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가 없어서 친일파를 등용했다고?

무명객혼돈 작성일 16.10.18 16: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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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사법살인

이승만 - 조봉암(대한민국 최초의 사법살인)

            

         보도연맹 사건

            경찰청 과거사 위원회는 경찰 전산자료를 검토한 결과, 한국전쟁 당시 최소 민간인 1만7천716명이 학살됐으며,

          이 중 3천593명 이상이 보도연맹원이었다고 발표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등

            민간단체들은 "6만명의 보도원이 학살됐다는 증언과 자료를 확보했으며 실제 희생자 수는 20만명에 이를 것"

           이라고 주장했다.             

 

            

박정희 - 민족일보 사건

           

           조용수, 안신규, 송지영에게 사형을 선고

           송지영 논설위원, 안신규 감사 등은 무기징역

           인민혁명당 사건

     

1975년 4월 9일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여덟 명은 다음과 같다.

이름한자당시 나이직업서도원徐道源53전 대구매일신문 기자김용원金鏞元41경기여고 교사이수병李銖秉40일어학원 강사우홍선禹洪善46한국골든스템프사 상무송상진宋相振48양봉업여정남呂正男32전 경북대 학생회장하재완河在琓44건축업도예종都禮鍾52삼화토건 회장

그 외의 형량은 다음과 같다.[9]

형량이름무기징역이태환, 유진곤, 전창일, 이성재, 김한덕, 라경일, 강창덕징역 20년정만진, 이재형, 조만호, 김종대징역 15년전재권, 황현승, 이창복, 임구호

 

 

결과[편집]

  • 장석구 : 1975년 10월 15일 서대문구치소에서 옥사.
  • 전재권 : 1982년 3월 2일 형집행정지로 석방, 이후 복역 후유증으로 1986년 5월 7일 병사.
  • 유진곤 : 1982년 3월 2일 징역 20년 감형, 1982년 12월 25일 형집행정지로 석방, 이후 투병생활 중 복역 후유증으로 1988년 5월 5일 병사.
  • 이재형 : 1982년 3월 2일 형집행정지로 석방, 이후 복역 후유증으로 2004년 12월 21일 병사.
  • 조만호 : 1982년 3월 2일 형집행정지로 석방, 이후 1996년 1월 26일 사망.
  • 이태환 : 1982년 3월 2일 징역 20년으로 감형, 1982년 12월 25일 형집행정지로 석방, 이후 2001년 3월 8일 병사.
  • 정만진 : 1982년 3월 2일 형집행정지로 석방, 이후 1998년 8월 4일 사망.
  • 이성재 : 1982년 3월 2일 징역 20년으로 감형, 1982년 12월 25일 형집행정지로 석방.
  • 전창일 : 1982년 3월 2일 징역 20년으로 감형, 1982년 12월 25일 형집행정지로 석방.
  • 김한덕 : 1982년 3월 2일 징역 20년으로 감형, 1982년 12월 25일 형집행정지로 석방.
  • 라경일 : 1982년 3월 2일 징역 20년으로 감형, 1982년 12월 25일 형집행정지로 석방, 이후 2010년 7월 12일 암으로 사망.
  • 강창덕 : 1982년 3월 2일 징역 20년으로 감형, 1982년 12월 25일 형집행정지로 석방.
  • 김종대 : 1982년 3월 2일 형집행정지로 석방.
  • 이창복 : 1982년 3월 2일 형집행정지로 석방.
  • 황현승 : 1982년 3월 2일 형집행정지로 석방.
  • 임구호 : 1982년 3월 2일 형집행정지로 석방.
  • 이현세 : 1979년 6월 28일 만기출감.[9]

진상 규명과 그 이후[편집]

  • 2002년 9월 12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인혁당(재건위) 사건은 중앙정보부 조작 사건이라고 발표하다.
  • 2004년 11월 2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과거사위: 위원장 오충일)가 인혁당 사건의 진상 규명 조사를 개시하다.
  • 2005년 12월 7일: 국가정보원 과거사위가 "인혁당 사건은 조작"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다.
  • 2005년 12월 27일: 재판부가 인혁당 재건위 사건(2차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 소를 받아들였다.
  • 2006년 12월 18일: 검찰이 이례적으로 구형없는 논고를 하다.
  • 2007년 1월 23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 8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다.
  • 2007년 8월 21일: 인혁당사건 희생자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의 소에서 서울지방법원은 국가가 총 637억여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다.
  • 2010년 1월 28일: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되어 10개월간 복역했던 일본인 다치카와 마사키(太刀川正樹, 당시 28세)에 대한 재심판결에서 무죄가 선고되다.
  • 1차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도 재심이 청구되다
  • 2013년 11월 28일:1차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D%B8%EB%AF%BC%ED%98%81%EB%AA%85%EB%8B%B9_%EC%82%AC%EA%B1%B4

https://ko.wikipedia.org/wiki/%EB%AF%BC%EC%A1%B1%EC%9D%BC%EB%B3%B4

 

 

 

인재가 없던게 아니고 다 잡아죽이고 제거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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