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위원장 일문일답

심의 허준 작성일 18.05.13 22:2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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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조 공정위원장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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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11일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문재인정부는 출범 7일 만인 지난해 5월 17일 첫 장관급 인선으로 김상조 당시 한성대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지명했다. 지명자 신분이던 김 위원장은 다음날 처음으로 기자들 앞에 서서 '기업집단국'을 만들겠다고 발표하면서 개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리고 1년. 김 위원장은 '기업을 너무 쉴 새 없이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재계의 항변과 '재벌개혁 의지가 약해진 것 아니냐'는 시민사회 비판을 모두 들어야 했다.

매일경제는 지난 11일 문재인정부 출범 1주년을 기해 정부 기업정책의 컨트롤타워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인터뷰했다. 10대그룹 전문경영인과 간담회를 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김 위원장은 "한국 사회가 그동안 양립할 수 없는 두 비판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느라 개혁에 실패한 것"이라며 "양쪽의 비판이 계속되더라도 그 가운데 길로 가는 것이 개혁에 성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김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재계 간담회 직후 일부 시민단체에서 '현 정부의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진정성이 없다'고 평가했는데.

▷시민단체들이 갖고 있는 경제에 대한 인식과 요구는 공권력이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강했던 과거 정부 때 만들어진 것이다. 그때 만들어진 대안을 현 정부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현 정부 운신의 폭이 너무 좁아져 공정경제와 혁신성장에 장애가 된다. 공정위원장 2년 차에 들어서는 만큼 이제 시민사회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을 넘어 소통하고 당부하면서 설득하겠다. 재계는 물론 시민사회의 신뢰가 높아져야 정부가 정책적 유연성을 가질 수 있다. 당장 일정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시민단체에서 요청하면 적극적으로 응할 것이다.

―반대로 재계와는 1년간 간담회를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보여주기식 이벤트성 행사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 대신 기업에서 공정위의 기업정책이나 개별 기업의 특수한 상황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싶다면 언제든 만날 계획이다. 비공개 간담회에서도 이런 메시지를 전달했다. 5대그룹, 10대그룹과 1시간 간담회로 자세한 이야기는 불가능하다. 경쟁사를 옆에 두고 할 수 없는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당장은 1대1 미팅보다는 같은 주제를 놓고 3~4개 그룹과 만나는 것이 부담이 작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동안 총수를 만나지는 않았는데 이유가 있었나.

▷저는 혁명가가 아니고 진화주의자다.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전문경영인들을 만나면서 성과와 신뢰가 있었고, 이제 좀 더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 요청이 있다면 총수도 만날 수는 있지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일정한 정도의 과정은 거쳐갈 것이다.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문제를 해결하는 정답은 금융지주사 전환인가.

▷금융지주회사 전환은 하나의 유력한 대안일 뿐 다른 방법도 많다. 금융지주로 전환하면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지배주주가 되지 않을 정도인 약 2% 지분만 삼성물산에 매각하면 된다. 금융위원회 결정에 따라 최대 7년까지 유예기간을 둘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보험업법의 계열사 자산 3% 규정을 충족하느냐는 별개 문제다. 정부가 법률적·정책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데 이를 진공상태에서 결론 내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삼성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과연 이 두 문제에 대해 동시에 충족해야 하나, 둘 중 하나만 충족해도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삼성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계열사 자산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한다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는데 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주식 가치가 20조원 수준으로 늘어나 매각이 불가피하다. 예외를 둘 수 있나.

▷기본적으로 금융사의 자산평가는 시가평가가 원칙인데 보험은 장기투자의 특수한 측면이 있어 시가평가 원칙에도 예외가 있다. 미국의 주별 보험업법에도 이러한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그 예외를 얼마만큼 인정해줄 거냐 하는 문제도 삼성이 얼마나 (시장과 사회의) 신뢰를 얻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삼성 하기에 달렸다는 말인가.

▷기본적으로 삼성이 너무 늦지 않게 결단을 내려줬으면 한다. 삼성의 움직임 없이 정부가 미리 판단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최소한 올해를 넘겨서는 안 될 것이라고 본다. 실행은 아니더라도 계획 정도는 올해 안에 나와야 한다고 본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이 지배구조 개편에 영향을 줄 수도 있을 텐데.

▷금융당국이 신중하고 현명하게 판단해야 할 문제로 내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다만 지난 1년간 공직을 맡으면서 깨달은 것은 정부가 일할 때 가장 위험한 게 부처 간 갈등이라는 점이다. 생각이 달라 협의하고 조율할 수는 있지만 그게 끝나기 전에 갈등 형태로 외부에 표출되면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문제는 금융감독원이 입장을 표명한 뒤 향후 감리위원회 등 공식 절차가 남아 있으니 투명하고 공정하게 프로세스 관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본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문제 해결 방법으로 지주회사로 가느냐 지배회사로 가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경영 판단의 문제이고, 그에 대한 평가는 정부가 아니라 주주와 시장이 할 것으로 본다. (정부는) 그 과정이 적법하게 이뤄지는지를 예의 주시할 뿐이다.

