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제15차 변론에서 김 전 회장은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변론을 마치겠다고 하자 손을 번쩍 들고 “변론을 준비한 게 있다”고 말했다. 이 권한대행이 어떤 내용인지 묻자 “지금 시간이 12시가 넘었는데 사실 당뇨가 있다. 시간을 좀 주시면 음식을 먹고 하겠다”고 말했다. 이 권한대행이 재차 어떤 내용의 변론이냐고 묻자 “어지럼증이 있어서 시간을 좀 주실 수 있나”라고 말했다. 방청석에서는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이 권한대행은 김 전 회장이 변론 취지를 말하지 않자 “그럼 다음기일에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오늘 꼭 해야되겠다”고 말을 받았고, 이 권한대행은 “오늘 꼭 해야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김 전 회장은 “오늘 준비했으니까 하겠다. 점심을 못 먹더라도 하겠다”고 외쳤고, 방청석에선 다시 실소가 터졌다.
이 권한대행은 “재판 진행은 재판부에서 하는 것이다. 다음 기일인 22일에 기회를 주겠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지금 하겠다는데 왜 막냐. 12시에 변론을 끝내야된다는 법칙이 있나. 법칙이 없는데 왜 함부로 재판을 진행하냐”며 고함을 쳤다. 이 권한대행은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고, 헌재 재판관들은 일제히 퇴정했다. 김 전 회장은 재판관들이 퇴정한 후에도 안경까지 벗고 불만을 표시하다 헌재 방호원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일부 방청객이 “재판관들이 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하지 않는다”며 항의하다 퇴정당하기도 했다. 해당 방청객은 박 대통령 대리를 맡은 이동흡 변호사가 “박 대통령이 헌재에 출석해도 신문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로 변론하자 크게 박수를 쳤다가 주의를 받았다. 이 방청객은 이 권한대행이 “박 대통령이 헌재에 출석할 경우 소추위원 측과 재판관의 질문을 받아야 한다”고 결정하자 항의의 표시로 또 박수를 쳤다가 퇴정 명령을 받았다.
이 권한대행은 박 대통령 측 대리인에게 “박 대통령이 출석해서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나”라며 출석 의사를 물었다. 박 대통령 측 대리인은 “상의해보겠다”고 답했다. 이 권한대행은 “지난번부터 상의한다고 했는데 꽤 시간이 흘렀다. 일 반인이 법정에 출석하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출석하는 건데 다음변론 기일 시작 전까지는 말씀해줘야 한다”며 “예우 등 저희로서도 준비할 부분이 여러가지 있다”고 말했다. 또 “만약 출석할 경우 재판부에서 정해주는 기일에 출석해야 하는 점도 양해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날 변론에 불출석한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증인 채택을 취소했다. 박 대통령 측이 추가로 신청한 고영태씨에 대한 증인신청도 취소했다. 또 김수현 전 고원기획 대표 등의 녹음파일도 증거로 채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권한대행은 “이 사건의 핵심과 관련있다고 보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녹취록과 녹음파일은 중복증거라 재판정에서 굳이 녹음파일을 재생하는 식으로 들을 필요가 없다는 취지다.
강일원 주심 재판관은 “이번 사건의 핵심은 최서원(최순실)씨와 박 대통령의 관계인데, 해당 녹취록은 최씨도 직접 관계 된 게 아니고 고영태씨가 관계된 것”이라며 “피청구인(박 대통령) 측이 걱정하는 것처럼 핵심증거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이 권한대행은 “대신 주장하고 싶으신 부분을 서면으로 자세히 적어내면 충분히 감안해서 관련 녹취록을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측 이중환 변호사는 변론 후 언론 브리핑에서 “재판 진행의 공정성에 대해 상당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취재진이 “박 대통령이 출석을 간접적으로라도 하겠다. 안 하겠다 밝힌 적이 있나”는 등의 질문을 던지자 “출석 여부에 대한 질문은 그만 해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