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이사는 설계업체 A사의 이모 부사장(52)을 상대로 "당신 회사가 50억원 상당의 일감을 따도록 힘써 주겠다"며 2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잠실진주아파트는 1981년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 16개동 1507세대로 지어졌다. 기존 건물을 허물고 아파트 16개동 2390세대를 새로 지을 계획이다. 사업비는 약 7300억원으로 추정된다.
검사는 "김 이사는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도 대부분 책임을 A사 이 부사장 등에게 전가하고 있고 개전의 의지가 전혀 없다"며 "죄질도 상당히 좋지 않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재건축 비리는 사업비를 증가시키고 부실공사 가능성을 높여 수많은 조합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친다. 건설의 연관 산업효과가 큰 만큼 그 폐해는 국가 경제 전반으로 퍼진다.
김 이사는 중형 구형을 예상하지 못한 듯 큰 충격에 빠진 모습이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흘렸고 변론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이사의 변호인은 "김 이사를 개인적으로 안 지 20년이 넘는데 (뇌물을 받을 때) 저와 한 번 상의를 했다면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김 이사는 (조합 임원이 뇌물을 받으면 공무원과 같이 취급해) 강하게 처벌하는 걸 알지 못했다. 돈을 돌려주면 끝나는 것으로 아는 등 법에 대해 아무런 개념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수사망이 좁혀오자 받은 뇌물의 일부인 1억4000만원을 A사에 반환했다.
현행법상 조합 임원이 1억원 이상의 뇌물을 받으면(요구·약속 포함) 10년 이상의 징역 혹은 무기징역에 처해 질 수 있다. 뇌물을 다시 돌려줘도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변호인은 "김 이사는 올해 7월4일 아침 잠실진주아파트 자택에서 남편을 위해 아침밥을 차리다가 들이닥친 수사관들에 의해 압수수색을 당하고 체포됐다"고 밝혔다.
이날 함께 재판을 받은 'OS업자'(홍보대행업자) 이모씨(45·여·구속기소)에게 검찰은 징역 5년, 벌금 5000만원, 추징금 1억원을 구형했다. 이씨는 뇌물 심부름꾼 역할을 하고 "나도 A사가 일감을 수주하도록 돕겠다"며 A사 이 부사장한테 1억여원을 챙긴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김 이사의 사례는 전문지식 없이 비리에 취약한 재건축조합 관계자들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연합 도시개혁센터 국장은 "아마추어들이 천문학적 규모의 재건축 사업을 주무르고 있다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블랙 코미디"라며 "건설업체들이 일부 주민들(조합 임원 등)을 상대로 뒷돈을 주고 조합 전체가 아닌 건설업체를 대리하도록 만드는 구조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와 업자 이씨는 모두 범행을 인정한다. 이들에 대한 선고공판은 다음 달 10일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이다.
잠실진주 사건은 건설업계에 대한 검찰의 집중 수사를 촉발시켰다. A사의 로비장부를 입수한 검찰은 회사와 거래한 다른 조합들과 대형 건설사 등 대기업으로 수사를 확대하는 중이다. 최근 경찰도 대형 건설사들의 재건축 비리를 특별 수사하기 시작하면서 건설업계의 고질적 병폐가 드러날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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