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7월 26일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故 노회찬 의원 추도식. / ⓒ김흥구“노회찬 원내대표가 돌아가시고 나서 많은 시민들이 당으로 오셨다. 그분들에게 우리 집안 꼴이 어떻게 보일지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우리당이 그분들을 다 끌어안을 수 있는 역량이 될까?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보좌진 ㄱ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당직자 ㄴ씨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독일을 이겼다고 세계 1등이 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당 지지율이 자유한국당을 이겼다고 제1야당이라고 하기는 민망하다.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힘 있는 당이 되려면 다 바꿔 나가야 한다. 근데 우리당에서 그걸 해본 사람이 없다.”
정의당사를 찾은 70대 노인 정의당이 2012년 창당 이후 정당 지지율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31일부터 사흘간 전국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정의당은 15%를 기록해 자유한국당(11%)를 앞섰다.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달 30일부터 8월 3일까지 250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정의당 지지율은 14.3%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제1야당을 교체할 수 있도록 정의당을 지지해달라”는 지방선거 당시의 호소가 현실이 된 것이다. 여기에는 고 노회찬 의원에 대한 추모열기가 한몫 했다.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7월 3주차 정의당 지지율은 10.4%였다가 7월 4째 주 12.5%로 최고치를 경신했고, 8월 첫째 주 14.3%를 기록해 또 최고치를 경신했다.
한창민 정의당 부대표는 “지방선거와 노 의원에 대한 추모열기 때문에 조금 두드러지게 올랐다”면서도 “하지만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지난 6년 동안 서서히 지지율이 올랐고 지방선거 이후 10%에 육박했다”고 말했다. 실제 정의당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2.5%, 지난 대선에서는 6.2%,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8.9%의 지지를 받았다.
정당 지지율 상승과 더불어 당원 가입도 늘고 있다. 정의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노 의원 사망 이후 정의당에 가입한 당원은 7000명이 넘는다. 기존 당원이 2만5000명임을 감안할 때 3분의 1 규모의 신입당원이 짧은 시간 내에 들어온 것이다. 정의당은 이런 추세라면 1만명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주목할 점은 60대 이상 연령의 신입당원이 꽤 있다는 점이다. 실제 노 의원 사망 직후 한 70대 노인이 서울 여의도 정의당 당사를 찾았다. 연일 폭염경보가 울리던 때였다. 한 당직자는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 문재인 빨갱이라고 욕하는 어르신들은 있어도, 정의당에는 어르신이 찾아오는 일 자체가 드물다. 의아했다”고 말했다.
이 70대 노인은 “나는 나이도 들었고 그동안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노회찬 같은 정치인이 이렇게 삶을 마감하는 걸 보고 안타깝고 부끄러웠다. 노회찬이 하려고 했던 일에 보탬이 되고 싶다”며 당원 가입원서를 요구했다. 그는 온라인 당원 가입절차를 몰라 직접 당사를 찾았다고 했다.
실제 리얼미터 조사를 보면 정의당 지지율 상승은 40대와 50대가 주도하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30대와 60세 이상에서도 상승폭이 커지고 있다. 30대는 최근 2주 연속 10% 중반대 지지율을 보였으며, 60대는 11.9%를 기록했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은 한 번도 60세 이상에서 10% 이상 지지율을 기록한 적이 없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심상정 의원등 당직자들이 7월 3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고(故) 노회찬 의원 장례를 마무리하고 국민들께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정의당 지지율 뜯어보니, 낙관은 이르다 그럼에도 정의당 내부에서 좋아하는 분위기는 느끼기 어려웠다. 갑작스러운 일들의 연이은 발생에 당혹해하는 분위기에 가까웠다. 보좌진 ㄷ씨는 “노 대표님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서 당 지지율이 오른 것도 몰랐다”고 말문을 연 뒤 “당에서 지지율을 어떻게 관리한다고 하나”라며 오히려 기자에게 물었다.
당직자 ㄴ씨는 “김종철 실장(노회찬 원내대표 비서실장)이나 노 대표 의원실 사람들은 거의 아무 말도 못한다고 보면 된다. 당에서 트라우마 치료를 할 생각이다”라며 “이정미 대표나 심상정 의원 등 지도부 속도 지금 속이 아닐텐데, 신입당원과 지지율을 관리해야 한다. 멘붕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무진들이 보이는 우려는 정의당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지지율 분석이다. 정의당은 지난 6년 동안 지지율이 서서히 올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지지층을 뜯어보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리얼미터와 한국갤럽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정의당의 주동력은 40·50대로 나타났다. 40대는 10% 후반대, 50대는 10% 중반대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를 기반으로 최근 30대와 60대까지 범위가 확장된 것이다.
