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에 대한 서울대 총학생회의 성명서

찌질이방법단 작성일 15.10.23 1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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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요구하는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성명서


역사 앞에 부끄러운 자, 당신은 누구인가?
역사는 사실의 나열이 아니다. 역사란, 역사가가 사료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여 해석한 결과물이다. 역사를 기술하는 자의 역량, 관점 그리고 그의 양심과 이를 수용하는 사회 구성원의 지성에 맡길 문제다. 그만큼 다양한 관점이 존중받고 토론되는 분위기가 민주주의 사회의 조건이다. 그러나 지금 ‘올바른 역사’라는 명목으로 정부의 일방적인 역사 서술을 강요하는 당신은 대체 누구인가?
역사의 해석과 서술을 국가에서 독점하게 함으로써 과거로의 퇴보를 꿈꾸는 자들이 있다. 학계부터 여당, 그리고 정부까지.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을 위시한 뉴라이트 학자들은 통일된 역사를 가르친다는 명분으로 자신들의 사상을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주입하려 한다. 학자라는 자들이 다양한 해석과 관점을 국론의 분열이라 폄하한다. 비판적 재구성이라는 임무는 망각하고, 과거 권력이 세워둔 문구에 역사라는 이름을 갖다 붙인다. 이들 눈에는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반대하고 집필을 거부한 수많은 동료 학자들마저 편향된 시각을 사회에 흩뿌리려 준동하는 이적 세력에 불과하다. 또한 이 학자들에게 정치권이 힘을 실어준다. 입맛에 맞지 않는 역사관을 '부정적인 역사관'이라 칭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5.16 쿠데타를 쿠데타라 하지 못하는 황교안 국무총리. 그리고 그 위엔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주창하고 나선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당신은 지금의 역사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자다. 아버지 또는 스스로가 친일행각을 벌인, 자유를 짓밟고 독재의 그늘을 덧씌운, 그래서 오직 자신의 사관만을 강요해야 하는 부끄러운 자이다. 권력을 이용해 우리의 눈을 가리고 당신의 우상과 국부를 미화하려는 비겁하고 비열한 자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민주사회에서 교과서 집필을 국가가 독점하면서까지 역사를 뒤바꾸려 하는가.

당신에게만 올바른 역사
이 '올바른 역사교과서'에 기술될 내용은 오직 당신에게만 올바른 역사다. 당신이 미화하고자 하는 시기는 식민지가 되어 억압당한 굴욕의 시대요, 총칼 앞에 민주주의가 무릎 꿇은 굴종의 시대다. 당신이 숨기고자 하는 기록은 이에 저항해 승리를 쟁취한 투쟁의 역사다. 당신이 찬양하는 자들은 과거의 청산을 막고 자신의 뜻대로 나라를 주물렀던 탐욕스러운 인간들이다. 당신의 우상은 폭력으로 정권을 찬탈하고 독재로 민주주의를 유린하였다. 당신의 국부는 친일부역자를 요직에 앉히고 그들과 손잡아 왕으로 군림하였다. 그들의 손에 흘린 우리 선배들의 피로써 쟁취한 자유다. 당신은 무슨 자격으로 그 희생과 가치를 무위로 돌리려 하는가?
이미 당신은 교과서를 입맛에 맞게 수정한 전과가 있다. 친일행각은 미화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사를 좌파라는 이유만으로 내용 축소를 지시했다. 윗사람의 눈치가 보인다고 하였다. 노동권을 위해 투쟁한 열사의 기록 대신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사진을 넣으라 지시했다. 당연한 권리를 위해 자신의 몸마저 불사른 투쟁의 의지와 헌신을, 당신의 우상이 이룬 일이 더 중요하단 이유로 삭제했다. 그 '업적' 뒤에 가려져 고통 받은 노동자들의 피와 눈물은 기득권의 눈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눈물로 얼룩진 이면에는 눈을 돌린 채, 화려한 결과만 보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라 자위하는 자들은 반성하라. '올바른 역사'는 당신만의 역사다.

우리 후세가 배울 역사
정부의 입맛대로 바뀔 교과서는 우리의 후세가 배우게 될 교재다. 그리고 그 안에 가득할 것은 권력의 선전문구를 역사라 참칭한 결과물이다. 국가 차원에서 청소년을 상대로, 우리의 후세를 상대로 이를 주입하는 것은 선배와 선조의 존재마저 지우려는 심각한 행위이다. 대학은 사회의 지성이며, 대학생은 어두운 현실에 직면했을 때 행동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를 위해, 미래의 후배들을 위해, 우리 학생들이 움직일 때다.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라. 이곳엔 당신의 역사를, 당신의 억압을, 당신의 만행을 반대하는 만 육천 학우가 두 눈을 부릅뜬 채 지켜보고 있다.
역사 앞에서 부끄러운 당신, 우리의 눈을 떳떳이 마주볼 수 있다면 우리의 목소리에 대답하라.

제57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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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을 바라지 마시고 한번 끝까지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을 모은 서울대학교의 수준이 정말 높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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