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애인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김대호 씨가 '패러다임'이야기를 했으니 장애인 운동의 패러다임으로 '나는 장애인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그 흐름은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동등한 위치에서 인간으로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와 자유의 많은 부분에 제한당하는 차별을 경험하여 왔다. 장애를 이유로 가정과 사회에서 격리되어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다"는 것을 확인하고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권리의 주체'로 당당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말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나도 그 장애인 운동 흐름에 따라, 태어나서 23년간 비장애인으로 장애인의 '장'도 몰랐던 사람이, 지금은 '나는 장애인이다'라고 열심히 외치려 하고 있다.
나는 장애인이다. 비록 김대호 씨가 언급하는 '민주 진보가 앓고 있는 3대 발달장애 중 하나(NL적 장애)는 아니지만, 나는 비장애인이었을 때 정말 재미나게 아무 생각 없이 잘 먹고 잘 놀던 날라리(NL)였다. 대학 1학년 마치고 해병대 갔다 와서 또 날라리(NL)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행글라이더를 즐겨 타다가 떨어져서 척수를 다쳐 시퍼런 24살의 나이에 장애인이 되었다.
장애인이 되었을 때 나는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고, 집구석에 처박혀서 5년 동안 죽느냐 사느냐는 고민 속에 20대를 다 보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살아보려고 밖을 돌아다녀 보았다. 처음 밖을 나왔을 때 아파트에서 엄마와 같이 다니는 꼬마가 휠체어를 탄 나를 신기하게 보면서 '엄마, 이 아저씨는 왜 휠체어 타고 다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엄마는 '엄마 말 듣지 않아서 그래'라고 무슨 기분 나쁜 것을 본 것인 양 휑하니 아이를 데리고 가버렸다.
나는 엄마 말을 듣지 않아서 장애인이 된 것은 맞다. 기독교인인 어머니께서 하신 "주일날 행글라이더 타지 말고 교회 가라"는 말씀을 따르지 않고 행글라이더 타다가 떨어져 장애인이 되었으니까. 그러나 이 땅에 251만 명이 넘는 장애이인이 모두가 엄마 말을 듣지 않아서 장애인이 된 것은 아니다.
나는 그 경험 때문에 또다시 몇 개월을 혼자서 속앓이를 했다. 스스로 부끄러운 자아에서 벗어나지 못해 겨우 맛 본 집밖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다시 잠가 버렸다. 그냥 동네 아이와 그 엄마에게서 들은 사소한 말 때문에….
우리 장애인들은 이석기 지원 법률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요즘 장애인계에서는 발달장애인 부모들과 그 당사자들이 '발달장애인 지원 및 권리 보장에 관한 법률'을 만드는 일이 중요한 운동 과제 중 하나이다.
김대호 씨가 두산백과사전에서 찾아낸 '염색체 이상 등 여러 이유로 운동 발달 지연과 언어발달 지연, 전체적 발달이 지연된 사람들인 발달장애인'들이 이제 장애 영역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펼 수 없었기에 소외되고 배제되고 차별받아왔던 세상을 바꾸기 위한 내란 음모(?)를 꾸미고 있다. 장애인으로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행동까지 불사하고 있다.
나는 진중권, 김대호 씨가 이석기 의원에 대한 국정원의 내란 음모 사건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논평하기보다는. 단지 비난하고 혐오스러운 투로 비아냥하기 위해 '발달장애'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느꼈다.
물론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에서 그 상황에서 '발달장애'라는 말을 표현했다는 것이 무슨 큰 잘못이냐고 따지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률을 만들고 있다. 만약 이석기 씨가 발달장애를 안고 있다면 결국 우리는 '이석기 지원 및 권리 보장을 위한 법률'을 만들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인 '발달장애인'들은 그들이 인간으로 태어나, 비록 무엇이 정상인지 모르겠지만, 정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보다는 전체적으로 발달이 지연되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
더더욱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인간이면 최소한으로 누려야 할 모든 기본적인 권리에서부터 배제되고 소외되고 격리되어 살아갈 이유가 없다. 왜 사회로부터 그들의 정체성 자체가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일부 명망가들이 발달장애인이 가지는 특징을 소재로 그들이 비난하고 싶은 대상을 공격할 때 그들 속은 시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들과 부모들, 장애인 운동을 하는 사람들, 아무리 중증 장애인일지라도 지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려는 환경을 만들려고 피터지게 노력하는 이 사람들에게, 진보적인 사람들이 던진 무심한 한마디가 아프고 아픈 상처로 파고든다는 것을 왜 모를까?
가장 심각한 것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것이다. 알면서도 계속 그렇게 한다면 맞서서 싸우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외쳐도 모른다면, '정상인'들만을 위한 이 사회는 서로의 차이 때문에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정체성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무관심하고 무감각하기 때문이다.
장애 인지적 감수성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자
내 하반신은 '무감각'하다. 내 하반신처럼 '무감각'한 '정상인'들의 사회에 진보적인 인사가 던진 그 말이 오히려 우리 모두가 조금이나마 고민하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이라면 장애 인지적 감수성을 갖추어야 하지 않겠나!
그것이 세상이 진보적으로 변하는 길이다. 무한 경쟁의 세상에서 차별받는 사람들이 함께 연대해서 '무한 경쟁' 체제의 변화까지(내란 음모?) 만들어가는 꿈을 함께 꾸고 싶다.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_facebook.asp?article_num=30130909103418
아무말이나 막 가져다 쓰는건 그 말에 숨어있는 차별과 야만을 그대로 차용하는 걸수 있음을 명심해야 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