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인물열전] 양승태부터 유해용까지.. 의혹의 주인공들은?

심의 허준 작성일 18.09.25 12:3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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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 막 오른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는 지금까지 약 4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그간 검찰청에 소환된 전ㆍ현직 법관만 50여명에 달할 정도로, 사법부 대상 수사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양승태 사법부에서 법원행정처의 핵심 보직에 있던 평판사, 지법 부장판사, 고법 부장판사들이 줄줄이 소환됐다. 이제 검찰 수사는 실무자 선을 넘어 사법농단을 기획하고 지시한 의혹을 받는 전직 대법관과 대법원장을 노리고 있다.

수많은 전ㆍ현직 법관과 박근혜 정부 핵심 실세들이 사람들이 얽히고설킨 사법농단 사건. 사법부와 권력이 결탁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하고 재판에까지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는 이 사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받는 주요 인물들을 정리했다.

▦양승태(70) 전 대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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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6월 1일 오후 경기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농단 사태의 가장 정점에 있는 인물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특정 성향의 판사를 불법 사찰하고, 인사 불이익을 줬으며,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일본군 강제징용ㆍ위안부ㆍKTX승무원 해고사건 등 시국사건 판결을 청와대와 거래 대상으로 삼은 과정을 주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1970년 사시 12회(사법연수원 2기)로 법조계에 입문한 양 전 대법원장은 40년 이상 법대를 떠나지 않은 정통법관이다. 2011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장에 임명된 후, 박근혜 전 대통령을 거쳐,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9월까지 대법원장을 역임했다.

올해 5월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 이후 쏟아지는 비난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던 양 전 대법원장은 다음 달인 6월에서야 입을 열었다. 그는 사법농단에 대한 검찰 수사가능성이 제기되자 자택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대법원 재판이나 하급심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 관여한 바가 없다”며 “재판을 흥정거리로 삼아 거래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자신의 재임시절 벌어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조사하는 특별조사단의 조사나 검찰 수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도 강하게 내비쳤다. “(특별조사단이 이미) 여러 개 컴퓨터를 남의 일기장 보듯 완전히 뒤졌는데도 사안을 밝히지 못했는데, 더 이상 밝혀질 게 있냐”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강경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법조계 안팎에선 이런 일들이 그의 지시 없이 이뤄지긴 힘들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 검찰 수사과정에서 청와대와 대법원이 주요재판을 둘러싸고 물밑 거래한 정황을 뒷받침하는 진술과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일선 법원의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취소한 과정에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개입했다는 정황이 최초로 드러났다. 검찰 조사를 받은 일부 판사들은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에 따라 각종 사법행정권 남용 문건을 작성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검찰이 사법농단 수사팀 인력을 추가 투입하며 포위망을 좁혀오는 만큼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는 헌정 사상 최초의 전직 사법부 수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 4명의 전직 대통령, 전직 국무총리, 국회의장 등 검찰 수사를 받은 적이 있지만, 전직 대법원장이 피의자로 소환된 적은 아직 없다. 전직 대통령도 여럿 구속시켰던 검찰의 마지막 성역이 바로 전직 사법부 수장이다.

▦임종헌(59) 전 법원행정처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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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검찰 압수수색이 진행되자 자택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사법농단을 지시한 의혹을 받는 당시 대법원 수뇌부와 이를 실행한 의혹을 받는 실무진을 이어 주는 ‘허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행정처 차장으로 근무하며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각종 재판거래 의혹 문건을 작성하거나 작성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법농단 의혹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핵심 당사자로, 이미 검찰에 출국금지를 당한 상태다.

임 전 차장은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을 외부로 반출한 혐의도 받는다. 그는 퇴임 당시 사용하던 컴퓨터 파일을 복사해 가지고 나온 것은 인정했지만, 특별조사단이 지난 5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사법행정권 남용 등은) 형사처벌 대상이 되기 어렵다”고 결론 짓자 해당 파일이 담긴 하드디스크와 업무수첩은 모두 폐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이 그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직원 가방 속에 담긴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발견했고, 해당 USB 안에는 임 전 차장이 2012년 8월 기획조정실장일 때부터 작성된 문건이 대부분 담겨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각종 자료 제출을 거부해 수사에 난항을 겪는 검찰에게 임 전 차장의 USB는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될 전망이다.

임 전 차장은 자신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차명폰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검찰은 그가 과거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한 심의관 등과 통화하며 말 맞추기를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자 임의제출 형식으로 차명폰을 확보했다.

추석 연휴가 끝난 뒤인 다음달 중순 무렵 검찰은 임 전 차장을 소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키맨’ 역할을 했던 임 전 차장으로부터 ‘윗선’(전직 대법원장 및 대법관)과 관련해 얼마나 많은 진술을 끌어내느냐가 전체 수사의 폭과 속도를 좌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차한성(64) 전 법원행정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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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성 전 법원행정처장. 연합뉴스

