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조 청문회, 보석같이 빛난 ‘양심’ 권은희 [오주르디님 글]
국정원 직원과 경찰 분석관 등 대부분 증인들은 한결같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실을 부정했다. 심지어는 경찰 조사에서 드러난 증거조차 “대답 할 수 없다”며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아니다” “말 할 수 없다” “모른다” “기억할 수 없다” 등이 증인 답변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국정조사 파행, 청문회 증인 모르쇠... ‘컨틴전시 플랜’의 일환?
저들의 함구 또한 여권이 지난 대선 때 가동했다는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의 일환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 12월 10일 권영세 새누리당 대선캠프 종합상황실장이 ‘NLL 자료’와 관련해 ‘컨틴전시 플랜’을 언급했고 그 다음날 국정원 여직원 댓글사건이 발생한다.
12월 13일 원세훈 국정원장은 권영세 실장과 NLL 회의록 공개여부를 상의했고, 14일 김무성 박근혜 대선캠프 선대본부장이 NLL 회의록을 인용한 발언을 한다. 15일 김용판 서울청장은 청와대 주변에서 ‘의혹의 점심식사’를 가졌고, 16일 오전 김무성 본부장은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 증거 없다”고 주장한다.
16일 오후 박원동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은 김용판 서울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왜 댓글 수사결과 발표하지 않느냐”고 다그쳤고, 16일 밤 11시 경찰은 “댓글 흔적 없다”는 허위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다.
이후 NLL 회의록 공개로 국정원 사건 물타기를 시도했다. 종합해 보면 '국정원 댓글녀' 사건(12월 11일)이 터지자마자 여권이 부랴부랴 ‘컨틴전시 플랜’을 가동한 것이 확실해 진다.
증인들 사실 전면 부인... 국정조사 '최종 물타기'
그리고 마침내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증인들 대부분이 사전에 입을 맞춘 듯 국정원 대선개입 사실을 전면 부인하기에 이른 것이다. 검찰이 “혐의 있다”고 인정한 부분까지 깡그리 부정하는 만행을 저지르며 ‘최종 물타기’를 시도했다.
'국정원녀'로 통하는 김하영, 직속상관인 최형탁 팀장, 박원동 전 국장, 민병주 전 단장 등은 가림막 속에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앉아 유의미한 질문에는 답변을 거부하고, 불리한 정황이 나오면 “기억하지 못한다”며 피해갔다. 이들의 답변 내용을 대략 정리해 보았다.
“(권영세와 통화 여부에) 통화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박원동)
“(서상기와 통화한 사실이 있느냐고 묻자) 기억을 못하겠다.” (박원동)
“(김용판 청장에게 수사발표 다그쳤냐고 묻자) 사건과 관련해 고생하고 있어 인사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전화했다.” (박원동)
“(댓글 지시 받았느냐는 질문에) 그런 지시 받은 적 없다.” (김하영)
“(댓글 대선개입 의혹에 대해) 종북세력의 선전선동에 대응하기 위한 활동이었다.” (김하영)
“(심리전단 댓글 활동 경찰 진술에 대해) 답변하기 곤란하다.” (김하영)
“(야당 의원이 대답하라고 추궁하자) 재정신청 중이어서 답변할 수 없다.” (김하영)
“(경찰 진술 내용 확인해 달라고 하자) 답변 드리기 곤란하다.” (김하영)
“(오피스텔 대치상황에 대해) 3일째 감금당한 상황...무서웠다고 기억한다.” (김하영)
“(수사 축소 의혹 질문을 받자) 동의할 수 없다. 정치적 고려 없었다” (사이버 분석관)
“대선개입 아니다. 종북 심리전을 펼친 것이다.” (민병주)
“대선 개입 의혹 받을 만한 활동 전혀 하지 않았다.” (이종명)
<가림막에 숨은 증인들(위) / 황급히 회의장 빠져나가는 '국정원녀'(아래)>
썩은 오물통 같았던 증인석
새누리당의 비호 아래 대부분 증인들이 사실을 부정하더 그 때, 또박또박 당시 상황을 증언해준 사람이 있었다. 썩은 ‘오물통’ 같은 증인석에서 하나의 보석이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당시 경찰 수사팀을 이끌었던 권은희 수사과장이 바로 그다.
