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방북 땐 환대, 방미 땐 박대를 당했다" (강용석 변호사)
"사실 이정도 되면 외교참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상후 전 MBC 시사제작국 부국장)
'가로세로연구소'가 최근 유튜브 채널 내 뉴스 코너를 통해 전한 내용 중 일부다. 가로세로연구소는 김세의 대표(전 MBC기자)와 강용석 소장(변호사)이 우파의 가치와 이념을 새로 세우겠다는 취지로 함께 만들었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참석 차 미국 뉴욕 JFK 국제공항에 도착한 당시 상황을 전하면서, 문대통령이 다른 나라 정상과 달리 미국으로부터 연거푸 '푸대접'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에도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뉴욕 유엔본부를 방문했다. 국가 정상이 방문했는데 미국 측 환영객이 단 1명도 나오지 않았고 레드카펫도 깔려있지 않았다는 점은 환영받지 못하는 방문을 뜻하는 것이고, 문 대통령이 그런 '굴욕적인 외교'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 주장의 골자다.
강 소장은 "평양 순안공항에서는 무려 10만 명의 인파가 문재인 대통령을 영접했다. 반면 미국 JFK 공항 도착 시에는 미국 측에서 아무도 영접을 나오지 않았다. 오로지 조윤제 주미대사 부부만 나와서 인사를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몇몇 인사들과 악수를 나누는 문 대통령 내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여줬다.
뉴스 진행을 맡은 박 전 부국장은 "원래 미국이 의전 문제에 그렇게 박한 편이 아닌데 유독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인색한 것 같다."며 당시 상황을 사실상 '외교적 참사'로 규정했다.
김 대표는 특히 JFK 공항에 도착한 다른 나라 정상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작년 유엔총회에 참석한 중국, 인도, 일본, 독일, 영국 정상의 경우 의장대 의전과 레드카펫이 공항에 깔렸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 유엔방문 때도 의장대와 레드카펫, 미국 측 영접인사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유튜브 방송 화면 갈무리.
문 대통령은 정말 미국 땅에 도착하자마자 '외교적 푸대접'을 받은 걸까? 그렇다면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를 두고 북·미 간 신경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문 대통령을 '박대'했다면 그만큼 미국이 우리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해 큰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의전 유형은 통상 5가지…유엔총회 참석은?
우선 미국 의전 유형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미 국무부 최고의전실 지침에 따르면 외빈에 대한 예우는 국빈방문, 공식방문, 공식실무방문, 실무방문, 개인방문에 따라 의전의 규모와 방식이 달라진다. 국빈방문의 경우 미국 대통령이 직접 영접하고 공항에 도열병을 배치해 21발의 예포를 쏘는 환영식을 개최한다. 또 공식만찬과 정상회담, 각종 문화행사가 개최되는 등 최상의 예우가 제공된다. 미국 대통령의 4년 임기 동안에 딱 한번 국빈 자격으로 방문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높은 단계인 공식방문은 총리와 같은 정부 수반에게만 적용되며 미국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야 한다. 이 경우 환영 예포 발사 횟수가 줄어드는 등 국빈방문에 비해 다소 의전 절차가 생략되지만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국무위원이나 정부 수반에게 제공될 수 있는 공식실무방문과 실무방문은 의전보다 내용을 중시하는 방식이어서 의전이 좀 더 간소화된다. 이 역시 미국 대통령의 초청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 단계인 개인방문은 사적인 목적의 방문으로 미국 대통령의 초청없이 미국에 도착한 국가 원수, 정부 수반, 외무 장관이나 기타 정부 공무원에 적용된다. 초청없이 방문했지만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할 수 있다.
유엔총회 참석은 이 다섯가지 유형에 해당되지 않는다.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를 방문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 지침은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유엔총회 참석은 미 국부무의 5가지 의전 유형에 해당하지 않는다. 한미 정상 간 양자회동이 주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정부에서도 유엔총회 참석 시에는 미국 정부의 고위 영접객이 나오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절 살펴보니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 9월 21일 유엔총회와 G20 금융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관련 보도: https://goo.gl/b6WzVQ) 당시 JFK 공항의 모습은 이번 문재인 대통령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의장대와 레드카펫, 미국 정부에서 나온 영접객은 없었다.
유엔총회와 G20 금융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20일 오후(현지시간) 뉴욕 JFK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려오고 있다. (2009.9.21)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뉴욕 JFK공항에 도착해 환영인사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2009.9.21)
2011년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다. 역시 JFK 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당시 현장은 아래 사진에 나타나 있는 대로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용기에서 내린 뒤 의전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2015년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풍경도 거의 비슷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2015.9.26)
유튜브에 소개된 타국 정상들 의전 사진의 정체는?
과거 정권에서도 대통령이 유엔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경우 특별한 의전이 제공되진 않았다.
그런데 가로세로연구소는 유튜브 방송에서 지난해 유엔총회에 참석한 타국 정상들은 의장대 의전과 레드카펫 등이 제공됐다고 주장했다. 근거가 되는 사진들도 화면에 띄웠다. 대한민국과 달리 타국 정상들에게는 또다른 의전규칙이 적용됐던 걸까? 방송을 통해 전한 타국 정상들의 JFK 공항 도착 사진을 면밀히 살펴봤다. 영상에 나온 사진은 좌상단부터 오른쪽으로 인도-독일-일본-중국-영국-한국 순이다.
