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을 맞이하여

lecard 작성일 16.10.26 18: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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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을 맞이하여 돌아보는 박정희 신화의 진실



1. 박정희는 청렴하여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다??
진실 - 재산 대신 재단을 물려주었다. 장군월급이나 대통령 월급으로 재단을 3개( 영남대재단, 정수장학회, 육영재단 등등) 만들 수 있는지부터 궁금하고, 그나마 영남대는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을 삥뜯어 만든 대학입니다. 물론 월급 한푼 안쓰고 20년간 숨만 쉬고 살면 재단 만드는게 대수겠냐만 시바스리갈도 먹어야되고 신재순이 용돈도 줘야 하고 심수봉 팁도 줘야 하므로 씀씀이가 적진 않았을 겁니다.

2. 박정희가 공사구분을 잘하여 친척들을 등용하지 않아서 친인척 비리가 없었다??
진실 - 유신정권의 국무총리 김종필은 박정희의 조카사위입이다. 그리고 당시 그 누구보다 2인자에 가까운 사람이기도 했구요. 박근혜의 당시 뻘짓이 지금 뉴스에 나오는 걸 볼때 그 당시에 친인척 비리가 없었다기보다는 언론통제를 빡세게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겁니다.

3. 새마을 운동으로 초가집이 없어질만큼 농촌 경제가 좋아졌다??
진실 - 그 당시에 초가지붕이 없어진 건 맞는데 농민 개인 빚으로 집을 리모델링하도록 했습니다. 결국 가계의 빚으로 작용했고 뭣보다 농촌경제가 좋아졌다면 70년대의 이촌향도 현상이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 그나마 도시의 노동환경도 좋지 않았고 전태일 열사는 분신을 하였구요.

4. 박근혜는 10.26 이후 어렵고 고생하였다??
진실 - 청와대에서 20년간 공주로 살다가 대구 촌구석에서 대학 이사장 하는게 그렇게나 고생이고 수치스러웠는지 묻고 싶습니다. 10.26 직후 박근혜는 영남대 이사장이었고 20대였습니다 . 결국 이건 그냥 어리광일 뿐이구요. 형제간에 진흙탕싸움하느라 힘들었을 수는 있지만 그건 시대적 환경 때문이 아니라 그냥 본인이 동생들을 보듬을 그릇이 안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5. 박정희는 독립운동의 꿈을 안고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간 비밀독립군이다??
진실 - 차라리 한국 진보정치의 실현을 위하여 새누리당 입당했단 말이 더 말이 됩니다. 그런 기록도 나오지 않고 당시 사람들 모두가 박정희를 일본군 출신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실제 독립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은 대놓고 박정희를 일본군 출신이라고 비판했구요 . 또 박영만이란 사람이 박정희 비밀광복군설을 박정희 전기에 넣은 초안을 두고 박정희가 오히려 화를 냈습니다. 그냥 어느나라 군인이냐보다는 사관학교 출신의 정규군장교라는 타이틀에만 가치를 두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6. 박정희때 경제정책으로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었다??
진실 - 박정희때 경제규모가 커진 것은 맞으나 인플레이션도 그만큼 심했습니다 . 그리고 군정 초기에 화폐개혁하면서 민간의 돈을 틀어막는 등의 병크를 저지르기도 했구요. 실제로 경기가 좋아진만큼 민간의 삶이 좋아지지도 않았습니다. 북한을 추월하긴 했으나 압도적이지도 않았구요 . 80년대 이후 북한에 대해 경제적으로 압도할 수 있었던 건 박정희의 공이 아니라 독재자를 몰아내고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절차를 만들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절차와 합의에 따라 의사를 결정하므로 극적인 변화는 없지만 적어도 한 사람이 몇십년간 전횡을 일으키는 리스크도 줄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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