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평화쇼" 홍준표 트라우마?..남북정상회담에 숨 죽인 한국당

심의 허준 작성일 18.09.19 1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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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실질 진전 이뤄져야"

내부선 '정상회담 성과 보자' 신중
돌아온 홍준표에 '역풍' 불라
"추석 밥상에 '경제 실정' 올려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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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8일 오전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도착하는 모습을 전하는 방송 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올 추석 밥상도 ‘정상회담’이 독주할까.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자유한국당이 ‘입단속’에 들어갔다. 정부가 정상회담 성과 ‘보따리’를 풀어놓기 전까지 섣부른 비난을 앞세워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위장평화쇼 후폭풍’ 트라우마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만난 18일, 자유한국당은 종일 조용했다. 방북 장면을 원내대표실 텔레비전을 통해 접한 김성태 원내대표는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를 통해 한반도의 진정한 비핵화를 앞당기고, (비핵화를) 언제까지 하겠다는 구체적인 약속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나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당도 깊은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방북 장면을 보며 박수치며 환호한 더불어민주당 분위기와는 사뭇 대조적이었지만, 섣부른 비판도 삼간 셈이다.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텔레비전 시청 때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지난 4월27일 판문점에서 열린 ‘2018 제1차 남북 정상회담’ 때완 달라진 분위기다. 당시 홍준표 대표는 회담 당일부터 3일 연속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남북정상회담을 비판했다. ‘위장평화쇼’(27일), ‘김정은이 불러준 대로 받아적은 것’(28일), ‘세 번 속으면 그때는 공범이 된다’(29일)는 내용이었다.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 “다음 대통령은 아마 김정은이 되려는지 모르겠다”고 날을 세웠다.

