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어제(1일)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 과정에 “이면 계약은 없었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이면 계약 있었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 이면 계약이라는 용어가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보편적인 관점에서 2009년 12월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 계약 전후로 있었던 아랍에미리트와의 거래는 이면 계약이 맞습니다. 그 이면 계약은 파기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로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고 공교롭게도 새 정부가 아랍에미리트에게 저자세로 공을 들이고 있으니 수수께끼 같은 논란이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의 이면 계약으로 확실한 것은 군사 분야 지원 약속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아랍에미리트에 육해공군의 틀을 잡아주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아크부대 파병으로 일부분은 이행했지만 나머지 군사 지원 약속은 지키지 않았습니다. 아크부대도 이제는 쓸모를 다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어 군사 분야 양해각서는 이제 유명무실해졌습니다.
원전 수출 계약을 하면서 핵 폐기물을 우리나라로 들여와 처리하기로 했고, 리베이트도 오고 갔다는 의혹은 현재까지 '팩트'는 아닙니다. 의혹일 뿐입니다. 2009년 12월 수출 계약을 할 즈음에도 제기됐던 의혹입니다. 의혹으로 그칠지 팩트로 확인될지는 수사를 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의 이면 계약 전모가 밝혀지면 힘 들어지는 쪽은 우선 자유한국당입니다. 아랍에미리트 원전의 이면 계약은 이명박 정부 때 일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의 자유한국당 주류와 파벌이 다르긴 하지만 초록은 동색입니다. 어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밝혔듯 새 정부는 아랍에미리트 원전으로 인해 야기된 사태를 수습하는 쪽입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아랍에미리트을 방문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군사 지원 '이면 계약' 있었다!
이전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도 종종 해외파병부대를 방문했습니다. 멀리서 고생하는 장병들이니 각별히 돌봐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들의 해외파병부대 방문은 해당 해외출장의 주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파병부대 주둔지 주변국에 일을 보러 갔다가 짬을 내 파병부대에 들르는 식이었습니다. 송영무 국방장관과 임종석 실장이 한 달 간격으로 파병부대를 콕 집어 찾은 것은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국방장관이 한 달 전에 방문한 부대를 대통령 비서실장이 또 찾아갔다는 사실 자체도 그들의 방문이 ‘장병 위문’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임 실장과 송 장관은 아크 부대 장병 위문을 위해 아랍에미리트에 간 것이 아닙니다. 꼬인 실타래가 있을 것이라는 의문을 갖기에 충분한 정황입니다.
꼬인 실타래는 바로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 이면 계약입니다. 확인된 팩트들은 군사 지원 분야 양해각서를 체결했는데 우리 정부가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한 약속을 박근혜 정부가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김태영 국방장관은 원전 수출 계약 체결 직전 아랍에미리트를 2차례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아랍에미리트 군의 현대화를 위한 지원을 약속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김태영 장관은 2010년 1월 국방부 기자단 신년 기자회견에서 양해각서 체결을 사실상 인정했습니다. 그때 발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UAE 측에서 여러 가지 저희 군의 협조를 희망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러한 면에서 UAE에 저희의 능력이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군사교육훈련, 방산이나 군수지원, 고위급 상호방문 통한 군사교류협력, 더 나아가서는 필요하다면 기술에 대한 분야도 서로 협조할 수 있는 이러한 포괄적인 스펙트럼을 제시했고 그에 대해서 UAE는 굉장히 만족하게 생각했습니다.”
김태영 장관과 국방부는 양해각서 내용을 묻는 각계의 질문에 “확인해 줄 수 없다”라고 일관했습니다. 즉 체결은 했는데 내용을 밝힐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의문은 더욱 커져갔고 ‘아랍에미리트 유사시 지원’이라는 군사 동맹급 조항도 각서에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습니다.
● 확인된 양해각서의 내용들…
국방부는 2010년과 2012년 아랍에미리트에 파견할 전역 간부들을 모집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2010년에는 육해공군 본부의 전직지원과로 공문을 보낸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육군은 과학화훈련 전문가, 해군은 항만 방어와 함정 수리 전문가, 공군은 조종과 정비, 무장 전문가들을 전역한 간부들 중에서 수소문했습니다. 국방부는 400명 정도 모아서 아랍에미리트로 보낼 작정이었는데 100명도 못 찾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0년 시도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2012년 중반에는 아랍에미리트에 항공우주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국방부가 또 사람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이번에는 정비와 무장 특기의 간부들로 모집 대상의 폭을 좁혔습니다. 국방부는 공군에 “1억 이상의 연봉이 보장된다”는 당근도 던졌습니다.
사람이 제법 모아졌고 이듬해인 2013년 하반기에 항공우주센터가 설립된다는 말도 책임 있는 군 관계자 입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2013년 3월 국방부는 ‘없던 일’로 했습니다. 아랍에미리트행(行)을 준비하던 한 예비역 간부는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몸이 달아서 브로커까지 동원해 사람을 찾을 정도였다”며 “잘 되는 일인 줄 알았는데 국방부가 일방적으로 사업 중단 통보를 해왔다”고 말했습니다.
아랍에미리트 항공우주센터 설립 백지화는 박근혜 정부 초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마침 그때 박근혜 정부는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의 한전 쪽 이면 계약 의혹, 즉 핵 폐기물 국내 반입 여부를 조사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원전 수출 사업이 수상하게 진행됐다고 판단하고 일종의 ‘딜’로 제공하려던 군사 지원도 중단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합니다.
● 난처해진 아크 부대
원전 수출의 대가로 아랍에미리트에 파견한 특전사 위주의 아크 부대도 난처해졌습니다. 2011년 1월 파병된 아크 부대는 아랍에미리트 군에게 특전 교육 훈련을 시키는 것이 주임무입니다. 그런데 파병 3년쯤 지나자 더 이상 가르쳐 줄 게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아랍에미리트 측이 새로운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요구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몰래 감춰둔 교육훈련 프로그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아랍에미리트의 요구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합참 관계자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찾으려고 노력은 해봤지만 없었다”며 “검토 중이라고 답변하면서 시간을 끌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아랍에미리트의 서운함을 달래려는 시도였는지 모르겠지만 새 정부 들어 아크 부대에 간부 몇 명을 추가로 파견하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아랍에미리트 측이 거부했습니다. 아랍에미리트는 전투 병과 요원을 원하는데 우리 군이 파견하려던 간부들은 방산 특기였습니다.
청와대와 군 모두 임종석 실장과 아랍에미리트 이면 계약 파문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전 정부의 잘못이라고 해도 외교 관례상 계약과 이행 여부의 전모를 공개하기가 어려운 점, 이해는 됩니다. 만천하에 드러날 경우 국익에 해롭다고 한다면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 만천하에 드러날 경우 근본적으로 책임을 통감해야 하는 쪽은 자유한국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