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정권의 우경화, 그리고 대북한 접근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
Ⅰ.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정치
Ⅱ. 평화헌법 개정에 집중하는 아베정권
Ⅲ. 아베가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노리는 이유
Ⅳ. 일본의 대북외교카드 전망
Ⅰ.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정치
일본정치가 빠른 속도로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다. 속도와 수준에서 이전 상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냉전종결과 사회당의 몰락이후 일본정치의 보수와 진보간 균형이 무너졌다고 하지만, 지금처럼 우익정치가들이 거침없는 역사왜곡과 망언 남발을 거듭하는 상황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정치의 우경화는 정당분포에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 지난 2012년 12월 총선거에서 자민당은 압승을, 민주당은 참패를 맛보았다. 거대여당 자민당은 전체의석 480석 가운데 무려 295석을 차지하였다. 이에 비하여 민주당은 단지 57석에 불과하다. 우익정당 일본유신회도 54석으로 거의 민주당에 필적할 정도이다. 자민당과 일본유신회를 합치면 전체 349석으로 비율만 73%에 이른다. 헌법개정에 필요한 2/3선인 320석을 무려 30석 가까이 훌쩍 뛰어넘는다. 사민당, 공산당 등은 그저 존재조차 희미한 소수당에 불과하다.
일본은 예전 일본이 아니다. 오랫동안의 헌법개정 주장에도 불구하고 우경화, 보수화, 개헌, 집단적 자위권 등은 그저 정치적 주장에 지나지 않았다. 주장은 주장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의 우파 정치가들은 내셔널리즘을 선동하거나, 한국이나 중국을 비난하는 구호 수준에 머물렀다. 분명한 이론 체계와 명확한 미래 비전이 없었다. 냉전이후 국가방향을 상실한 일본인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고함지르기에 불과했다.
1990년대 거품경제가 붕괴하면서 자신감을 상실하기 시작했을 때, 누적국채 비율이 세계최고 수준에 달하여 국가신뢰도가 하락하고 2005년에는 중국의 세계2위 경제력에 일본이 밀려났을 때, 변질된 중국산 식품과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문제로 국내 불안이 높아져갈 때, 3.11 동일본대지진을 통하여 이들 모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을 때, 센카쿠열도와 독도 영토분쟁이 국민 상호간 감정대립으로 치달았을 때, 역사왜곡과 군국주의 망언은 그런불안과 초조함, 불만과 스트레스를 발산시키는 정치적 주장들에 지나지 않았다.
Ⅱ. 평화헌법 개정에 집중하는 아베정권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7월 예정된 참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할 경우, 아베수상의 개헌주장은 현실미를 띠게 된다. 65%에 이르는 내각지지율과 참의원 승리 가능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엔저정책, 규제완화, 성장전략으로 조합된 아베노믹스는 분명한 경제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닛케이 평균주가가 15,000을 회복하였고 주요 백화점의 동월 판매량도 작년대비 4,300억 엔이 증가하였다. 동시에,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부인하고, 전후반성을 담은 무라야마 담화를 변경하려는 우익정치가들의 망언이 공공연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과연 일본이 문명국가인가 의심할 정도이다.
아베 수상은 일본 내 수많은 우파 정치가 모임의 핵심이었다. “침략의 정의는 나라마다 다르다,” “야스쿠니신사와 알링턴묘지가 다른 것이 뭐냐”는 궤변은 지금까지 행적을 볼 때 새삼스럽지도 않다. 일본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도쿄재판의 결과를 수용하였다. 침략국임을 자인하고 겨우 국제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에 불과하다.
무라야마 수상의 반박처럼 무력을 가지고 다른 국가에 들어가면 그것이 침략인 것이다. 수천만 명의 아시아인을 살상시킨 전범을 강제로 모신 사립 종교시설인 야스쿠니와 남북전쟁 내전의 희생자가 잠든, 개인선택을 존중해 전체 전사자의 10%도 안 되는 알링턴 국립묘지와 어떻게 비교할 것인가. A급 전범을 외할아버지로 모신 우익정치가의 발언이라는 것 외에 해석할 길이 없다.
2007년 교육기본법을 제정하여 왜곡된 내셔널리즘을 주입시키려는 아베수상의 목적은 달성되었다.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헌법개정으로 집중되고 있다. 헌법을 개정하여 자위대를 국군으로 변경하고, 영국이나 독일처럼 미군과 세계 어디서나 공동작전을 전개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고, 북한 핵기지를 선제공격할 수 있는, “전쟁할 수 있는 일본”으로 개조하려는 것이다. 일본의 평화헌법 9조는 분쟁의 해결수단으로서 무력을 영구히 포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이 개정되면 일본은 군사력증강, 해외파병, 더 나아가 핵무장도 가능해진다.
