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팬' 특정세력이 주도?.."자발적 팬덤이 선플 달았다"

심의 허준 작성일 18.04.24 08: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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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팬'들에게 들어본 디지털 정치참여

국정원 댓글 조작 뒤 온라인 불신 거세
30~40대 직장인 바쁜 시간 쪼개 참여
'흠집내기 기사' 공격하고 미담 퍼나르기
권역·지역별·연령별 소규모 단톡방 공유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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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 김아무개(48)씨 사건의 후폭풍이 이어지면서 이른바 ‘디지털 정치 팬덤’의 참여 방식을 둘러싼 공방도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팬덤층의 적극적 활동을 ‘조직적인 여론조작’으로 깎아내리는 이들도 있고, ‘가장 손쉽고 건전한 정치참여 방식’마저 싸잡아 매도되어선 안 된다는 반론도 거세다. <한겨레>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몇몇 ‘팬덤’의 의견을 들어봤다.

인터넷 카페 ‘문팬’의 회원인 40대 직장인 ㄱ씨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 기간 내내 집과 지하철은 물론 직장에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지 못했다. 하루에도 문재인 당시 후보를 다룬 수십개의 기사에 ‘선플’을 달았고, 동의하는 댓글에 ‘공감’을, 그렇지 않은 댓글에 ‘비공감’을 눌렀다. ㄱ씨의 ‘디지털 정치참여’ 창구 중엔 ‘문팬’이 개설한 권역별, 지역별, 연령대별 카카오톡 단톡방도 있었다. 40~100여명이 참여한 ㄱ씨의 ‘문팬’ 단톡방에는 기사 주소가 쉴 새 없이 올라왔다. ‘흠집내기식 보도’라거나 ‘공유할 만한 기사’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단톡방에 지휘체계는 없었다. 어느 방이든 기사가 올라오면 ‘문팬’들은 자신이 속한 다른 단톡방으로,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로,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링크를 부지런히 옮겼다. 수백명의 자발적인 링크 공유가 몇번만 이어지면 기사 링크는 ‘빛의 속도’로 퍼졌다.

팟캐스트와 페이스북 등에서 패널·논객으로 활동 중인 하승주(47)씨는 ‘문팬’ 등의 적극적 참여가 여론 지형을 흔들었던 인상적인 사례로 ‘안철수 후보의 단설 유치원 논란’을 꼽았다. 당시 “(국공립) 대형 단설 유치원 신설을 자제하겠다”고 밝힌 안 후보의 발언이 논란이 됐고, 상승세를 타던 그의 지지율도 주춤했다. 하씨는 “당시 안 후보의 발언이 캡처돼 맘카페 등 여초 커뮤니티를 거쳐 페이스북으로 옮겨 가고 ‘오늘의 유머’ 같은 남초 커뮤니티까지 퍼지는 데 불과 몇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며 “기성 언론이 다룰 새도 없이 온라인 여론이 들끓었고, 대선 국면의 주요 의제가 된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짚었다. 하씨는 이어 “문팬이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논란이 커지는 과정에서 문팬의 거들기가 ‘의제화’의 가속화를 불렀다”고 평가했다. 문팬이 적극적으로 밀었던 의제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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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사진

대선 당시 ‘문팬’의 ‘선플 달기’ 운동은 전국적으로 지역·권역별로 세분화된 단톡방을 통해 기사 주소를 실어 나르며 ‘선플’과 ‘공감 누르기’를 독려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40대 ‘문팬’ 모아리(활동명)는 “문팬의 친목 도모와 교류를 위해 만들어진 카톡방이 세분화돼 있다. 예를 들어 서울에는 권역별 방이 4~5개 존재하고, 권역과 별개로 서울시내 25개 구로 나뉜 방들이 따로 있다. 이들 방에는 각각 수십명의 ‘문팬’이 있는데, 공유할 기사나 후보의 일정 등이 방에서 공유됐다”고 설명했다. 모아리는 “기사를 제시하는 특정인은 없었다. 가령 도봉구 단톡방에 누군가 ‘이런 기사가 있다’고 올리면 몇분 사이에 전국 각지의 문팬 단톡방으로 퍼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즈음인 2009년부터 온라인 정치참여를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는 ‘문팬’ 이아무개(47)씨는 언론이나 정권 등 이른바 ‘힘 있는 곳’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보가 제공되는 게 아닌, 다양한 경로로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려 온라인 정치참여에 적극적이 됐다. 하지만 그는 최근 ‘드루킹’ 사건이 부각되며 자신들의 ‘자발성’이 폄훼당하는 분위기에 분노하고 있다. 그는 “문팬 단톡방은 댓글을 달려고 만든 게 아니라 소통하려고 만든 창구이고, 자연스럽게 기사와 일정도 공유하게 된 것”이라며 “문팬은 대부분 자기 시간을 쪼개 직접 정치참여에 나선 30~40대 직장인들”이라며 “특정인이나 세력이 이들을 끌고 가는 건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2012년 대선 때부터 문재인 후보 지지 활동을 했다는 조근태(37)씨는 문팬이 유독 디지털 정치참여에 열성적으로 나서게 된 이유로 ‘온라인 여론 불신’을 꼽았다. 온라인 여론을 움직이는 거대 팬덤이 역설적이게도 온라인 여론을 믿지 못한 데에서 출발했다는 설명이다. 조씨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국정원과 기무사 등 국가기관이 여론조작에 나섰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에 문팬들은 인터넷 댓글 여론을 믿지 못했다”고 말했다. 과거 정부의 댓글 조작이 만들어낸 불안감이 거꾸로 문재인 지지자들의 댓글 활동을 독려한 셈이다.

하승주씨는 문팬들의 자발성을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는 팬클럽”에 빗대기도 했다. 그는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게 문재인 대통령 지지 그룹의 특징 중 하나”라며 “문팬들이 폐쇄적인 카페를 만들어 댓글을 달고 대가를 요구한 드루킹과 선을 긋는 이유도 이런 결정적 차별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http://v.media.daum.net/v/20180424050603658?rcmd=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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