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어쩌다 통일 이야기가 나오면 “통일이 밥 먹여주냐? 오히려 지금 이대로가 편하지 않냐?”하는 반론을 많이 듣는다. 대학시절부터 통일에 관심을 갖고 나름 열심히 활동해온 나도 이 반론엔 막상 시원하게 답변을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반만년을 함께 살아 온 한 민족인데 그래도 화해하고 같이 살아야 되지 않느냐, 뭐 그 정도였다.
그런데 <새로운 100년>이란 책을 만나고 나선 완전히 달라졌다. <새로운 100년>은 법륜스님과 오연호 대표가 ‘통일한국’을 주제로 이야기 나눈 대담집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이제는 “그래, 통일이 밥 먹여준다” 라고 당당히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통일의 무한한 가능성에 가슴도 콩닥콩닥 뛰기까지 한다. 자, 그래서 오늘은 ‘새로운 100년’이란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가슴 벅찬 그 장면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 <새로운 100년> 지은이 법륜. 2012년 5월. 오마이북 펴냄. 335쪽.
통일이 밥 먹여줍니까 라는 오연호 대표기자의 질문에 법륜스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이렇게 답한다.
"저는 통일이 우리 경제를 한 번 더 성장시켜서 한 단계 더 나아가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법륜스님은 무슨 이유로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찾아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어느새 우리의 상상력은 저 북한 땅으로, 일본 땅으로, 광활한 만주벌판으로, 중국으로, 세계의 중심을 향해 뻗어나간다. 심장 박동은 쿵쿵 요동치기 시작한다.
왜 통일이 밥 먹여주는지 법륜스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먼저 유럽의 역사로부터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유럽 역사에서 눈여겨봐야 할 사실은 철천지원수였던 나라들이 서로 손을 잡았다는 겁니다. 특히 프랑스와 독일이 그것을 주도했어요. 프랑스의 알자스로렌 지방에는 철광이 많고 바로 국경 너머에 있는 독일의 루르 지방에는 석탄이 많았어요.
두 나라가 적대적일 때에는 서로 덕을 못 봤어요. 감정적으로 본다면야 과거에 철천지원수였으니까 서로 가까이할 수 없겠지만, 현재와 미래의 이익을 보면 서로 협력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으로 이익이라고 판단해 과거를 넘어선 거죠. 이것이 유럽 경제공동체가 되어 마침내 오늘날의 유럽연합으로 발전했죠."
감정적인 벽을 뛰어넘기가 쉽지 않은데 미래의 이익에 초점을 두고 슬기롭게 협력을 이루니 후대들이 덕을 보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이는 지금 한반도의 분단 상황에 너무나 좋은 교훈을 주고 있다. 감정적으로 보면 북한이 너무나 미울 수밖에 없지만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포용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갖고 우리가 만들어나갈 수 있는 ‘통일한국의 비전’은 무엇일까. 자, 지금부터는 무한한 상상력의 나래를 펼쳐보기 바란다.
"1단계는 통일을 한 뒤 인구를 늘리고 영토를 넓혀 체력을 키우는 겁니다. 영토가 21만 제곱킬로미터, 인구가 7000만명이 되니, 지금의 유럽의 나라들과 비교하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수준이 됩니다. G8에 들어갈 수도 있죠. 2단계 비전은 통일된 한국과 일본이 먼저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거대한 중화경제권에 우리가 흡수돼버려 그 주변부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다음 단계로) 중국의 동북 3성과 러시아의 연해주를 연결해서 동북아 경제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에 버금가는 경제공동체가 됩니다. 이를 바탕으로 더 큰 규모의 한중일 경제공동체,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탄생시킬 수도 있죠."
보통 인구가 2억 정도 되어야 내수 산업이 발달하고, 인적 교류도 활발해지고, 교통이나 통신도 규모 있게 발전된다. 그래서 세계는 지금 ‘지역 블록화’가 진행되고 있다. 유럽연합(EU), 나프타(NAFTA, 북미 자유뮤역협정), 동남아시아, 아랍, 남미... 모두 '블록화'되는 것이 하나의 추세다. 그런데 동북아시아에서는 이런 흐름이 없었다.
만약 한국이 통일을 해낸다면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단된 채로는 이런 비전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한국은 미국 쪽으로, 북한은 중국 쪽으로 경제적 의존도가 심화되어 갈등 국면으로 갈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 <새로운 100년>을 주제로 대담을 나누고 있는 법륜스님과 오연호 대표.
