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복지사의 죽음, 희망이 없다!! [바람부는언덕님 글]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투덜대는 건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 눈에는 분명 배부른 투정이다. 그러나 무슨 말로 떠든대도 지금 내 고통을 알아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라져 준다면 적어도 내가 진짜 절박했노라고 믿어줄 것이다."
■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외로웠으면...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리고 얼마나 외로웠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는 없었을까요? 또 한명의 사회복지전담 공무원이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는 언론의 보도를 보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감내해야했던 그분들의 삶의 무게를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사회복지사들, 한국사회복지사협회 홈페이지 캡쳐>
올해 들어서만 벌써 3번째 사회복지전담 공무원이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했습니다. 일선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업무량은 일반인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19일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사회복지사 안모씨의 경우 아동보육과 노인, 장애인, 한부모 지원 업무, 거기에 올해부터 교육청에서 동 주민센터로 이관된 초·중·고 교육비 지원 업무까지 모두 도맡아 해왔습니다. 특히 올해부터 무상보육이 0~5세로 확대·시행되면서 2월 한 달 동안 보육신청자가 1400명에 달할 정도로 많아 평일도 밤에는 11~12시까지 근무를 하고, 또 주말 휴일도 반납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사보기)
■ 사회복지사들이 말하는 '깔때기 이론'
복지가 사회적 화두가 된 시대, 사회복지 정책들이 확대·시행되면서 해당 복지사업의 규정과 행정 업무 역시 세분화되고 복잡해질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늘어난 업무에 비해 이를 수행할 인원의 확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몫은 모두 일선의 사회복지사들이 떠안아야만 합니다. '깔때기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기존업무와 함께 각종 선거때마다 등장하는 복지공약과 전시행정 등으로 사회복지 정책이 쏟아져 나오면서 마치 깔때기처럼 주민자치센터 직원 한 두명이 모든 업무를 처리해야하는 상황을 빗댄 것입니다.
평상업무인 공공부조, 장애연금, 노령연금, 활동보조·장기요양·아동 등과 같은 바우처 업무, 각종 민원업무 등에 5세 이하 보육료지원, 교육비지원 등의 새로 시행될 복지업무등이 추가되면 처리해야할 일이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이게 됩니다. 사회복지사들이 처리해야할 업무량이 살인적인 수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지역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한사람의 사회복지사가 전담하는 인력수는 수천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해야할 일은 많은데 인원이 부족하다보니 심각한 업무과중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기형적인 구조인 것입니다. 어찌보면 연이은 사회복지사들의 안타까운 죽음은 이와 같은 불합리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예고된 인재인 셈입니다.
■ 이렇게 힘든 일을 그들은 왜 하는가?
자신을 헌신하겠다는 마음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도움이 있어야만 삶이 유지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바로 사회복지사들입니다. 사회복지사를 직업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은 오직 한 곳을 바라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면 이들은 낮은 곳으로 향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향하는 곳에 가난한 우리의 이웃들이 있고, 시끌벅쩍한 우리의 삶이 있습니다. 서민들의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헤아리는 것은 저 높으신 곳에 앉아있는 분들이 아닌 현장에서 발로 뛰고, 밤새 펜을 굴리고, 자판을 두드리는 바로 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살펴본 바와 같이 사회복지사가 하는 일이 정말 많습니다. 각종 민원업무는 기본이며 현장도 수시로 방문해야만 합니다. 하는 일에 비해 임금도 턱없이 낮기만 합니다. 201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낸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사회복지 종사자의 임금은 전체 산업 대비 62.7%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렇듯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수시로 민원인들과 한바탕 실랑이를 벌여야 하고, 심지어 때로는 폭행을 당하기까지 합니다.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모두 고단한, 힘들어도 너무 힘든 직업임에 틀림없습니다. 비단 업무량만 많은 것은 아닙니다. 안모씨가 남긴 유서에는 "일이 많은 것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인간이기에 최소한의 존중과 대우를 원하는 것이다. 공공조직의 제일 말단에서 온갖 지시와 명령에 따라야 하는 일개 부속품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은 사투보다 치열하다."며 그의 선택이 단순히 과도한 업무량때문만이 아닌 직장내의 비인격적 대우 역시 크게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처럼 직업에 대한 보람과 자부심만 가지고 근무하기에는 사회복지사들이 일하고 있는 현장은 너무나 열악하기만 합니다.
■ 그러나 정작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은 없다
가난하고 힘없는 대다수 서민들의 손과 발이 되어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준 그들,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 손이 되어주고 발이 되어줄 누군가는 없었습니다. 오로지 혼자 감당해야했고,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휴일도 반납하며 명절연휴도 없이 그들은 일해야만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아왔지만 자신들의 위한 삶을 살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타인들의 복지 혜택을 위해 일해온 그들이 정작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 정말이지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의 손이 되어준 그들, 정작 자신의 손을 잡을 그 누군가는 없었다>
누구는 전관예우를 통해 대형로펌에서 1년 남짓 일하며 월 평균 1억원의 급여를 받고, 또 어떤 사람들은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200여 가지가 넘는 특권에 온갖 호사란 호사는 다 누리며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하고 있고, 높으신 양반들은 틈만 날때마나 편법·불법을 동원해 '부와 권력'을 만끽하고 있는데, 정작 서민들의 손과 발이 되어 현장을 누비는 사회복지사들은 박봉에 시달리며 죽도록 고생만하는 이 기막힌 현실이 필자는 정말 화가 납니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이런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더 좋은 근무환경이 주어져야 할 겁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이 아니라, 자신을 원하는 곳으로 찾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 사후약방문은 이제 그만하고 실질적인 대책을 세워야
잇따른 사회복지사들의 자살사건이 발생하자 국회에서 사업복지사업법일부 개정법률안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민주당 오제세 의원(충북 청주 흥덕갑)은 20일 '시설 운영자의 손해배상책임 의무화'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사회복지사업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또한 각 지자체 별로 '사회복지사 처우개선 조례안'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회복지사들의 업무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책들이며, 이를 즉각적으로 실행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사회복지사 처우 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시민단체와 현장의 요구는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해야했고, 급기야 이를 견디지 못하고 올해에만 3명의 소중한 목숨들을 잃어야만 했습니다. 또 언제 어디서 누가 삶의 벼랑끝에서 희망의 소중한 끈을 놓아버리게 될 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고, 시급하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사람들을 되려 사지로 몰아서야 되겠습니까? 자신의 죽음으로 이 사회에 경종을 울린 그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대책들을 세워줄 것을 정부와 정치권과 지자체에 촉구합니다.
오늘도 현장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땀흘리며 일하고 있을 사회복지사들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여러분들이 계셔서 많은 분들이 수혜를 입고 생활에 큰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마음 속에 당신들을 향한 깊은 감사의 마음이 자리잡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 돌아가신 세 분을 기억합니다. 당신들의 희생이 동료들의 처우개선은 물론 이 사회에도 큰 울림으로 남게 될것이라 믿습니다. 부디 평화로운 곳에서 편히 쉬세요.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