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4월 南北회담 김정은 기획설·5월 北美회담엔 묵묵부답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 분위기가 급물살을 타면서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해 온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스텝이 꼬이고 있다.대북제재 기조를 유지하던 미국이 9일 오는 5월 북미(北美)정상회담을 수용하면서 한미(韓美)동맹론에만 방점을 뒀던 홍 대표가 되레 미국 입장과 멀어지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홍 대표의 주장대로 한미동맹을 우선시한다면, 대화로 입장을 선회한 미국을 따라야 하지만 한국당의 ‘안보공세’ 전략과는 모순이 된다.
이에 대해 당 안팎에선 모든 사안을 소위 ‘기승전(起承轉)·색깔론’ 방식으로 무리하게 밀어붙인 부작용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당내 한 중진의원은 “홍 대표는 냉전시대 사고방식에 머물고 있다”라며 “북한도 내부 강경파를 설득하면서 어렵게 대화 테이블로 나왔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6·13 지방선거 이전에 좌·우파가 대립하는 이념적 구도를 만들기 위해 홍 대표가 논리보다 선거공학에 치중하면서 자충수를 뒀다는 얘기도 나온다.
홍 대표는 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대표 회동에 참석 후 브리핑에서 “4월 말로 남북정상회담 일정을 잡은 것은 지방선거용”이라며 "지방선거 전에 평화무드를 조성해 선거를 이기고자 하는 것인데, 남북이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북한 입장에선 한국당이 지방선거에서 이기면 (정부의) 친북정책 동력이 상실되기 때문에 대화 파트너를 계속 격려해야 한다"며 "어떻게든지 (여당이) 선거에서 이기게 해야 하는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청와대 회동에 참석한 야당 대표 중 남북정상회담과 지방선거를 연계해 일종의 ‘음모론’을 주장한 사람은 홍 대표가 유일했다.
안보정책에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있는 바른미래당 유승민 공동대표조차 "북한이 일시적으로 시간벌기용 쇼를 하는 것인지, 실제로 비핵화의 길로 나올 것인지 여부는 앞으로 협상과정에서 확인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이를 지방선거 등 국내 정치와 연관시키진 않았다.
홍 대표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침체된 지지율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난달 평창동계올림픽에서부터 ‘안보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예상만큼 보수결집의 효과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중국 등 열강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대북문제를 강경일변도로 접근하는 바람에 오히려 과거 발언이 ‘부메랑’으로 작용하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로 홍 대표는 ‘4월 남북회담 기획설’ 제기 후 불과 이틀 만에 미국이 ‘5월 북미회담’에 전향적으로 돌아선 상황에서, 회담 성사를 반기지도 반대하지도 못하고 마뜩잖은 반응만 보였다.
홍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6·13 지방선거 공약개발단 출범식’에 참석해 “(미국이)마지막 선택을 하기 전에 외교적 노력을 다 해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북미대화를 방해하지 않겠지만 대화의 주제는 ‘북핵폐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북핵 폐기가 아니고 폐기로 가는 과정에서 잠정적 북핵 동결을 인정하자는 식의 주장은 한반도 5000만 국민에게 국가적 재앙이 될 것”이라며 “오늘 워싱턴 발표에도 우리당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홍 대표는 북미 정상회담 의제에까지 자신의 소신을 밝혔지만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전쟁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이 정상회담에서 ‘북핵 동결’로 의제를 설정할 경우, 현실적으로 야당이 쓸 수 있는 카드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대적으로 한미동맹을 더 강조해 온 한국당 입장에선 자칫 미국과 대립각을 세워야 할 상황에 놓일 우려까지 있다는 해석이다.
지난 8일 장제원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핵동결은 미국과 북한의 이해관계만 충족시키고 대한민국은 핵식민지로 만드는 무술늑약이 될 것이며, 우리 국민을 핵노예로 만드는 핵노예계약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비핵화 로드맵으로 잠재적인 ‘핵동결’을 선택할 경우, 자국의 이해관계를 중시한 미국을 비난해야 할 처지에 놓이는 셈이다.
미국이 이날 일본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맹국들에게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를 발표한 것도 한국당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한국당은 그동안 우리 정부가 미국이 추진하는 대북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결과, 경제보복 대상에 포함됐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달 19일 "한미 간 포괄 동맹에 금이 갈 조짐이 보인다"며 "미국이 철강무역 제재를 하면서 캐나다와 일본, 대만 등 전통적 우방국은 제외했지만 우리를 대상에 포함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6·13 지방선거까지 ‘4월 남북회담’에 이어 ‘5월 북미회담’ 개최로 대화 분위기가 지속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홍 대표의 ‘안보공세’ 전략도 흔들리는 형국이다.
지난달 24일 천안함 폭침의 주범으로 지목된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의 방남 후 ‘안보’를 고리로 결집하던 보수층의 움직임은 ‘남북 관계’ 변수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결국, 갑작스러운 북한의 도발로 남북한 관계가 경색되지 않으면 홍 대표의 안보론은 힘을 받기 어렵게 됐다.
[CBS노컷뉴스 이정주 기자] sagamore@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