이에 대해 당직자 ㄴ씨는 “과거 민주노동당 지지층이 다시 복원되고 있다. 진보정당 분열 이후 민주당으로 가거나 무당층으로 갔던 사람들이 정권이 안정화되고 자유한국당이 작아진 걸 보고 다시 돌아온 것이다. 정치지형이 만들어준 지지율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한국당의 경쟁상대로 민주당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한국당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이제는 정의당돌아섰다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지지층의 경우, 보수정당의 파이가 커지면 민주당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지방선거 이후 정의정책연구소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정의당 지지층이 안정화된 상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20대 지지율이 낮다는 점도 난관이다. 7월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의 지지율이 20대 지지율보다 높았다. 당직자 ㄴ씨는 “40대 이상은 당위적으로 진보정당을 지지한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에 진보정당이 필요하고 노회찬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ㄴ씨는 “20대는 다르다. 이들은 진보정치의 역사를 모른다. 그래서 당위만으로는 지지하지 않는다”며 “이들에게 지지를 얻으려면 민주당이 아닌 정의당이 필요한 이유를 체감하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미 대표도 “20대는 당장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세력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정의당, 제로섬 게임 아니다” 민주당과의 차별화도 과제다. 많은 이들이 “민주당과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민주노동당이 내세웠던 ‘무상교육 무상의료’ 구호는 상식이 됐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민주당을 담당하는 기자가 정의당까지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두 정당의 색깔이 비슷하다는 의미다.
보좌진 ㄱ씨는 “정의당은 과거부터 하던 걸 계속해 왔다. 움직인 건 민주당이다. 이들은 참여정부 때는 우클릭했다가 보수정부에서는 무상교육을 내세웠다”며 “진보정당이 정책을 선도해 왔지만 돈이 없는데 어떻게 계속 정책을 내나. 정책 허브 역할을 하라는 건데 이제 그러기 싫다”고 말했다.
차별화를 묻는 질문에 정의당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언급했다. 당직자 ㄴ씨는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 사이의 간극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문 대통령 지지율은 60% 수준인 반면 민주당 지지율은 40% 수준이다.
ㄴ씨는 “문 대통령이 공약으로 걸었던 최저임금 1만원, 불공정과 갑질 청산 등의 문제를 지금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하고 있나? 복지를 하려면 증세를 해야 하는데 민주당이 증세를 이야기하고 있나?”라며 “정의당이 나서서 문 대통령의 공약을 실현시키겠다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당은 이런 스탠스를 통해 ‘개혁보수 민주당’ ‘여당을 견제하는 진보야당’의 구도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한창민 부대표는 “정의당과 민주당 지지율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라며 “현재 한국 정치의 지형을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한 구도다”라고 설명했다.
보수정권에 실망하고 한국당에 실망한 보수 지지층이 민주당으로 이동하는 만큼, 민주당은 이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이는 당의 입장이나 정책으로 나타날텐데, 이 경우 촛불정국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던 일부는 민주당에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정의당은 바로 이 지지층을 끌어안겠다는 것이다.
누가 노심을 이을 것인가 이제 남은 문제는 ‘인물’이다. 정의당에 노회찬·심상정 말고 누가 있느냐는 질문은 식상하기까지 하다. 이제는 노회찬이라는 대중정치인도 없다. 새로운 인물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의당 의원 5명 중 심 의원을 제외한 4명이 모두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보좌진 ㄷ씨는 “선거 때마다 비례에 목숨 거는 측면이 있다. 선거 때가 되면 당을 알리기 위해 동원은 엄청 한다. 비례 몇 명이라도 건지려면 당을 홍보해야 하니까”라며 “선거가 끝나면 소진되는 느낌이 든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악순환의 굴레를 벗어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돈과 지역기반이다. 돈과 지역기반이 마련돼야 대중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보좌진 ㄱ씨는 “비례 초선으로 들어와서 지역에서 재선, 3선에 도전하면서 정치인이 만들어진다”며 “하지만 우리처럼 작은 정당에서는 이 구조가 작동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ㄱ씨는 이어 “19대 국회에 박원석이나 서기호. 이런 인물들이 있었다. 재선에 도전했지만 당선이 안 됐다. 당이 여력이 있으면 지역에서 역할을 주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개인만 빚쟁이 되는 거다”라며 “이런 구조는 안 보고 정의당이 사람을 안 키웠다고 하는 건 부당하다”면서 답답해했다.
정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중심으로 한 선거제도 개혁을 이야기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지지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는 선거제도다. 현재 선거제도는 지역구 의석을 제외한 나머지 의석만 정당 지지율로 배분한다. 15%의 지지율이라면 정의당은 40석 가까운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정치 진입장벽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 입법활동도 지금보다 활발하게 할 수 있다. 의석이 많아지면 보좌진 등을 통해 당의 일꾼도 양성하기 쉽다.
그러나 당직자 ㄴ씨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된다 해도 인물이 없는데 누구로 의석을 채울 것이며 보좌진을 채울 것이냐”고 비판했다. ㄴ씨는 “당장 이번 지방선거에 나간 청년 후보들만 해도 당에서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이런 복합적인 우려에 대해 이정미 대표는 “어려운 길이다. 진보정치는 늘 어려웠다”며 “하지만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며, 가지 못할 길도 아니다”라는 포부를 보였다. 한창민 부대표도 “실무진들의 이런 우려를 잘 알고 있으며 2020년, 2022년을 대비한 후보군을 양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당에 지지를 보내는 이들도 이런 난관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정의당에 당비를 내고 당원으로 가입했다. 최근 정의당에 가입한 30대 직장인 ㄹ씨는 노회찬 의원의 장례식에 다녀온 뒤 당원 가입을 결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조문을 했다고 들었다. 그때는 아무나 들여보내지 않았다고 하더라. 노 의원 장례식장에서는 노숙자가 밥을 먹고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문재인 대통령의 화환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보낸 화환이 나란히 있더라. 정의당이 그런 정당이 되길 바란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https://news.v.daum.net/v/20180812094536147?rcmd=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