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하 국장을 기억합니다
5·18 광주민주항쟁 당시 이름 없이 쓰러져간 수많은 5월 영령들과 함께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고 안병하 전남 경찰국장 입니다.
안병하 국장은 5·18 당시 신군부로부터 경찰만으로는 치안 유지가 어려우므로 군 병력 투입을 요청하라는 강요와 협박을 받았지만 군이 투입될 경우 시민들을 자극하여 오히려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광주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라는 신군부의 명령을 끝내 거부하였고 오히려 “상대는 우리가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시민인데 경찰이 어떻게 총을 들 수 있느냐”며 경찰이 소지한 무기를 회수하였습니다.
경찰봉만 소지했던 당시 경찰은 그 후 계엄군에 의해 부상당한 시민들의 치료는 물론 식당에 데려가 밥도 사주고 옷도 갈아입히는 등 시민들에게 편의 제공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신군부 강경진압 명령을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5월26일 직위해제 당한 그는 보안사 동빙고 분실로 끌려가 10여일의 온갖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고 고문 후유증으로 신부전증 등을 앓다가 결국 1988년 10월10일 광주의 한을 품은 채 급성 호흡정지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안병하 국장은 발포 명령을 지시받던 순간 4·19 때 경찰이 국민을 향해 발사한 총탄이 가져온 불행을 떠올리고 경찰이 더는 역사의 죄인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고 합니다.
신군부에 적극 협조한다면 출세가 보장되고 그러지 않으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에게 닥칠 고통이 얼마나 클 것인지를 알았음에도 안병하 국장은 결코 쉽지 않은 정의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후 1997년 5.18 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안병하 국장은 5.18 당시에 사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순직이 인정되지 않았으며 2005년에야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고 2006년에 국가보훈처에 순직경찰로 등록되었습니다.
경찰청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를 근거로 안병하 전국장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한 인권경찰의 표상이라고 결론짓고 명예회복과 함께 동상 건립과 경찰 60년사에 모범경찰로 기록하는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하던 중 정권이 바뀌면서 모든 사업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인의 명예회복과 실추된 경찰의 위상정립과 숭고한 위민정신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추모사업은 다시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후배 경찰과 경찰 지망생들이 권력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오로지 시민의 안전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고인을 경찰의 표상으로 삼고 그 정신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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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돋네요. 정말 존경해야 할 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