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가족간첩단 사건'에 휘말려 누명을 쓰고 숨진 고(故) 최을호씨의 장남 낙효(63·지적장애 3급)씨의 사인을 경찰이 조사 중이다.
12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9일 낙효씨는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 산소가 있는 전북 김제시 진봉면 고사마을 뒷산을 찾았다가 사흘 뒤
1.5㎞가량 떨어진 새만금 간척지 갈대밭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에 훼손 흔적은 없었다.
하반신에 갈대에 스친
약간의 생채기가 있을 뿐이었다.
현장에서는 낙효씨가 고사마을 방향으로 이동하다 갈대밭으로 들어간 흔적이
발견됐다.
경찰은 당뇨와 지적장애를 앓고 있던 낙효씨가 길을 헤매던 중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이곳 갈대밭은 낙효씨가
유년시절을 보낸 장소였다.
유가족은 "30여년 만에 김제를 찾은 그가 고향의 정취와 향수를 느끼고 싶어서 갈대밭으로 들어간 것
같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유가족은 낙효씨 시신의 부검을 원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낙효씨는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의 당사자인 아버지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제를 올리기 위해 형제들과 김제를 찾았다.
고향을 떠난 지 34년 만이었다.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은 1982년 김제에서 농사를 짓던 최을호씨가 북한에 나포됐다 돌아온 뒤 조카인 최낙전·최낙교씨를 간첩으로
포섭해 간첩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당시 을호씨에게 사형이 선고됐고 1985년 10월 형이
집행됐다.
낙효씨는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지적장애를 얻었고 이후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고인은 억울하게 사형당한 아버지의 무죄 판결문을 들고 고향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다"며 "1차 시신 감식 결과 특별한 원인은 발견되지
않았고, 보통 성인 키보다 큰 갈대숲을 헤매다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01&aid=0009402873
일가족이 간첩으로 몰린 지 34년만에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은 고 최을호 씨의 장남이 갑자기 실종됐다 주검으로 발견됐다.
아버지의 무죄판결 소식을 접하고 성묘를 위해 산소를 찾은 지 이틀 만이다.
12일 전북경찰청에 따르면 전날 오후 전북 김제시 진봉면 고사마을 인근 새만금간척지 갈대밭에서 최낙효(63)씨가 숨져 있는 것을
수색 중이던 경찰헬기가 발견했다.
최 씨는 지난 9일 낮 가족과 함께 아버지의 산소에 제를 올리기 위해 고사마을 뒷산을 찾았다 마을 쪽으로 혼자 이동한 뒤 실종됐다.
경찰은 사체 검안 결과 타살 흔적을 찾지 못했으며 정확한 사인을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은 1966년 북한으로 납치됐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최을호 씨가 농사를 지으며 조카인 최낙전·낙교 씨를 포섭해 간첩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1982년 경찰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하고 기소된 사건이다.
경찰조사를 받던 최낙교 씨는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친 이근안 씨 등에게 40여일 간 시달려 구치소에서 숨졌다.
최을호 씨는 사형을 선고받아 1985년 10월 집행됐다.
최낙전 씨는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징역 9년을 복역하다 가석방됐으나, 보안관찰 등에 시달리다 4개월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씨 일가는 풍비박산났다. 전주교대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였던 최낙효 씨는 이 충격으로 학교를 전전하다 퇴직한 뒤 요양병원에서 중증당뇨 등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달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형된 고 최을호 씨와 징역형을 선고받은 고 최낙전 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위법·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헌법에 보장된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간첩행위를 한 범법자로 낙인찍혔다”며 “국가가 범한
과오에 대해 진정으로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됐다. ‘간첩마을’로 낙인 찍힌 고사마을 주민들은 오는 16일 유족들과 잔치를 열어 그동안의 회한을 풀고 위로할 계획이었으나 변고로 이마저 어렵게 됐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22&aid=00031910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