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성노예였던 김군자 할머니의 비참한 일생

Cross_X 작성일 17.07.26 18: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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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명 : 김군자
- 1926년 강원도 평창에서 3자매중 맏이로 태어남
- 아버지 10세때 사망
- 어머니 14세때 사망
- 부모가 죽자 고아가 되어 3자매가 친척집으로 뿔뿔히 흩어짐
- 17살때 인 1942년 수양딸로 거둬준 순경이 쪽지를 쥐어주며 역에 가서 누구를 만나라고 함
- 알고보니 위안부 강제 동원, 납치되어 중국 훈춘에 위안부로 끌려감.
- 타고가는 배에서부터 강간당하기 시작
- 하루에 20~ 40명의 일본군에서 당하는 성노예 생활, 1945년 8월 해방때까지 3년을 매일 30분에 한번이상씩 강간당함
- 탈출하다 잡혀서 모진 폭행으로 죽기직전까지 맞아 상처
- 일본군 말을 못알아듣는다고 맞아서 고막터져 왼쪽귀 평생불구 됨
- 1945년 광복이 되자 38일을 걸어서 함경도에 도착.
- 강을 건너는중 같이 살아남은 친구가 강에서 휩쓸려 익사하는 광경을 봄
- 위안부로 끌려가기전 결혼하기로 했던 남자와 다시 만나 짦은 동거시작
- 위안부였던 것때문에 남자 집안의 극렬한 반대로 결혼 못함
- 남자 얼마후 자살
- 남자와 사이에 낳았던 딸 5개월후 사망
- 식모살이 노점장사등으로 홀로 연명
- 위안부때 고통을 못이겨 자살시도등 7번 자살시도
- 위안부할머니를 위한 나눔의 집이 1998년 세워짐.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나눔의 집에 들어와 지금까지 기거
- 자신의 모든 재산등 2억 5천을 장학금으로 기부
- 2007년 미국 국회에서 위안부의 비참한 지옥생활 증언, 전세계 일본의 만행을 고발
- 지금도 찾아온 일본인들과 어쩔수 없이 악수는 하지만 손을 물에 닦는 이유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어서
- 박근혜때 위안부 합의후 조태규외교부 차관이 찾아오자 "내가 죽기전에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달라 절규"
- 돌아가시기 2주전 마지막으로 만난 공식 정부인사가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해달라"며 절규
- 이 말이 마지막 유언으로 됨. 13일후인 2017년 7월23일 사망
- 할머니가 사망하는 날까지 일본의 사과, 보상등 어떤것도 해결되지 않았음

김군자할머니에 대한 각종 인터뷰,기사,책자등으로 밝혀진 내용들만 추린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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