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창이된 국정조사, "지금 잠이 옵니까?"

가자서 작성일 13.07.26 15:3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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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창이된 국정조사, "지금 잠이 옵니까?" [다람쥐주인님 글]

 

 

 

252D623B51F18D5F0497E9<국정조사 특위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

 

새누리당이 또다시 국정조사 보이콧을 선언했다. 어제 국정조사 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국정원 기관보고의 공개여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이유로 "새누리당은 내일 국정원 국정조사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이에 국정원도 기다렸다는 듯 "여야 합의돼야 출석하겠다"며 화답했다.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권 의원의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새누리당이 국정원 기관보고 공개에 반대했다"고 말하는 것이 가치중립에 가까운 표현이다. 국정조사의 취지는 국민의 눈앞에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며, 국정원의 기관보고는 이번 국정조사의 하이라이트다. 이것을 비공개로 하자는 것은 "진실을 비공개로 하자"는 주장과 다름없다. 새누리당은 이런 비상식적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협상결렬'이라는 가치중립적인 단어로 본질을 흐린다. 언어도단이다.

 

새누리당은 국조 특위가 가동된 첫날부터 김현·진선미 의원이 '제척사유'를 문제삼으며 회의장에서 전원 퇴장한 바 있다. 그들은 국정조사가 진행된 25일 내내 정회와 퇴장을 반복했다. 티끌만한 꼬투리라도 잡힐라치면 단체로 회의장을 비운다. 이쯤되면 국정조사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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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이 삭제되고 있는 판에 잠이 와요 지금?”

 

지난 수개월간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을 지켜보면서 놀란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새누리당의 상상을 초월하는 낯두꺼움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 국민들의 높은 '분노임계점'이다. 두 가지 놀라움에서 깨달은 것은 정치인들의 낯을 두껍게 만드는 것은 분노하지 않는 국민이라는 사실이다.

 

어제 국정조사장에서는 다시 한번 국민들의 인내심을 실험할만한 영상이 공개됐다.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은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팀 수사관들이 지난해 12월16일 새벽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찍힌 CCTV 동영상을 공개했다.  

 

 

 

한 수사관이 “자도 되죠”라고 묻자 다른 수사관이 “댓글이 삭제되고 있는 판에 잠이 와요, 지금?”이라고 말한다. 듣고 있던 또 다른 수사관은 “삭제를 좀 하는 편이더라구요. 왜 글을 썼다가 삭제를 하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삭제를 하더라구요”라고 말한다.

 

'좌익효수'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던 국정원 여직원 김씨가 작성했던 글들이 상당부분 삭제됐다는 것은 이미 검찰수사결과 확인된 사실이다. 영상은 그것이 삭제되고 있던 순간을 경찰수사관들이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이 영상에 대한 소감을 “당사자한테 확인하니, 졸리다고 하니 농담으로 한 말이다었고 한다”고 전했다. 맹구가 변명을 해도 저것보다는 잘할 것 같다.    

 

이 영상이 촬영된지 5시간 뒤 대선후보 3차 TV토론이 시작됐고, 박근혜 후보는 이자리에서 "여직원 감금사건이다. 성폭행범이나 하는 수법으로..."라며 문재인 후보를 몰아부쳤다. 이 토론이 끝나자 마자 서울경찰청은 "댓글기록이 없다"는 엉터리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고, 그로부터 3일 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다. 위 영상에는 수사관이 '좌익효수'가 작성한 댓글을 보며 "노다지다 노다지, 이렇게 많은 걸..."이라며 감탄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날 중간수사발표에 저 '노다지'들이 포함됐었다면 대선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국정조사 보고서 채택 가능성 낮아

 

국정조사에 임하는 새누리당의 비이성적인 태도는 TV로 지켜보는 국민들은 물론 국조에 참여하는 야당의원들에게도 많은 인내심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야당이 많은 것을 양보하면서까지 국정조사에 연연하는 이유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국정조사는 그것이 싫든 좋든 국정원사건을 제도권내에서 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실효성에 대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국정조사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원칙적으로 옳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정도가 다. 새누리당의 국정조사 방해공작은 이미 정도를 한참 지나쳤다. 45일의 국정조사 기간중 아무것도 한 것 없이 25일이 지났다. 우려스러운 것은 물리적인 날짜뿐이 아니다. 국조에 임하는 새누리당의 태도는 안하무인 그 자체다.