민심은 싸늘했고, 후폭풍은 거셌다. 당 내에서도 지도부가 민심과 괴리돼 있다는 비판 목소리가 높았다. ‘판문점 선언’을 두고 “어처구니 없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던 나경원 의원도 누리꾼들의 비난에 “남북정상회담의 진행 모습은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부분이 있었다”고 수정했다. 5월4일엔 당 소속 4선 의원인 강길부 의원(현재 무소속)이 “국민적 분노”를 언급하며 홍 대표의 사퇴를 요구했고, 지방선거를 앞둔 5월 말에는 정우택 의원이 지도부의 ‘백의종군’을 요청했다. ‘정상회담 역풍’을 계기로 누적됐던 당 내 갈등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셈이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당이 참패한 원인으로 홍 전 대표의 “위장평화쇼” 비난으로 인한 ‘수구 안보’ 이미지가 고착화된 것을 지목하는 사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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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직후인 4월30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당시 대표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정상회담을 “남북 합작 위장평화쇼”라고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회견장을을 나서고 있다. 그는 당 내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위기의 원인을 미국을 비롯한 외부에 돌리고 ‘우리 민족끼리’라는 허황된 주장에 동조한 이번 정상회담 결과를 저와 자유한국당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때문에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자유한국당은 그 어느때보다도 신중한 자세다.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정상회담 며칠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청와대가 5당 대표에게 (방북을) 가자고 했을 때, 당의 여러 사람들이 ‘대응을 잘 해야 한다’며 걱정해서 달려왔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방북 동행을 거절한 야당에 국민적 비난 여론이 쏠리게 하려는 청와대의 노림수라고 봤다. 자칫하면 ‘홍준표 효과’가 다시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염려가 컸다”고 당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때문에 거절 뜻을 표한 김 위원장의 메시지(“협상의 주체는 단순할수록 좋다”)도 어느 때보다 신중한 조율을 거쳤고, 당 내에 공유하며 의원들을 ‘안심’시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 성과를 크게 기대하지 않는 의원들도 공식적인 비판은 삼가고 있다. 한 친박근혜계 의원은 “지금 당 내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말을 함부로 하는 의원이 누가 있느냐”고 당 내 ‘신중한’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비박근혜계 의원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진전 성과가 영변 핵시설 폐기, 검증이 없는 핵 신고제 정도에 그칠 경우 외교가에선 큰 의미가 없다고 보고 있다”면서도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야당 의원들도 다를 바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런 침묵은 지난 ‘판문점 회담’ 때와 달리 평양에서 열리는 이번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국민들에게 미칠 영향력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자체 판단도 작용한 결과다. 결국 ‘추석밥상’에 올라오는 화제는 남북정상회담보다도 ‘민생’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추석을 앞두고 국내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정상회담 분위기도 잘 살지 않고 있는데 굳이 야당이 각을 세워 비판해 화제를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며 “당으로서는 영세자영업자가 받는 고통,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문제 등 현 정부의 경제 실정 비판에 주력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또다른 당 관계자도 “주변에 정상회담이 열리는지, 대통령이 북한에 갔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번 정상회담이 정부·여당에 미칠 ‘지지율 반전 효과’도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당에서는 평소 정상회담에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내 온 홍 전 대표의 15일 귀국과 맞물려 ‘노이즈 마케팅’에 활용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한 중진 의원은 “홍 전 대표가 또다시 ‘막말’을 퍼부으면 일부 열성 지지자들은 ‘사이다’라고 환호할 지 몰라도, 국민 여론에는 도리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번번이 ‘페이스북 정치’를 이어가는 것은 당이 아닌 개인의 이익만 바라보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혁신비대위의 고민도 깊다. 홍 전 대표가 전당대회 차기 당 대표 출마를 노리고 강경 우파를 결집시키는 형태로 ‘이슈 파이팅’에 나설 경우, 비대위의 존재감이 흐려지는 것은 물론 ‘정책 대안 정당’을 추구하려는 시도까지 묻힐 수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자유한국당의 한 비대위원은 “이번 추석 밥상머리에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정이 아닌 홍 전 대표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면, 사람들은 ‘자유한국당이 그러면 그렇지 뭐’하고 싸잡아 생각해 버릴 것”이라며 “홍 전 대표와 당을 분리해 생각하도록 만들 계기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홍 전 대표는 자유한국당의 대구 북구 을 당협위원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15일 홍 전 대표가 귀국한 인천국제공항에 배현진 비대위 대변인과 강효상 의원이 마중을 나간 것도 주목을 받았다. 강효상은 홍 전 대표 시절 당대표 비서실장이었으며, 배 대변인은 서울 송파을 보궐선거 공천장을 받은 바 있다. 당 지도부는 “개인 자격으로 간 것이어서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홍준표 체제가 무너진 뒤 이를 수습하기 위해 들어선 비대위 대변인으로서는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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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16일 오전 국회에서 새로운 성장 담론으로 가칭 ‘국민 성장’을 제안하는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일단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추석을 전후해 본격적인 ‘민생’ 드라이브를 거는 것으로 ‘추석 밥상’의 화제를 견인한다는 목표다. 홍 대표의 귀국 다음날이자,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일요일이었던 16일,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맞설 가칭 ‘국민 성장’을 새 담론으로 제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민과 기업을 경제 주체로 하는 자율 경제와, 일자리 및 기회의 공정으로 상징되는 공정 배분을 통해 민간 주도 성장을 이끌어가자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당초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을 통한 ‘신 경제성장모델’을 내놓겠다던 김병준 비대위원장의 계획이 3주 정도 미뤄지면서 시기가 정상회담과 겹친데다, ‘국민 성장론’이라는 이름조차 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여서 당 내에서도 발표 시점을 놓고 분분한 말이 오갔으나, 끝내 명절 전 발표로 가닥을 잡았다. 앞서 비판을 샀던 김성태 원내대표의 ‘출산주도성장’ 발언의 그림자를 지우면서, ‘경제 대안 정당’으로서의 자유한국당 모습을 부각시키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한편 비대위는 17일에는 대책회의를 열어 당원권 정지 등 징계 권한을 갖고 있는 당 중앙윤리위원장 직에 검찰 출신인 김영종 전 검사를 임명하고, 당무감사를 총괄할 신임 당무감사위원장에 황윤원 교수를 영입하는 등 ‘당 혁신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정유경 송경화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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