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례 취지 무시.. "재판 중인 사항과 관련된 정보는 공개 못해"
[오마이뉴스 김성욱 기자]
▲ 국회는 2011~2013년도 외의 특활비에 대해선 여전히 비공개하고 있다.
ⓒ 유성호
"2011년부터 2013년까지의 특수활동비 집행내역 외의 정보는 현재 진행중인 재판과 관련돼... 정보를 공개하기 어려운 점에 대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마이뉴스>가 2008년부터 2018년까지 국회 특활비 내역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하자 국회가 5일 보내온 답변이다. 참여연대가 지난 5월 대법원 판결의 결과로 입수한2011~2013년도 국회 특활비 내역이 4일 최초로 공개되면서 파장이 일었지만 국회는 "판례가 있지만 연도가 다르기 때문에 관련 재판이 끝나기 전까진 특활비 지출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당장 '무의미한 시간 끌기'란 비판이 나온다.
국회 사무처 측은 6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재판 중인 사항에 관련된 정보는 공개할 수 없다'고 돼 있다"면서 "재판이 종료되고 소관 부처의 지시가 있기 전까진 2011~2013년 외의 특활비 내역을 공개할 수 없다"고 거듭 밝혔다.
국회가 제시한 규정을 보면 '진행 중인 재판에 관련된 정보로서 공개될 경우 그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는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돼 있다. 특활비를 공개하라는 대법원 판례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공개되면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장 비판이 나온다. 하승수 변호사는 이날 통화에서 "동일한 소송이 있을 경우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나머지 소송들은 동일한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인데 연도가 다를 뿐 같은 취지의 소송에 국회가 정보를 비공개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라며 "국회가 대법 판례까지 무시하며 무의미한 시간 끌기를 하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하 변호사는 "국회가 소송을 벌이며 시간을 끄는 것은 사실상 고의적인 직무유기"라며 "특활비를 공개하라는 대법 판례 취지에 맞게 조속히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참여연대는 지난 4일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총 240억원에 달하는 국회 특활비 지출 내역을 공개했다. 영수증이 첨부되지 않아 상세 내역을 파악할 순 없지만 국회 특활비의 개략적인 내용이나마 공개된 건 1994년 특활비 제도가 도입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5월 특활비 내역을 공개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국회가 참여연대의 정보공개 청구에 3년여 만에 응답한 것이다.
'특활비' 뿐만 아니라 업무추진비, 입법정책개발비, 예비금도 문제
▲ 2008~2018년도 국회 특활비 내역에 대한 <오마이뉴스> 정보공개 청구에 국회는 "2011~2013년도 내역 외에는 비공개한다"고 답했다.
ⓒ 김성욱
사법부 판례의 취지를 무시한 국회의 비밀주의는 비단 이번 뿐만이 아니다.
참여연대는 앞서 2004년에도 국회 특활비 등에 대한 정보공개 여부를 두고 소송을 벌여 지출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지만, 서복경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은 5일 "당시 담당자에 따르면 국회 사무처가 '가져가려면 직접 와서 필사해 가라'고 했고 수천 장을 필사할 수가 없어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라고 밝혔다. 이후 국회 특활비는 내내 '깜깜이' 였다.
특활비 뿐만이 아니다. 업무추진비(한 해 86억원, 2017년 기준)와 입법·정책개발비(86억원), 예비금(16억원)에 대한 소송에서도 지출 정보를 공개하라는 판결이 나왔지만 국회는 항소를 거듭하며 법원의 결정에 불복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국회는 관련 정보공개 청구에는 '비공개'로 일관해왔다(관련기사 : 박원순 고깃집 8만원 지출도 공개, 국회는 "공개하면 업무수행에 지장").
하승수 변호사는 "국회가 소송을 벌이는 비용 또한 국민 세금으로 충당된다"라며 "법원의 판례가 있는데 고의적으로 시간을 끄는 것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보를 공개하라는 사법부의 판단은 그대로다. 지난 5월 대법 판례 뿐만 아니라 5일 서울고등법원은 국회 입법·정책개발비 정보공개 소송에서 국회 측의 항소를 기각했다. 1심 판결대로 국회가 관련 지출 증빙서류를 공개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하승수 변호사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시민단체 '세금 도둑 잡아라'가 제기한 소송이었다(관련 기사 : 국회의 '깜깜이 예산 지키기', 또다시 패했다).
오는 19일에는 업무추진비와 예비금 정보 공개에 대한 1심 판결이 예고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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