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들 벌벌 떠는 '내각 군기반장' 이낙연 총리

심의 허준 작성일 18.04.05 21: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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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질문에 답 못하면 불호령

저출산·최저임금·미세먼지 등
주요 현안 발생한 부처 장·차관 정보 숙지 못했을때 강한 질타
"나한테도 제대로 답 못하는데 기자 질문에 어떻게 답할거냐"
장관들 '보고 노이로제'
"작년부터 예고된 폐비닐 대란 사전 대처도 못하고 우왕좌왕
현장 나가서 수거에 집중하라"
환경부 장관, 李총리 질책 듣고 대책발표 취소하고 현장으로..

[ 고경봉 기자 ] “지금 웃음이 나옵니까.”

지난해 말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A장관은 이 총리로부터 싸늘한 질책을 받았다.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못 하고 무안한 미소를 짓던 장관의 얼굴은 총리의 한마디에 사색이 됐다. 올해 초 국무회의에선 다른 장관이 내용을 숙지하지 못한 채 보고하자 “이걸 보고라고 하는 거냐”며 불호령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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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 사진)가 재활용 쓰레기 수거 대책과 관련해 환경부를 질타하자 김은경 환경부 장관(왼쪽 사진)이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이 총리가 내각의 ‘군기반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국무회의는 대통령과 총리가 격주로 번갈아 주재하는데, 장관들은 총리 주재 국무회의가 돌아올 때마다 ‘보고 노이로제’에 시달린다고 한다. 총리가 송곳 질문을 쏟아내는 바람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여지없이 호된 질타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장관들 사이에선 ‘대통령은 자모(慈母·인자한 어머니), 총리는 엄부(嚴父·엄한 아버지)’라는 말이 돈다.

‘폐비닐 대란’의 주무부처인 환경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5일 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는 당초 재활용 쓰레기 대응방안이 안건으로 올라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날 안병옥 환경부 차관을 비롯한 당국자들이 총리 대면보고를 하러 갔다가 호된 질타를 받았다. 이 총리로부터 “당장 급한 쓰레기 수거 문제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무슨 중장기 대응 방안을 내놓겠다는 것이냐”는 호통을 듣고 급하게 발표 취소 문자를 기자들에게 돌렸다.

이 총리의 노기는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까지 이어졌다. 이 총리는 김은경 환경부 장관을 질타하며 “미약한 정책은 수필 같은 것이지 정책이 아니다”며 “직원들보다 경험이 더 많고 현장을 아는 장·차관들이 정책 입안과 수립 과정에 더 꼼꼼히 관여해달라”고 당부했다.

국무총리는 엄부(嚴父)

이 총리의 질책은 정책 대응이 늦거나 관리가 제대로 안 됐을 때도 있지만 주로 장·차관이 정책 현장에 관한 정보를 숙지하지 못했다고 판단할 때 쏟아진다. 경제부처 한 장관은 “대면 보고하다가 묵묵히 듣던 이 총리가 송곳 질문을 시작하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흐른다”고 했다. 장관 보고에 배석한 적이 있는 국장급 관료는 “정책 발표를 앞둔 대면 보고나 회의에서 총리가 질문을 던졌는데 장·차관이 대답을 머뭇거리면 곧바로 불호령이 떨어진다”며 “‘나한테도 제대로 답을 못 하는데 기자들 질문에는 어떻게 답할 것이냐’며 ‘제대로 준비될 때까지 브리핑하지 말라’고 해 브리핑이 취소된 사례도 많다”고 전했다.

기자 출신인 이 총리는 사석에서 “국무회의에서 내가 기자라고 가정하고 장관들한테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답을 제대로 해야 언론을 통해 정책이 정확히 전달될 것 아니냐”고 얘기한 적이 있다. 지난해 하반기 차관급 공직자 임명장 수여식에서는 “어떤 질문이 나올 것인지, 이렇게 말하면 어떤 반문이 들어올 것인지를 본능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런 준비가 갖춰져야 기자들한테 나설 수 있다. 덤벙덤벙 나섰다가는 완전히 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고서류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장관들

사회부처 한 차관은 “이 총리의 정책 관련 질문들은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당황하기 일쑤”라고 했다. 지난달 29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도 환경부 장관은 “중국 교육부의 미세먼지 대응 방식이 어떤가”라고 묻는 총리 질문에 답하지 못해 교육부 장관과 함께 질책을 들었다. 지난해 하반기 ‘살충제 계란’ 파동이 터졌을 때는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총리의 맹폭을 맞았다. 한 장관은 “첫 번째 보고하는 장관이 깨지는 날이면 회의 시작부터 끝까지 초긴장이 흐른다”며 “사소한 실수라도 생기면 특유의 중저음으로 ‘지금 이걸 보고라고 하는 겁니까’라는 말로 정신을 쏙 빼놓는다”고 전했다. 정치인 출신 장관들도 예외는 아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부동산 대책, 최저임금과 일자리안정자금 대응 논란 과정에서 총리한테 혼쭐이 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장관들은 총리 주재 회의 때가 되면 꼼꼼히 자료를 챙기고 숙지하느라 전날 밤을 새우다시피 한다는 후문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장관들이 워낙 준비를 철저히 해서 그런지 회의 때 장관들마다 책상 옆에 보고서류를 30㎝ 이상 수북이 쌓아놓고 있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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