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원짜리 대자보가 마냥 반가운 이유!!

가자서 작성일 14.01.06 21: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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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원짜리 대자보가 마냥 반가운 이유!!  [바람부는언덕님 글]

 

 

'중앙대학교는 창학이념 '의'와 '참'의 정신을 교육이념으로 삼는다. 즉 중앙인은 학문탐구를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올바른 인간 정신을 바탕으로 봉사와 참여를 실천하여 사회정의를 구현하여야 한다.' -중앙대학교 건학이념 중에서


중앙대학교가 표방하는 교육이념 속에 등장하는 '의'와 '참'의 개념은 '옳은 것', '바른 것' 등 그 자체로 보편성을 지닌 절대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진리 추구', '봉사와 참여', '사회 정의'의 개념 또한 사회구성원의 합리적 인식수준에 부합하는 보편성을 지닌 개념이다. 보편적이라는 단어가 '두루두루 미치고 통한다'는 사전적 의미가 있는 말이고 보면, 중앙대학교는 실천지성의 양산소가 되어야 할 대학교의 존재 이유에 부합하는 바람직한 교육이념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처럼 바람직한 교육이념도 우리사회의 공고한 현실의 벽 앞에 서면 그저 활자화 된 문자로 전락해 버리기 일쑤다. '의'와 '참'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보편적 가치를 지닌 숭고한 교육이념도 한순간에 무의미한 언어적 수사로  퇴색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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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가 파업 중인 청소 노동자가 학교 건물에서 구호를 외치거나 교내에 대자보를 붙일 경우 1인당 100만 원씩 학교에 지불하게 하는 '간접강제신청'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앙대학교의 이같은 처사는 보편성을 지닌 절대적 개념이 자의적 해석 여부에 따라 특수성을 지닌 상대적 개념으로, 나아가 언제든 무개념으로 뒤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중앙대학교 청소노동자의 이번 파업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합법적인 파업이다. 노동자들이 사측의 (물론 중앙대학교가 사측은 아니다) 부당한 대우와 근로조건에 대응해서 교섭하고 발언하는 것은 헌법이 인정하는 지극히 보편 타당한 행위이자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학교 측에서는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권리 보호를 위해 벌이는 파업에 대해 '업무방해'라는 상대적 개념을 부여했다. 언급한 대로 보편성은 이처럼 언제든 상대적 개념으로 바뀔 수 있고, 주로 사회적 강자들에 의해 빈번하게 이용되며 용인되어진다. 


그러나 학교 측의 행위 그 어디에도 교육이념에 명시되어 있는 '의'와 '참'의 정신, '진리 추구', '사회 정의'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힘의 논리에 입각한 가진 자의 횡포와 억압만이 존재할 뿐이다. 학생들에 따르면 중앙대학교는 이 전에도 학교 측을 비판하는 포스터의 부착을 금지하는 등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측면이  강했다고 한다. 또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의 확산을 막기 위해 당시 학내에 붙은 대자보를 철거해 버리기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자신들이 내세운 교육이념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 행위들로 학교의 위상과 전통에 먹칠을 하고 있는 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청소노동자들의 권리찾기를 지지하고 격려하며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오히려 기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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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학생들의 열기가 매우 뜨겁다. 파업 중인 한 조합원이 서툰 글씨로 "파업 중이라 깨끗하게 못해줘서 미안해요" 라는 대자보를 남기자 학생들은 "불편해도 괜찮아요"라고 화답한다. 또 다른 학생은 '이것은 백만원짜리 자보입니다'라는 대자보를 통해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할 대학이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마저 원천봉쇄하는 곳으로 변질된 세태를 꼬집으며, 대학은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 그러나 하지 못해 왔던 말을 누구나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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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코끝이 찡해온다. 이처럼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반쪽 세상을 만든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썩은 내 진동하는 시궁창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풀이 자라고 꽃이 피어나듯 학생들이 공의와 정의가 무너진 이 시대에 무엇이 '의'이고 무엇이 '참'인지 헤아릴 수 있는 분별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청소노동자의 파업에 맞서 학교 측이 보여준 무개념의 대응방식에 개념있게 되받아치는 학생들의 모습 속에서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의 씨앗 하나를 발견한다. 최첨단 디지털 방식이 판을 치는 시대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 투박한 아날로그식 소통방식이, 시대적 양심과 사회정의에 눈감고 귀막은 이 낡은 시대와 세대를 향해 외치는 젊은 지성들의 당찬 목소리들이 그래서 반갑고 또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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