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을 지원. 나는 건물의 4층에 잡혔다.’
지난 5월 16일 오전 4시20분쯤 부산시 부산진구의 한 수퍼마켓에 들어선 한 태국인 여성이 음료수 하나를 계산대에 올려놓으며 종업원 김모(27)씨에게 건넨 쪽지의 내용이다.
쪽지에는 ‘Help the police’ ‘I’m Thai’ ‘알려주세요. 나는 도움을 요청’처럼 영어·한국어로 도움을 요청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종업원 김씨는 곧바로 쪽지에 영어로 ‘112 전화해서 도와줄까’라고 적었다.
김씨는 이어 태국인 여성이 구매한 물품의 포인트 적립을 위해 필요하다며 휴대전화 번호를 물은 뒤 전산 입력을 하는 척하며 휴대전화 번호를 급하게 쪽지에 옮겨 적었다.
그러나 이 태국인 여성은 문 앞에서 감시하던 남성이 수퍼 안을 들여다본다고 느꼈는지 김씨가 내민 쪽지에 급하게 X자 표시를 하고 나갔다.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또 다른 태국인 여성 4명도 동시에 수퍼를 빠져나갔다.
종업원 김씨는 이날 오전 8시30분쯤 퇴근하면서 태국 여성이 건넨 쪽지를 인근 경찰서에 전달했다. 하지만 경찰은 쪽지에 장소가 특정돼 있지 않아 접근이 어렵다고 판단해 외국인 관련 범죄를 담당하는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에 사건을 넘겼다. 국제범죄수사대는 쪽지에 적힌 휴대전화 번호를 추적한 결과 유사 성매매 업소인 ‘키스방’을 운영한 전력이 있는 이모(38)씨의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수퍼마켓 주변을 탐문하다가 인근 4층짜리 건물에 주목했다.
이틀 뒤인 5월 18일 경찰은 이 건물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려던 중 경기도 오산의 외국인지원센터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태국인 여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부산진구의 한 철학관 건물에 감금돼 성매매를 하고 있으니 구해 달라”고 글을 올렸다는 것이었다.
곧바로 건물을 급습한 경찰은 쪽지 속 휴대전화 번호의 주인이자 성매매 알선 업주인 이씨와 종업원 등 4명을 현장에서 검거했다. 건물에는 쪽지를 건넸던 여성 등 태국인 성매매 여성 5명이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지난 1월 외국인 여성 알선 브로커 김모(40)씨에게서 태국인 여성 5명을 소개받은 뒤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이들 여성을 이곳에 가둬놓고 불법 성매매 영업을 해왔다. 이씨는 성매수 남성을 상대로 1회당 10만원 상당을 받았지만 성매매 여성에게는 첫 달은 한 푼도 주지 않았다. 둘째 달부터 1회당 4만원가량을 지급했다.
이씨는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4층짜리 건물 외부의 철학관 간판을 그대로 두고 성매매 업소로 운영하는 4층의 출입문에는 아무런 간판 없이 자물통을 걸어뒀다. 신원이 확인된 남성 고객만 입장시켜 성매매 영업을 했다. 물론 출입문 안팎에는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해 성매수 남성의 신원을 확인하고 경찰 단속에 대비했다.
경찰은 일단 성매매가 확인된 남성 5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씨 휴대전화에서 부산 지역 남성 등 2만 명의 연락처를 입수했다. 이 가운데 우선 성매매가 의심되는 300여 명을 추가 조사 중이다. 경찰은 이씨와 브로커 김씨 등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김병수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장은 “브로커 등이 돈을 받고 외국인 여성을 관광비자나 위장결혼으로 입국시켜 성매매나 마사지 일을 하게 하는 경우가 많지만 수법이 치밀해지고 있어 지속적으로 단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http://v.media.daum.net/v/20170705013209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