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숙하고 경건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빈소 풍경에는 어색한 점이 없지 않았다. 장남인 은철(59)씨가 보이지 않고, 차남인 현철(56)씨가 줄곧 맏상주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그런 은철씨가 26일 YS의 영결식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은철씨는 운구에 앞서 유해와 작별하는 인사를 할 때 중절모와 선글라스를 쓴 모습으로 다른 가족들과 함께 섰다.
그는 국회에서 열린 영결식 때도 어머니 손명순 여사와 동생인 현철씨 사이에 앉아 부친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그동안 인터넷과 SNS상에서는 은철씨의 부재에 대해 궁금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김 전 대통령과 부인 손명순 여사는 슬하에 장녀 혜영(63), 차녀 혜경(61), 장남 은철, 차남 현철, 3녀 혜숙(54)씨 등 2남 3녀를 뒀다.
▲ 1992년 14대 대선 무렵 김영삼 후보와 손명순 여사가 가족들과 기념 촬영을 했다. 맨왼쪽부터 맏아들 은철 씨, 차남 현철 씨 부부, 그리고 사위 이창해 씨와 첫째딸 혜영 씨 부부, 둘째딸 혜경 씨와 사위 송영석 씨, 막내딸 혜숙 씨와 사위 이병로 씨 부부가 자리했다.
딸들은 가정주부로 평범한 삶을 살아 그렇다지만, 장남 은철씨의 활동상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2008년 가을 YS의 부친상(김홍조 옹)일 때도 차남 현철씨가 사실상 상주 노릇을 했고, 장남은 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은철씨와 관련해서는 몇 가지 일화가 전해진다.
은철 씨가 결혼식을 올린 건 김 전 대통령이 신군부에 의해 가택 연금 중이던 1982년이었다. 당시 신군부는 특별히 김 전 대통령에게 은철 씨의 결혼식 참석을 허용했지만, 김 전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다.
"나는 아버지 이전에 정치인"이라며 군부의 가택연금에 항의하는 뜻으로 결혼식 참석을 거절한 것이다.
결국 은철 씨는 아버지 없이 결혼식을 치러야했고, 이후 미국으로 떠나 평생을 해외에서 은둔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건강도 좋지 않다고 한다.
MB 정부 시절 청와대 춘추관장과 홍보기획비서관 등을 지낸 이상휘 위덕대 부총장은 23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은철씨가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많이 아프다. 원래 건강이 안 좋은데다가 지금 몸이 아파서 빈소에도 거의 못 나올 상황에 있다”며 “정말 비운의 황태자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이 부총장은 1996년 일화도 전했다. 누가 전화로 부탁을 해 서울 사당동 허름한 술집에 가게 됐는데 은철씨가 만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 아들인 것을 술집도 몰랐고, 외상값도 많이 있었는데 술값을 못 내고 만취해 있어 술값을 내고 왔다는 것.
이 부총장은 청와대 경호팀이 와서 은철씨를 데리고 나갔다면서 “그 당시에만 하더라도 상당히 자신에 대해서 억울하다고 할까. 약간 기가 많이 눌린 듯한 느낌이 있었고 본인의 처지에 대해서 상당히 비관적인 면이 많이 보였다”며 “결국 아직까지도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