유튜브 방송 화면 갈무리.
각각의 사진을 따로 떼어내 원본 사진과 대조해 본 결과 (마지막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은 제외) 모두 유엔총회 참석과는 무관한 사진이었다. 더욱이 사진이 찍힌 시기도 모두 달랐다. 사진을 차례대로 살펴보자.
좌상단 첫 번째 사진은 인도 모디 총리가 지난해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모습이다. (관련 보도: goo.gl/rBFZFy) 정상회담을 통해 두 정상은 대테러전, 경제 성장과 개혁 추진, 안보 협력 강화 등에 대한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두 정상은 회담 후 공동성명도 발표했다. 방송에서 언급한 유엔총회 참석과는 무관했다.
사진 출처: asiasentinel.com
두 번째 사진은 2011년 6월 독일 메르켈 총리가 국빈방문했을 때의 모습이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유럽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메르켈 총리를 초청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에게 `자유메달(Medal of Freedom)'을 수여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로, 미국인이 아닌 사람에는 극히 소수에게만 수여됐던 것이다. (관련 기사: goo.gl/ZudhxU) 영상에 소개된 사진을 잘 보면 화면 우측 하단에 무언가를 살짝 지운 흔적이 남아있다. 전세계적인 사진 콘텐츠 전문업체의 로고를 지운 것이다. 원본 사진은 아래와 같다.
세 번째 사진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5년 4월 27일 워싱턴 외곽에 있는 앤드류 공군기지를 방문했을 때 찍은 것이다. 당시 아베 총리는 6박 7일 간의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형식은 '공식방문'이었지만 사실상 국빈방문과 다를 바 없는 행사들이 이어졌다. 아베 총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국빈만찬에 참석했다. 일본 총리로는 사상 처음으로 미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도 했다. 이 사진도 게티이미지에서 가져다 쓴 것으로 보인다. 위 사진과 마찬가지로 회사로고 부분이 지워져있다. 역시 유엔총회 참석과는 무관하다.
네 번째 사진은 2015년 9월 24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D.C. 인근 앤드류스 공군기지에 도착했을 때 모습이다. 당시 조 바이든 부통령이 직접 공항으로 영접을 나왔다. 다음날 시진핑 주석과 오바마 대통령은 단독 정상회담과 확대 정상회담을 잇따라 열고 북한 핵실험 문제와 남중국해 영유권 논란 등 각종 주요 현안에 대해 적극 대응하기로 협의했다. 오바마 대통령 부부는 회담일 백악관 남쪽 잔디광장에서 시 주석 부부를 맞이했다. 국빈 방문 의전에 따라 예포 21발이 발사됐고 두 정상이 함께 의장대를 사열했다. (관련 기사: goo.gl/2CZLuS)
다섯 번째 사진은 2012년 3월 데이비드 카메론 영국 총리 부부가 앤드류스 공군기지에 도착해 환영행사를 참관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 흰색 옷을 입은 여성은 미 국무부 최고의전실 관계자다. 카메론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이란과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관련 기사: goo.gl/VbKP6z / goo.gl/m12ks9) 모두 유엔총회 참석과는 무관한 사진이다.
더불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엔을 방문했을 때 의장대와 레드카펫, 미국 측 영접인사가 나왔다는 주장과 함께 제시된 사진역시 (본문 초반, 박 전 대통령이 초록색 옷을 입고 있는 사진) 유엔총회 참석과는 관련이 없다. 해당 사진은 박 전 대통령이 2013년 5월 취임 후 첫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찍힌 사진이다. 유엔 본부를 방문해 반기문 사무총장을만난건 사실이지만 주 목적이 아니었다. 정상회담 후 양국 정상은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관련 기사: https://goo.gl/Qr8mKR)
"문재인 대통령이 방미 때 박대를 당했다" → 전혀 사실 아님.
가로세로연구소는 유튜브 방송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와는 달리 방미했을 땐 외교적 참사라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박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통상 유엔총회 참가를 위해 미국을 방문할 땐 별도의 의전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을 제대로 거론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일각에서는 원래 유엔 실무 방문에서는 영접을 나오지 않는다라고 한다."라면서도 "근데 (그런 주장이) 사실 말도 안되는 얘기"라며 각국 정상들의 의전 상황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런데 관련 사진들을 모두 확인해본 결과, 유엔총회 참석과는 무관한 사진이었다. 더군다나 방송에서 주장한 것처럼 지난해 상황도 아니었다.
또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과거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사례를 살펴보니 문 대통령의 경우처럼 눈에 띠는 의전을 제공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의 의전 원칙이 일관되게 적용된 것으로 이해되는 대목이다.
이런 이유로 가로세로연구소가 유튜브 방송을 통해 주장한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 취재 지원 : 팩트체크 인턴기자 안명진 passion9623@gmail.com
임주현기자 (leg@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