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비리 사립유치원 실명 공개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10월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국회 정무위원회에 있었는데 환경노동위원회로 가라더라고요. 그러더니 느닷없이 교육위원회라고 발표를 해버렸고요. 광야에 버려진 아이처럼 있었는데, 전에 다른 의원실에서 교육위를 해본 우리 이시성 비서관이 저한테 와서 그러더라고요. ‘의원님, 교육계에 세 가지 큰 비리가 있습니다. 사학 비리·사립유치원 비리·연구 비리입니다. 교육위 계시는 동안 이 세 가지만 제대로 사회적 이슈로 만들고 해결하면 큰일 하시는 겁니다.’”
10월11일 비리 사립유치원 실명을 공개해 ‘사립유치원 개혁’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10월16일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소개한 비하인드 스토리(뒷얘기)다. 박 의원은 정무위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 재산 불법 상속 문제를 폭로했고, 이후 상임위원회를 교육위로 옮긴 지 석 달 만에 또다시 대형 사건을 터뜨렸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관계자가 방송에 나와 ‘석 달밖에 안 돼서 뭣도 모른다’는 취지로 그를 비판했지만, 그동안 교육위를 거친 수많은 의원이 엄두를 내지 못했고 교육 당국도 애써 눈감아온 ‘벌집’을 “하룻강아지”(박 의원이 자신을 표현한 말)가 제대로 건드린 셈이다.
“사실 일은 보좌진이 80~90% 다 하잖아요. 국회의원이 할 일은 딱 하나, 할 건지 말 건지 결정하는 거죠. 저는 하기로 한 거고요. 공익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요. 이 비서관이 그랬어요. ‘삼성(건)은 보이지 않는 괴물과 싸우는 느낌이지만, 유치원은 난리가 날 겁니다.’ 막상 시작하니 이 비서관 말이 맞더라고요. 삼성 건은 사회적 정의감이 있는 1만 명 정도의 시민이 관심을 가졌다면, 유치원 건은 1천만 명의 이해관계자가 지켜보고 있어서 파장이 훨씬 크더라고요.”
교육계 ‘3대 비리’ 폭로
벌집을 쑤신 효과는 예상대로 바로 나타났다. 여야를 막론한 동료 의원과 지인들도 “(사립유치원과) 대화로 잘 해결해봐라. 문제가 있으면 시정해나가면 된다. 사립유치원 쪽 의견에 많이 귀를 기울여라”는 압박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그 정도는 박 의원이 “걱정과 우려”로 생각하고 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해당 유치원 원장들은 의원실로 몰려왔다. 박 의원 아들이 다녔던 유치원 원장까지 쫓아와 울 정도였다. 아들을 맡겨놓고 적잖이 속을 끓였던 아내는 그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분은…(할 말이 없을 텐데)”라며 ‘벌컥’ 했다고 한다.
한 유치원에서는 학부모에게 “좌파 국회의원 그리고 좌파 성향의 시민단체가 공모해 국감 기간에 사립유치원을 비리 집단으로 모는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내용을 담은 안내문을 보냈다. 한유총은 박 의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준비한다고 한다. 한유총 회원 300여 명은 10월5일 박 의원이 연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 방안 모색 토론회’에도 떼로 몰려와 연단을 점거하고 고성을 지르며 ‘본때’를 보여준 바 있다.
선출직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유치원 원장들과 날을 세우는 건 모두가 두려워하는 ‘직을 건 모험’이다. “유치원이든 재벌이든 이익집단이 정치인을 공격하는 방식은 정말 겁나죠. ‘저 사람 때문에 제 수입이 얼머나 줄었는지 아세요?’ 이런 식으로 노골적으로 안 해요. 은밀한 작업으로 공천을 방해한다든가, 지역사회에 마타도어(흑색선전)를 퍼뜨리기도 해요. ‘젊은 놈이 큰 사건 좀 하더니 싸가지가 없어졌다. 재벌 파헤친다고 지역 일은 안 한다. 유치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영웅심리로 애들한테 상처만 준다. 여자관계 복잡하다’ 이런 식으로 마타도어를 퍼뜨리면 수습할 수가 없어요. 국회의원들이 지금까지 비리를 알면서도 그분들을 못 건드린 이유예요.”
삼성보다 무서운 이익집단 ‘유치원’
10월18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 환희유치원 운영자 등이 학부모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이 유치원은 교비를 성인용품 구입 등에 부당하게 써온 것으로 밝혀졌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박 의원이 각오한 “선출직의 슬픈 운명”이지만 이번엔 “천우신조”로 기회가 찾아왔다. 박 의원은 “하늘이 돕고 한유총이 도왔다”며 웃었다. “동네 유치원 원장이 엄마들한테 문자 한번 돌리면 저는 죽는 거죠. 유치원 건드렸다가 박용진만 망해버릴 수도 있었는데, (이번 일이 이슈가 되면서) 천만다행으로 제가 분투하는 걸 국민이 알게 되셨으니까 다른 해코지를 당할 가능성이 작아졌어요. 사실 10월5일 토론회 때 한유총 분들이 조용히 듣고 돌아가서 제 낙선 작업을 하셨으면 아무도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에 관심이 없었을 거예요. 난동을 피워주신 덕에 언론에서 취재하고 관심을 가져주셨어요. 실명 공개 이후 수백 명이 1만원, 2만원, 5만원씩 후원해주셨어요. 방금 온 문자도 10만원 후원 문자예요.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다른 의원들도 진작에 용기를 냈을 텐데요.”
