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朴대통령, 놀랍고 황당하다"
개성공단에 미수금 처리 문제때문에 7명만 남고 모든 인력이 철수한 30일, <동아일보> 사설 제목은 <'안전 철수’ 약속 깨고 7명 볼모로 잡은 北>이었다. 북한이 마치 7명을 볼모로 잡은 양 흥분하며 북한을 맹비난하는 사설이었다.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개성공단 철수 이후도 중요하다>였다. 북한이 자체적으로 개성공단을 가동하려 할지 모르나 전기와 물을 우리에게 의존하고 있으니 불가능한만큼 즉각 우리측의 실무회담 요구를 받아들이라는 요지였다.
하지만 <중앙일보>의 배명복 논설위원이 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기싸움인가>라는 기명 칼럼은 달랐다. 근원적 책임은 북한에게 있으나 박근혜 대통령의 대응도 황당하긴 마찬가지라는 질타가 요지다.
칼럼은 "그 단호함이 놀랍다. 느닷없고 황당하다. 개성공단 근로자 전원 철수 결정을 내린 박근혜 대통령의 서릿발 같은 결단 말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칼럼은 이어 "지난 주말 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긴급 외교안보장관 회의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마이크 앞에 섰을 때만 해도 나는 그의 입에서 철수 ‘권고’란 말이 나올 줄 알았다. 웬걸, 철수 ‘결정’이었다. 선택의 여지를 배제한 사실상의 귀환 ‘명령’이었다"며 "전면 폐쇄를 각오했을 때나 둘 수 있는 ‘초강수’"라고 탄식했다.
칼럼은 "북한이 거부할 줄 뻔히 알면서 북한에 본때를 보여줄 요량으로 최후통첩성 대화를 제의했다고 볼 수 있다"며 "진심으로 대화할 생각이 있었다면 한·미 합동 독수리연습이 끝나는 시점에 맞춰 대화를 제안하거나 적어도 그때까지 말미를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며칠 늦춘다고 잔류 근로자들의 신변이나 건강이 당장 위협받을 정도는 아니었다"라고 지적했다.
칼럼은 이어 "박 대통령의 속내를 잘 모르겠다"며 "이 기회에 북한의 기를 꺾어 길들이기를 하겠다는 것인지, 일단 갈 데까지 가보자는 것인지 판단이 잘 안 선다. 몰아붙여서 북한을 길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다. 그렇게 해서 말을 들을 북한이라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도 않았다"고 힐난했다.
그는 "정부 안에서조차 제대로 조율이 안 된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너무 위태로워 보인다"며 "남북한 당국의 치졸한 기싸움으로 개성공단에 투자한 남한 기업들과 그곳에서 일하던 북한 근로자들만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기싸움인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이런 것인가"라고 박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더 나아가 "바리바리 짐을 실은 차량들이 피란민 행렬처럼 개성공단을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무슨 바보짓인가 싶다. 박 대통령은 'TV로 그걸 보면서 세계 어느 누가 북한에 투자를 하려 하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며 전날 박 대통령 발언을 거론한 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를 우습게 볼까 싶기도 하다. 애써 장만한 값진 가재도구를 부부싸움 하면서 마구 내던지는 꼴 아닌가"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개성공단은 포기할 수 없는 남북 화해와 협력의 상징이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 속에서도 개성공단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건설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공사를 중단하진 않는다. 개성공단의 문을 닫는 것은 사고 좀 났다고 고속도로 공사를 중단하는 꼴"이라고 비유한 뒤, "우리가 먼저 기싸움을 그만둬야 한다. 손은 강자가 먼저 내미는 법이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란 말도 있다"며 박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박근혜 정부에는 <중앙일보> 출신들이 여럿 있다. 길정우 의원, 이상일 의원, 김행 청와대 대변인 등이 대표적 케이스다. 이들 중 길정우 의원은 일관되게 남북관계 급랭을 우려하며 대북특사 파견 등 유화책을 펼 것을 주장해왔다. 민주당의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조차 박 대통령에게 대북정책에 관한 한 길 의원을 중용해야 한다고 조언했을 정도다. 하지만 흐름은 정반대로 가면서 급기야 배명복 논설위원이 박 대통령을 공개 비판하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대북정책에 관한 한, <중앙일보>는 <동아일보>나 <조선일보>와는 분명히 획을 분명히 긋고 있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