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필명 ‘드루킹’ 김모씨(48)가 2010년 당시 유력 대권후보로 떠오르던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도 접근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모씨의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회원으로 활동했던 ㄱ씨는 “2010년 3월 드루킹이 내게 박사모 모임에 참석해 박근혜 쪽에 줄을 댈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부탁했다”며 “드루킹의 부탁을 받아 경기도 부천에서 열린 박사모 모임에 참석했고, 정광용 박사모 회장에게 드루킹이 작성한 15페이지 분량의 서류를 전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 필명 ‘드루킹’ 김모씨(49)가 박사모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접근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진은 박사모 모습. / 김기남 기자ㄱ씨는 “서류에는 박 전 대통령의 ‘사주풀이’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사주풀이인지 찬양문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내용이 가득했다”고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주풀이 해석본은 <송하비결>과 <자미두수> 등 김씨가 관심을 갖고 있던 예언서와 점술을 근간으로 작성됐다. 김씨는 ㄱ씨에게 사주풀이를 전달할 때 A4용지에 출력한 뒤 따로 표지를 만들어 그럴 듯하게 포장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ㄱ씨는 당시 김씨가 사주풀이를 전해주면서 ‘박근혜는 2012년 대선에서 반드시 대통령이 된다’며 ‘박근혜 쪽에 줄을 대놓으면 우리 쪽에 뭔가 떨어질 게 있으니 꼭 연결시켜 달라’고 당부했다고 기억했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사주풀이 내용을 받아 보길 원했던 김씨의 바람과 달리 사주풀이는 정 회장에게 전달되는 데 그쳤다. ㄱ씨는 “당시 서류를 받아본 정 회장은 사주풀이를 훑어보더니 ‘뭐 이런 것까지 들고 오느냐’며 면박을 줬고, 바로 뒤집어서 메모장으로 썼다”고 회상했다. 이후 김씨는 ㄱ씨에게 ‘사주풀이 서류를 잘 전달했느냐’고 수차례 확인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까지는 전달 안돼
ㄱ씨는 2006년부터 박사모 활동을 해온 자칭 ‘열성 박사모 회원’이자 2009년 경공모 창립에 힘을 보탠 핵심 회원이다. 경공모 활동 전 ㄱ씨는 네이버 ‘행복을 지향하는 경제’(행지경)라는 카페에서 주로 활동했다. 김씨를 처음 만난 곳도 행지경 카페였다. ㄱ씨는 게시판에 경매글을 자주 올렸는데 ㄱ씨의 글은 늘 반응이 좋았다. 댓글도 여러 개 달렸다. 이를 눈여겨 본 김씨는 먼저 ㄱ씨에게 접근해 함께 경공모 활동을 하자고 권했다.
ㄱ씨는 “당시 온라인 상에서 박사모라는 사실을 공개하고 활동했다”며 “드루킹은 자칭 노사모라고 했는데 노사모가 성향이 다른 내게 함께 활동하자고 제안해와서 의아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ㄱ씨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대선 전에 박근혜 쪽에 줄을 대야 한다는 계획을 ㄱ씨에게만 털어놨다. 하지만 이후 ㄱ씨는 김씨와 잦은 의견 충돌 끝에 2011년 초 경공모를 탈퇴했다. ㄱ씨는 “드루킹은 박근혜뿐만 아니라 통합진보당 쪽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며 “드루킹의 피는 진보 쪽이지만 자신의 입신을 위해서는 이념이고 뭐고 상관없이 이익만 있다면 어디에든 들러붙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ㄱ씨와 함께 경공모 활동을 했던 ㄴ씨는 “내가 지켜본 드루킹은 특정 정치적 성향과는 관계가 없었다”며 “박근혜 쪽에 줄을 댔다는 ㄱ씨의 이야기를 듣고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