법륜스님은 이에 더해 통일된 한국은 이런 주장을 관철시킬 만한 적절한 위치에 서 있음을 강조한다.
"강대한 중국이나 일본이 패권을 행사하는 수단으로 그런 주장을 하면 의심을 받잖아요. 서로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경계하겠죠. 그러나 오래 분단돼 있던 우리나라가 통일을 이루면서 평화와 공영을 위해 진정성 있게 그런 주장을 하면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면 동북아 경제공동체의 본부를 우리나라에 두고 우리가 중국과 일본의 세력균형을 잡아줄 수도 있다는 거죠."
중국과 일본 두 강대국에 둘러싸인 것을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화위복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지혜’가 법륜스님을 통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통일에 드는 비용보다 통일된 뒤에 얻는 이익이 훨씬 크거든요. 북한이 주장하는 ‘우리 민족끼리’ 구호를 이제 우리가 주도적으로 강조해야 합니다. 북한을 설득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고 봐요. 자꾸 꼼수를 쓰니까 의심하고 오해하고 형식적인 회의만 하게 되는 거죠. 서로 뒤통수 때리기만 해서는 절대 해결이 안되죠. 한쪽에서 조금 손해 볼 각오로 먼저 투자를 해야 합니다."
더 큰 이익을 위해 지금의 손해는 능히 감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럴려면 이렇게 판을 크게 벌일 만한 ‘통일 추진 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법륜스님의 말씀대로 통일할 수 있는 조건은 무르익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남한에는 이런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세력이 미미하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 <새로운 100년>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통일이 밥 먹여주느냐고들 하는데, 이렇게 되면 더 좋은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지금 한계에 달해 있는 남한 경제가 통일된 나라에서 다시 성장할 수 있는 거죠. 연해주와 시베리아로부터 오는 안전한 에너지 자원도 확보할 수 있고, 중국 동북 3성의 노동력과 시장도 화보할 수 있어요. 거대한 하나의 내수시장처럼 되겠죠. 이런 식의 큰 비전을 만들 수 있는 겁니다."
통일이 되면 일자리는 늘어날까. 많은 젊은이들이 걱정하는 바일 것이다. 이 역시 우려에 불과함을 일러준다.
"통일이 되면 전체적으로 일자리가 크게 늘어날 거라고 봅니다. 우선 북한을 대대적으로 개발해야 되니까요. 북한에 남한의 여러 기업들이 들어가게 될 테니 일자리는 절대적으로 엄청나게 늘어날 겁니다.
남한과 달리 북한은 생존권만 보장해주면 출산 문제도 훨씬 빨리 극복되겠죠. 제대로 먹고 살기만 해도 출산 의욕이 생길 겁니다.
노동효율 측면에서도 통일은 시급합니다. 지금 북한 주민들은 비생산적인 일을 하는 데 노동력을 낭비하고 있어요. 하루 한 끼를 먹기 위해 산야를 헤메고 이삭을 줍고 풀을 뜯고 있잖아요. 이 노동력을 산업생산에 제대로 활용한다면 엄청난 부를 창출할 수 있겠죠."
질 높은 경제성장을 하려면 충분한 노동력이 필요하다. 남한은 지금 고령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데, 북한을 잘 활용하면 이런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북한 개발’의 이면에는 부작용도 따르기 마련이다. 이에 대한 대비책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해온 흔적이 돋보인다. 앞뒤로 막힘이 없었다.
"환경문제까지 고려해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해야 합니다. 남한이 개발하면서 생겼던 부작용까지 감안해서 정책을 수립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겠죠.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북한 개발에 따른 개발이익 환수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개발업자들에게도 일정한 이익을 보장해줘야겠지만 주요하게는 북한 주민들에게 이익이 골고루 돌아가게 하고, 또 민족전체의 이익이 될 수 있도록 사전에 철저한 대비책이 있어야겠죠."
젊은이들에게 가장 솔깃하게 들릴 부분은 바로 군대 문제일 것이다. 매년 60만명의 젊은 청춘들이 학업이나 생산 현장이 아닌 병역의 울타리 안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까.