10월11일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2013~2017년 감사 결과를 보면, 유치원 1878곳에서 비리 5951건, 수상한 지출 269억원이 적발됐다. 유치원 교비로 원장이 성인용품이나 명품백을 사고 노래방과 숙박업소에서 쓰기도 했다. 종교시설에 헌금을 내거나 원장 개인 차의 기름값과 수리비, 자동차세와 아파트 관리비를 내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한유총 ‘토론회 난동’이 천우신조
박 의원은 “언론이나 국민한테는 돈을 어디다 어떻게 썼느냐가 자극적인 얘기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보다 좀더 근본적인 문제에 심각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학 비리와 사립유치원 비리의 공통점은 가족 운영을 통한 시설 장악이라는 것입니다. 원장과 배우자·아들·딸, 심지어 장인·장모까지 다 동원해서 부당하게 임금을 지급해요. 한 사례를 보면, 허위로 회계 서류를 써서 설립자 부친과 장인·장모에게 임금을 주는 형식으로 2억700만원을 부당 지급했어요. 아들이 원감이었던 것 같은데, 아들 업무추진비로는 애견용품을 샀고요. 유치원 운영을 가족 단위로 주먹구구 천태만상으로 하죠. 삼성에서 등장했던 차명계좌가 유치원에서도 나와요. 한 유치원에서 원복을 비싼 값에 단체로 사고는 리베이트를 받아서 차명계좌에 넣었어요. 실제 사례를 보면 한 지역에서 원장 한 명이 유치원 5개를 운영해요. 원장 개인 소유 임야에서 하는 숲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한 뒤 5개 유치원에서 각각 체험비를 받아요. 그 돈으로 세금도 내고 관리비도 쓰고…. 여러 유치원을 운영하는 원장이 한 유치원에서 비리로 징계를 받더라도 다른 유치원에 가서 행정실장을 하면 아무도 몰라요. 실명 공개가 안 되니까요.”
감사 결과가 공개됐지만 사립유치원들은 “일부 유치원의 일이며, 사립유치원은 사유재산이며, 국가가 지원해준 적이 없고, 네가(박용진이) 뭘 아냐”는 논리로 항변했다. 박 의원은 “유치원 수입은 정부 지원금과 학부모 부담금으로 구성되는데, 유아교육법을 개정해 성격이 모호한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바꿔서 교사처우개선비·교재교구비·급식비 횡령은 법적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원금→보조금’ 성격 바꿔 횡령 처벌해야
박 의원이 비리 유치원 실명을 공개한 뒤 여론이 들끓자 손 놓고 있던 교육 당국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교육부는 각 교육청과 협의해 올 연말까지 투명 회계 시스템 에듀파인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교육부는 2016년 투명한 회계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해놓고, 2017년에 예산안 6억6천만원을 불용 처리해버렸다. 2016~2018년 사이 구축했어야 할 시스템을 여태 안 만들어놓고 국감에서 지적하니까 바로 하겠다고 한다”며 “참 나쁜 교육부”라고 말했다.
사립유치원 문제는 교육청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다. 박 의원은 “참 나쁜 교육청”이라고도 했다. “교육부는 사립유치원 감사 권한이 교육청에 있다고 미루는데, 교육청은 선출된 시·도 교육감이 유치원 원장들 눈치를 봐요. 감사를 하고도 감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아요. 공개하지 않은 감사 결과가 무슨 의미가 있어요, 학부모들이 알 수가 없는데. 치료하지 않는 진단이랑 똑같아요. 의사가 ‘암이시네요’ 하곤 환자더러 그냥 가라고 하는 것과 같아요. 교육청은 상시적으로 사립유치원을 감사하고, 단순 행정 실수 같은 건 바로잡고 비리가 심각한 경우 폐원 뒤 매입형 공립유치원으로 가야 해요.”
박 의원은 사립유치원 비리와 관련해 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 입안을 검토하고 있다. 유아교육법 개정안은 1년에 2조원가량 되는 사립유치원 누리과정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바꿔, 원장의 사적 사용을 횡령으로 처벌하고, 적발된 유치원과 원장의 실명을 공개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회계 비리를 저지른 유치원 원장이 ‘간판 바꿔 달기’를 못하도록 일정 기간 개원을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학교급식법 개정안은 초·중·고교처럼 유치원 급식도 법 적용을 받도록 해 부실 급식을 막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수수방관 교육 당국도 ‘뒷북’ 대책 마련 나서
비리 유치원 추가 공개도 예정돼 있다. 박 의원에게 발표 시기와 범위 등을 묻자 “데드라인이 국감 기간을 넘어서지 않을 것이며, 정부가 종합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하니까 추이를 보고 결정하겠다. 자료는 계속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