―재계는 집중투표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상법개정안이 경영권 공격을 부추길까 우려하고 있는데.

▷집중투표제에 대해서는 재계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너무 심하게 우려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한 해에 사외이사 2명을 새로 선출한다고 할 때 집중투표제 효과가 생각만큼 크지 않다. 이사회를 장악하려면 최소 3년간 연속으로 주주총회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헤지펀드가 그렇게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재벌 3세에 대해 새로운 리더십을 말하는 것은 능력에 대한 의구심 때문인가.

▷재벌 3세들이 능력이 없다거나 검증을 안 거쳤다는 비판이 많지만 직접 만나보면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룹 규모가 과거에 비해 너무 커지면서 3세들은 이전처럼 모든 것을 보고받고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아무리 참모의 도움을 받더라도 절대 정확한 정보를 파악할 수 없는 규모로 성장했다. 상황이 달라졌으니 의사결정자의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 'CEO형' 총수에서 '이사회 의장형' 총수로 역할을 바꿔야 한다. 선진국에서도 3세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이런 형태의 진화를 거쳤다.

―현 정부가 재벌개혁의 다른 한 축으로 추진하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정작 미국에는 없다는 지적이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 지 오래다. 적어도 유럽연합(EU)에서는 2008년 이후 법(Directive)이다. 미국에는 법령이 없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연기금이 다 적용하고 있다. 우리는 자본시장법에 있지만 미국은 뉴욕증권거래소 규정으로 들어가 있다. 국가별로 스튜어드십 코드의 수준이나 강도가 다를 수는 있지만 심지어 아세안 국가들도 다 하고 있다. 이미 2002년 EU가 도입한 금융그룹 통합감독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14년 한국에 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아직도 도입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어떤 방식으로 실행할지 고민해야 하는 문제지, 찬반 논의할 때는 이미 지났다.

◆ 발행당시 적법했던 CB·BW도 뒤탈…'일감몰아주기'도 미래에는 부담될것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일감 몰아주기(총수 일가 사익 편취)' 근절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다만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경직된 규제를 만드는 것보다는 총수 일가가 자발적으로 변화하는 쪽에 무게를 뒀다. 김 위원장은 10대 그룹 정책간담회에서 "총수 일가가 비상장·비주력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지 않도록 노력해 달라. 자발적으로 모범규준을 만들어 달라"고 밝혔다. 그는 인터뷰에서도 "지금은 불법이 아니더라도 모호한 회색지대(Gray area)에 있는 문제는 이제 안 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7년 공시 대상 기업집단 주식 소유 현황'에 따르면 57개 공시 대상 기업집단(자산 5조원 이상) 중 총수 일가 보유 지분이 20% 이상인 비상장 계열사가 하나라도 있는 집단은 전체 중 66%인 38개에 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상장 계열사의 총수 일가 지분이 20% 이상(현행 30% 이상)일 때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법안이 다수 나와 있는데.

▷규제를 강화하면 문제를 조금 완화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작 일감 몰아주기의 근원적 해결은 안 된다. 지금 일부 회사들은 총수 일가 지분율이 규제 기준에 미달하는 19.9%(비상장사), 29.9%(상장사)인 곳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일감 몰아주기는 이뤄지고 있다. 공정위가 시민단체 주장처럼 시행령을 고쳐 상장사 기준을 강화하면 그 후 공정위의 법안 통과는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비상장·비주력 계열사 보유를 자제해 달라며 '미래 기준'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비상장 계열사 주식을 갖는 것이 분명히 불법은 아니고 그것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 수도 없다. 그런데 시장과 사회는 법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의 기준과 미래의 기준이라는 표현을 썼다. 과거에도 기업들이 뭔가를 결정한 시점에는 불법이 아니었지만 훗날 엄청난 비용을 치른 경험이 많다.

―나중에 법이 바뀌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10년 후 한국 사회가 얼마큼 갈지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단적인 예로 외환위기 직후 2~3년간 많은 기업이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대거 발행했다가 나중에 소각했다. 소각하지 못한 기업들은 다 문제를 겪었다. 당시에는 돈 안 들이고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는 정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불법도 아니었다. 하지만 엄청난 코스트(비용)를 치렀다. 2000년대 중반에는 행사 가격을 중간에 떨어뜨릴 수 있는 리픽싱 옵션부 CB·BW까지 나왔다. 발행 기업들은 소각하는 데 애를 먹었고, 일부는 형사 제재까지 받았다.

―모범규준을 만들어 달라는 게 무슨 뜻인가.

▷문헌이나 문서로 만들라는 게 아니라 모범적인 관행, 즉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문서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중요한 개선 사례들을 축적하고 이것이 굳어지면서 우리 사회에 모범 관행이 된다면 일감 몰아주기라는 단어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 김상조 위원장은…

△1962년 경북 구미 출생 △대일고 △서울대 경제학과 석·박사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장 △경제개혁연대 소장 △더불어민주당 19대 대선 중앙선거대책위 '새로운 대한민국위원회' 부위원장 △공정거래위원장

[대담 = 정혁훈 경제부장 / 정리 = 석민수 기자 / 문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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