조금도 주저함 없이 ‘김용판의 증언은 거짓말’이라고 했다. 김 전 청장은 지난 16일 청문회에 나와 수사 당시 권 과장에게 전화한 게 “격려전화를 한 것일 뿐”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하지만 권 과장은 그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한 때 상관이었던 사람의 증언이 사실이 아니라 거짓이라고 폭로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많은 시민들이 감동의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권은희 과장>
권은희 과장의 ‘양심’ 보석처럼 빛나다
권은희 과장. 그의 양심과 정의감은 청문회 내내 보석처럼 빛났다. ‘권은희 청문회’라고 불러도 될 만큼 그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가 청문회장 전체를 압도했다. 새누리당은 권 과장의 입을 막으려했고, 야당은 그의 입에서 한톨의 진실이라도 더 얻어내려 애썼다. 권 과장의 입에서 나온 ‘양심의 소리’다.
“(김용판의 ‘격려전화’ 주장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 거짓말이다.”
“수사 내내 서울청에서 지속적으로 부당한 개입이 이뤄졌다.”
“경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는 대선에 영향을 주려는 목적이었다.”
“수사 내내 어려움과 고통 느꼈다.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을 막는 부당한 지시에 기인한 경우가 많았다.”
“김 청장(김용판)이 직접 전화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12월 15일 서울청이 수서서에 전화해 ‘키워드 줄여달라’고 요구했다. ‘키워드 축소’는 곧 수사 축소를 의미한다.”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대선에 영향 미치기 위한 부정한 목적으로 한 것이 분명하다.”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당시 나온 자료는 객관적이지 않았다. 더구나 공직선거법 관련 자료는 은폐·축소해 발표했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감금당했다는 김하영의 주장에 대해) 감금으로 보기 어렵다. 당시 저와 (김하영과) 통화가 진행 중이었고 (김하영은)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 도곡지구대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김하영에게) 통로를 열어주겠다고 했다.”
‘양심의 소리’에 정신줄 놓은 새누리당 위원들
권 과장의 ‘양심의 소리’를 듣는 게 무척 거북했는지 새누리당 특위위원들은 일제히 그녀를 공격했다. 그중 ‘백미’는 탈북자 출신 조명철 의원이었다. 조 의원은 “권 과장이 생각하는 수사기법, 생각, 감정과 타인의 그것이 불일치 될 수 있겠다”며 “권 과장은 광주의 경찰이냐, 대한민국의 경찰이냐”라고 물었다.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을 해서라도 권 과장의 ‘양심의 소리’에 흠집을 내보려는 수작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권 과장이 애당초 민주당을 도울 목적으로 수사에 임했다”는 억지 주장과 “(권 과장의) 수사 능력이나 증거판단 능력이 부족해 보인다”는 인신공격성 발언도 등장했다.
권은희 과장. 그녀는 유능한 수사경찰이다. 사법시험(43회)에 합격해 청주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던 중 2005년 여성 경정 특채 1호로 경찰에 투신했다. 2007년 서울 서초경찰서 수사과장에 부임해 서울청 첫 여성수사과장의 탄생을 알린 후 지금까지 줄곧 일선서 수사과장을 맡고 있다.
여성 경정 특채 1호, 변호사 출신 수사과장
경찰에 투신한 2005년부터 지금까지 그의 소신을 지켜오고 있다. 2005년 4월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권 과장이 한 말이다. 수사경찰로서의 자부심과 경찰이 지켜야할 양심과 덕목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적시하고 있다.
“수사의 기본은 사실관계를 입증할 법률적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는 일이죠. 오히려 법률가 출신 수사과장이 기록물을 통해 공판을 유리하게 끌고 나갈 수 있습니다.”
“경찰이 외부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고 내부적으로 자긍심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보석 같은 ‘양심’이 민주주의 지켜낸다
그렇다. 권 과장은 지금 경찰의 자긍심을 높이는데 기여하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그대로 행동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그녀의 상관도, 그녀의 부하도 죄다 엄연한 사실과 증거에 고개 돌리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녀는 흔들림 없이 ‘양심의 소리’를 내고 있다.
권 과장 같은 ‘양심’이 있기에 희망이 있는 거다. 허약한 민주주의를 굳세게 떠받치고 있는 ‘양심’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있는 한 이 땅의 민주주의는 강하고 힘차게 성장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