은 도덕성의 소유자인 대통령을 우리 생전에 한 번은 봐야만 하는 게 아닌가. 우리 국민은 박근혜 당선인에게 그런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 단 한 번의 기회를 과연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순전히 그의 선택과 결단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