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여러분. 앵커브리핑입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 오페라의 유령 >에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면 속에 숨기고 아름답게 노래하는 남자. 팬텀이 등장합니다.
본디의 모습을 숨기고 남 앞에 서는 것은 묘하게도 심리적 안정을 주기도 하고 그 어떤 쾌감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래로 가면극은 무궁무진하게 많은 버전을 만들어냈습니다.
탈춤과 마당극은 때로는 권력자를 조롱하기 위해 등장했습니다. 미국만화에 등장하는 이른바 맨 시리즈. 배트맨 수퍼맨 아이언맨까지 모두가 자신의 정체를 숨깁니다.
그 정체를 몰라야만 하는 지점에서 개인의 정의감과 사회적 정의가 만나고 실천되며 그것이 쾌감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가면극들은 갖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쾌감은 사실은 또 다른 측면에서 준비돼 있기도 합니다. 즉, 그 정체가 궁극에 가서는 밝혀지거나 혹은 상대방만 모를 뿐 대중들은 은밀하게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스크를 쓰거나 장막으로 가린 채 진행되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아마도 이런 가면극의 확장된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궁극에 가서는 가면과 장막이 벗겨질 때의 쾌감입니다. 반전의 감동이 거기에는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2015년의 한국사회에는 또 다른 복면들이 존재합니다.
대통령과 여당대표는 집회 참여자들에게 복면을 벗으라 했습니다. 얼굴을 감추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복면을 쓰는 것은 마치 IS와 같다는 비유마저 나왔지요. 이른바 폭력시위에 대한 '무관용 원칙' 얼굴을 공개하라는 정부의 원칙은 매우 단호해 보입니다.
여기엔 이런 반론이 붙습니다. 민주사회에서 시민이 자유로운 목소리를 내는 데 반드시 조건이 따라야만 하는가. 얼굴을 내밀고, 복장도 단정히. 그리고 조용히.
그리고 다른 한 편에는 이런 복면도 있습니다. 어제(23일) 발표된 역사교과서 집필진 명단입니다.
17명은 공모로 선발됐고, 30명은 초빙됐습니다. 소속도 전공도 모두 극비. 심지어 집필진마저 서로의 얼굴을 모른다 하니 보기에 따라선 마치 가면무도회의 또 다른 버전 같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반론은 정체를 밝히면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었지요.
자, 그러니 하나는 국가가 그 복면을 벗기고 싶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들이 그 복면을 벗기고 싶어하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서로 벗으라 하지만 모두가 벗기를 거부하는 것.
그리고 문제는 이런 가면극들에는 그 어떠한 쾌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하여 궁극에 가서 그 복면과 장막이 모두 걷혀진다 한들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쾌감이 아닌 씁쓸함과 자괴감뿐이 아닐까. 그 어떤 반전의 감동도 없는 …
게다가 이 가면극들은 오페라의 유령처럼 애틋하지도 않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https://youtu.be/g_6xUW04k_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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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복면,마스크 쓰면) 시위자가 누군지 모르니 IS(테러리스트)와 같다!
2.근데 우리가 하는건 비밀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