 

 

 

"국정원 직원임을 모르게, 공무원이 댓글 단다는 생각을 못하게 교묘하게 댓글을 다는 것을 장려해야 한다" - 25일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

 

치욕스럽다. 저자는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장려해야 할 미덕'이라 말하고 있다. 신성한 국회에서 저런 반민주적인 망언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나라 민주주의의 치욕이다. 저 당에는 "수사검사가 운동권"이라는 의원도 있고, 수사검사를 공안검사로 바꿔야 한다는 의원도 있다. 저들은 입에 담기도 민망한 '감금사건'을 수사하라며 검찰에 고발하고, 양심적 내부고발로 경찰의 자존심을 지킨 권은희 과장을 징계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저런 '반민주주의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국정조사를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야당 의원들의 패기있는 질타가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수도 있다. 실제로 국정조사에 임하는 몇몇 야당의원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그러나 그런 것들로 충분하지 않다. 국정조사가 갖는 의미는 명명백백한 진상규명에 있다.

 

국정조사의 결과는 여야 특위 위원들의 합의로 채택되는 국정조사 보고서로 발표된다. 지금 상태라면 국조가 재개된다해도 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직도 '감금사건'이라는 코메디에서 한발짝도 물러나지 않은 저들은 정권의 정통성에 털끝만큼이라도 흠이 날 사안이라면 보고서에 들어가는 것을 극렬 반대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여야가 보고서채택에 합의한다해도 그것은 핵심이 빠진 누더기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이런식으로 마무리된다면 이번 국정조사가 갖는 의미는 '무력감의 확인'에 불과하다. 

 

272AA95051F1A7B9132310<국정조사가 좌초된다면 관망하던 다수의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

 

국정조사 방해는 거리정치에 기름 붓는 꼴

 

새누리당이 이번 국정조사로 얻은 것이 있다면 거리로 나올 많은 국민들을 '관망자'로 돌려세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조사가 이대로 좌초된다면 그들의 '관망'도 끝이 날 것이고, 다수의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런 측면에서 국정조사를 파행으로 몰고가는 것은 분명 새누리당의 자충수다.  

 

국정원사건 장외투쟁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은 내부적으로 엇갈리고 있다. 김한길 대표와 당 지도부는 기본적으로 장외투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지만, 정청래, 최민희 의원 등의 적극적인 장외투쟁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국정조사 합의로 온건파의 목소리가 잠시 득세하고 있지만 국정조사 무용론이 힘을 얻는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미 자당의 일부 의원들과 진보정당들이 한달 전부터 장외투쟁에 나선 상황에서 민주당 127명 의원들이 여기에 가세하지 못할 법도 없다.  

 

이번 국정조사는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시민들의 분노를 제도정치권에서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제도정치에서 대중의 분노게이지를 낮추지 못한다면 그것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것은 필연이다. 새누리당은 이것이 과연 자신들에게 이득일지 고민해야 한다. 국정원사태의 불길이 장외로 번져나갈 경우 새누리당은 자칫 2008년의 촛불공포를 다시 느끼게 될지 모른다. 

 

대부분의 민주주의자들은 거리정치를 반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제도권에서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될 때의 이야기다. 처음부터 거리에서 시작된 이나라의 민주주의는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다시 거리로 돌아가려하는 관성을 갖고 있다. 새누리당은 다시 한번 거리에서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불행을 자초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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