Ⅲ. 아베가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노리는 이유
일본 평화헌법 96조에 따르면, 중의원과 참의원 내 재적 2/3이상 찬성을 얻고 국민투표를 통과해야 개정이 가능하다. 아베수상은 경성헌법의 높은 허들을 1/2로 낮추어서 연성헌법으로 만들고자 하고 있다. 자민당, 일본유신회는 개헌에 찬성한다. 반면, 민주당과 공명당은 반대하고 있다. 헌법절차가 아닌 개정할 내용을 먼저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일 개정하더라도, 침략부인과 영구평화의 정신을 유지하거나, 환경권과 인권 등의 조항을 추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아베수상의 개헌 의도는 헌법구조상 쉽사리 달성될 수 없다. 중의원에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자민당도 참의원의석은 민주당보다 적은 야당이다. 일단, 참의원에서 압승하여 다수파를 확보하여야 한다. 일본선거에는 무려 11개의 정당이 난립하고 있다. 지역구에서 1명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는 승자독식을 가져온다. 따라서 선거연립이 불가피하다. 일본유신회나 공명당과 선거연합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동시에, 같은 우파로 지지표가 겹치는 일본유신회와 차별화를 시켜야 한다. 그래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 일본유신회는 더욱 필사적이다. 중의원 54석으로 제3당인 일본유신회는 참의원 의석은 단 3석에 불과하다. 참의원선거에서 약진하지 않으면 정당의 존재감마저 사라진다. 보수표를 결집시키고자 이시하라 신타로 공동대표,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시장, 제명당한 니시무라 신고 의원까지 망언을 서슴지 않은 이유이다.
개헌을 위해서는 참의원 242석 가운데 160석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새로 선출하는 121석 가운데 80석 이상을 얻으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최소 50석 이상을 획득할 경우, 일본유신회, 모두의 당과 개헌논의가 가능해진다. 침략을 부정하는 망언으로 보수표를 결집하고, 아베노믹스로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또 하나의 필승전략이 필요하다. 북한카드가 바로 그것이다. 영토문제와 야스쿠니, 망언 속출로 일본은 한국과 중국과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자국통화를 내리깎아 일본 혼자만 살겠다는 아베노믹스는 아시아 각국의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당분간 한일, 중일관계를 회복하기 어렵다.
주변국과의 갈등이 이어지면 일본외교는 고립될 것이다.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정상회담에서 “일본이 돌아왔다(Japan is back)”고 강조하였지만, 미국 민주당의 심기를 건드리는 침략부정 발언과 역겨운 위안부 강제동원 거부 발언은 국제여론의 비난을 사고 있다. 외교적 고립과 폐색상태를 벗어날 탈출구를 찾게 된다. 북한에 남아있는 일본인 납치자를 귀국시키거나,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를 염두에 두고 교류를 추진하는 것이다.
2002년, 2004년 두 차례 방북으로 일본인 납치자를 귀국시켜 떨어진 인기를 단번에 만회했던 고이즈미 전수상은 아베의 외교모델이다. 비밀리에 북일교섭의 전문가 이지마 특별보좌관을 평양에 보냈다. 그는 평양에 3박4일 머무르는 동안 북한 제2인자인 김영남을 만나서 납치문제에 대한 의견교환, 전후보상과 국교정상화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개시와 개성공단 폐쇄 등의 강경자세, 북한미사일 발사에 대한 미국과 유엔연합의 대북 비난과 제재 강화, 시진핑 이후 더욱 중국과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열세에 빠진 북한은 한미일 대북공조를 흩뜨리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이지마의 방북사실을 열을 올려 공개하였다
Ⅳ. 일본의 대북외교카드 전망
일본의 대북 외교카드는 성공할까. 우선 한국과 미국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사전통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대북공조를 깨트린 것이다. 갓 출발한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도 적잖은 상처를 주고 있다. 미국은 너무 앞서나가는 일본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아베정권에 대한 미국의 불신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쉽사리 대화 테이블에 마주해 줄 것인가. 그리고 정상회담, 더 나아가 국교정상화까지 갈 것인가. 그것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납치 문제로 처절한 외교적 실패를 맛본 북한이다. 일본정부와 국민은 납치사실을 솔직히 인정한 북한과 김정일 위원장을 ‘악의 제국’으로 몰아부쳤다. 일본의 대북불신은 절정에 달했고, 치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일본과 입장이 뒤바뀌면서 전전 과거사의 피해자였던 북한은 돌연 가해자로 몰렸다. 북일교섭에서 오히려 북한이 신중할 것이다.
아베정권의 개헌 전략, 한국이나 중국과의 관계 개선, 북일 교섭과 그 향방은 7월 21일 일본의 참의원 선거에 크게 좌우된다. 선거결과의 귀추가 주목받는 이유이다. 한국은 어찌할 것인가. 대일, 대북 강경자세를 견지해 온 박근혜정부의 선택지가 마땅하지 않다. 당분간 한반도 신뢰외교를 그대로 추진하는 것 말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신뢰는 상호 교류와 현실적인 성과가 수반되어야 한다. 교류도 성과도 없다면 현실미를 상실하게 된다. 오히려 신뢰가 아닌 불신만 가중된다. 조만간 신뢰외교 전략 그 자체를 재검토해야 할지도 모른다.
(2013/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