"지금은 분단 유지 비용, 혹은 체제 방어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든다고 할 수 있죠. 통일이 되면 이 부분이 엄청 절약되겠죠. 군인을 대폭 감축할 수 있잖아요. 분단에 따른 체제선전비도 많이 줄어들 겁니다."
얼마 전 대선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양극화 해소’는 '통일'과는 전혀 상반된 이야기일까. 법륜스님의 대답은 “전혀 아니올시다” 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도 통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통일이 파이를 키우는 것이라면, 양극화 해소는 파이를 잘 나눠갖는 것이겠죠. 키워지지 않는 파이 안에서 분배의 균형점을 잡아 나가려고 하면 심한 갈등을 불러오겠죠. 가진 자들이 양보를 하지 않으려고 할 테니까요. 파이 전체를 키워나가면서 내부 분배의 문제를 풀어야 어느 정도 서로 양보가 가능해질 겁니다. 통일이야말로 그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계기죠."
이것 뿐이랴. 정신적인 측면은 어떤가. 분단으로 인한 사상의 억압은 문화 예술 과학계에 보이지 않게 창조력을 억압해 왔다. 수치로 계산할 수는 없지만 통일 되면 이런 억압이 풀리면서 굉장한 창의성과 자신감이 샘솟으리라 법륜스님은 전망한다.
"사상적인 자유기 신장되면서 신바람이라고 할까, 어떤 기(氣) 같은 것이 우리에게 굉장한 기운과 자신감을 주겠죠. 통일 되면 창조성이 더욱 발휘될 테니 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경제든 세계 수준으로 올라갈 겁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분단되고 전쟁하고 갈등했던 지난 100년의 상처를 완전히 청산할 수 있을 겁니다. 특히 해외에 있는 700만 동포들이 새롭게 갖게 될 자신감은 굉장할 거예요. 통일이 되면 국가 이미지도 개선되어 상품 수출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겁니다."
이쯤 되니 가슴이 마구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다. 작은 나라, 그것도 분단 국가라는 열등감에 해외를 가도 어딘가 모르게 늘 위축된 마음이 있었다. 그런 우리에게도 이런 무한한 미래의 가능성이 열려 있구나... 통일 한국을 만들어낸 경험으로 동북아 공동체의 평화의 가교 역할을 하고 더 나아가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이 되는 그런 커다른 시대적 소명이 우리 앞에 주어져 있구나...
과거 선조들은 동학혁명을 하고 독립운동을 하고 6.25전쟁에 참전하고 산업화를 이뤄내고 민주화 투쟁을 하며 나라를 위해 나름의 기여들을 해왔다. 반면 지금의 젊은이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지 않나' 하며 회의를 더 많이 한다. 그런데 우리 앞에 이렇게 중대하고 커다란 100년의 비전이 펼쳐져 있다니... 이런 커다란 희망이 내 가슴을 설레이게 했다.
이제 “통일이 밥 먹여 주냐?”는 친구의 대답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북한 개발 비용은 지출이 아니라 투자라고 봐야 한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자꾸 통일을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부정적 여론을 만드는지... 그분들의 의도를 추긍해 보고 싶기까지 하다. 통일 비용은 소모성 소비가 아니라 미래의 이익을 창출하는 투자로 생각해야 함을 이제는 친구들에게 자신 있게 말해주고 싶다.
책은 이 뿐만이 아니라 시대와 역사의식에서 시작해서 과거 고조선부터 고구려 발해에 이르는 10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가깝게는 분단의 뿌리인 농학민란에서 독립운동사, 전쟁의 아픔까지 다루고, 지금 현재의 북한 현실과 남한의 현실까지 세세하게 훑는다. 미국과 중국의 세계 정세로 이야기가 확장되면서 입체적이고 전방위적인 '직관'을 보여준다. 한 분야에 고도로 집중하면 '문리가 트인다'는 표현을 하는데, 통일에 있어서는 법륜스님이 그에 해당할 것 같다. 책값 1만5천원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오히려 나도 통일을 위해 뭐라도 하나 기여할 수 있는 게 없을까 눈을 밖으로 돌리게 된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결론을 내렸다. 결국 통일이 저절로 밥 먹여주는 것이 아니라 통일된 한국이 어떤 사회인가에 따라 우리가 먹는 밥의 질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는 우리의 선택이 소중할 것 같다. 결국 통일이 밥 먹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이 밥을 먹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