차한성 전 법원행정처장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관련 재판거래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차 전 처장은 2013년 12월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청와대 비서실장 공관에서 윤병세 당시 외교부장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황교안 법무부장관 등을 만났다. 비서실장 공관은 출입기록이 남지 않아 비밀스러운 만남이 가능한데, 차 전 처장은 이 자리에서 강제징용 재판을 지연시키거나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결론을 뒤집을 것을 요구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제징용 재판은 2012년 5월 “강제징용 생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라”는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2013년 서울고법과 부산고법이 미쓰비시와 신일철주금에게 피해자 9명을 대상으로 각 8,000만~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한 사건이다. 청와대와 외교부는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다시 확정되면 후속 소송이 대거 접수돼 사법부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논리를 펼치며 재판 지연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부와 행정처가 지연을 모의한 의혹을 사고 있는 강제징용 소송은 5년만인 지난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김기춘(79) 전 청와대 비서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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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4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에 연루됐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재판 거래 의혹에도 그 이름을 올렸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청와대ㆍ대법원ㆍ행정부 핵심 관계자가 동석한 ‘삼청동 회동’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졌으며, 박 전 대통령에게 회동 결과를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 회동에 참석한 차한성 전 법원행정처장 또한 회동 내용을 양 전 대법원장에게 보고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병대(61) 전 법원행정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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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대(가운데) 전 법원행정처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법관 재직시 법률 이론에 해박하고 법원 행정에서도 탁월한 업적을 남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던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은 청와대와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 관련 문건들의 작성을 주도적으로 지시한 인물로 의심받는다. 실제 그와 함께 일했던 행정처 심의관들은 검찰 조사에서 “박 전 처장이 (일부 문건의 내용을) 메모 형태로 적어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처장이 지시한 것으로 의심받는 문건은, ‘현안 관련 말씀 자료’,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사례’ 등이다. 이들 문건은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통령의 오찬회동 자리를 준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박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에 들어맞는 대법원 판결내용을 다수 제시하고 있다.

박 전 처장은 법원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의혹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2015년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 예산 3억5,000만원을 현금으로 빼돌려 비자금으로 조성하고, 법원장들에게 1,100만~2,400만원씩을 전달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 박 전 처장이 주도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박 전 처장은 차 전 처장의 후임으로, 2014년 10월 김 전 비서실장 등과 ‘삼청동 회동’을 갖고 강제징용 재판 진행 상황과 처리방안을 논의한 의혹도 받고 있다. 검찰은 박 전 처장을 출국금지하는 한편 여러 차례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줄줄이 기각했다.

▦고영한(63) 전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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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한(왼쪽) 전 대법관과 김명수(오른쪽) 대법원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파산법 분야의 대가로 유명한 고영한 전 대법관은 법원행정처에서 국장, 차장, 처장을 모두 지내 ‘사법행정의 달인’이라 불렸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휩싸여 처장직에 임명된 지 1년여 만에 물러나 대법관으로 복귀했다. 고 전 대법관은 비교적 최근까지 현직에 남아있다 지난달 1일 퇴임했다.

고 전 대법관은 부산 건설업자 비리 관련 재판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게 5,000만원을 건넨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부산지역 건설업자가 부산고법 문모 판사에게 수 차례 향응을 제공하고, 재판관련 정보를 빼낸 사건이다. 고 전 대법관은 윤인태 당시 부산고법 원장과의 통화에서 문 판사의 재판정보 유출 의혹이 밖으로 새나가지 못하게 입단속을 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내용은 ‘말씀자료’란 문건으로 만들어졌고, 항소심 재판은 이 문건에서 지시하는 대로 진행됐다. 검찰은 이 같은 재판 개입이 문 판사와 자주 어울린 것으로 알려진 현기환 전 정무수석을 의식한 것이라 보고 있다. 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에서 현 전 수석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핵심 대화 통로로 등장한다.

▦이규진(56)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에서 당시 상황이 꼼꼼하게 기록된 ‘안종범 수첩’이 있었다면,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사태에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업무 수첩’이 있었다. 양 전 대법원장을 자주 독대한 것으로 알려진 이 전 상임위원은 업무수첩에 그의 지시사항을 빼곡하게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 중 일부는 실제 대외비 문건으로 만들어졌다. 경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소 무력화 방안을 담은 ‘헌재 관련 비상적 대처방안(2015년 10월)’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이 전 상임위원의 사무실과 주거지 압수수색 당시 업무일지를 적은 수첩 수년치를 임의제출 받았다. 검찰은 이 수첩이 사법농단 사건의 전모를 밝혀줄 결정적 증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전 상임위원은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뒷조사하고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법관들에게 세미나 등 각종 행사를 축소하도록 압력을 넣은 혐의도 받는다. 그는 지난해 2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지자 기획조정실 심의관들 컴퓨터에 있는 관련 문건을 대거 삭제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검찰은 전직 심의관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전 상임위원의 지시로 문건 삭제가 진행됐다는 복수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전 상임위원은 이 같은 혐의로 지난달 23일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그는 이날 “한없이 참담하고 부끄럽다”며 “아는 대로, 그리고 사실대로 진술할 것”이라 말했다.

▦유해용(52)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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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재판 기밀자료를 반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검찰의 압수수색이 끝난 뒤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4년부터 3년간 대법원에서 선임재판연구관과 수석재판연구관을 잇달아 지난 유해용 전 수석재판연구관(변호사)은 퇴임 당시 대법원 판결문 초안과 재판검토보고서 등을 무단으로 들고 나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검찰이 유 변호사가 보유한 해당 문건을 확보하기 위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이 “죄가 되지 않는다”며 몇 차례 기각한 사이, 그는 문건 출력본과 문건이 든 이동식저장장치(USB)를 파기했다. 이는 그렇지 않아도 껄끄러웠던 검찰과 법원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검찰 측은 “법원이 유 변호사에게 증거를 인멸할 명분을 제공했다”고 반발했고, 법원 측은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유 변호사는 또 대법원 근무 당시 관여했던 숙명여대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사이의 소송을 변호사 개업 후 수임한 혐의도 받고 있다. 대법원에 계류 중이던 이 사건은 유 전 연구관 선임 후 17일만에 원고 승소를 확정하며 판결이 내려졌다. 검찰은 유 전 연구관이 사건을 수임하기 전후로 담당 재판연구관과 수 차례 통화한 사실을 확인하고, 추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유 전 연구관은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시작된 이후 전ㆍ현직 법관 가운데 처음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인물이기도 하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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