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남성은 바보가 아니다(박가분 평론가)

코지군2세 작성일 18.12.19 12: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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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진짜 바보는 누구일까? 이 글은 특히 사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는 40~50대 진보파들을 위한 글이므로 정독하길 바란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잇달아 20대 남성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한 결과가 나온 것에 더해서 최근에는 20%대까지 붕괴한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여론조사에서는 세대별-성별 여론조사 표본 수가 적은 한계가 있지만, 비슷한 결과가 이미 여러 차례 나왔다는 것은 사실상 20대 남성 계층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가 붕괴했다는 결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20대 남성을 버리고 가면 된다고 생각하면 할 말은 없지만 미래세대의 지지가 진보의 큰 자산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당혹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30대 남성 지지율도 물론 위험한 것으로 나왔다. 내 생각에 이 기조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결과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이건 젠더문제에서 소외되었다는 젊은 남성들의 누적된 불만이 임계치를 넘어선 결과이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되짚자면 남초 커뮤니티의 각종 청와대 청원(ex 사법부의 유죄추정 관행에 대한 항의)을 웃어넘기거나 무성의하게 답변한 일, 메갈리아-워마드에 대한 여당 내 인사들과 여가부 장관의 옹호 발언, 사실상 워마드 시위였던 혜화역 시위 비판여론에 대한 행자부 장관의 고압적 훈계, 설상가상으로 워마드 시위대와 정책적 협의에 나선 정부, 특히 이수역 사건에 대한 여당 내 옹호발언들. 열거하지면 무수히 많다. 이것도 비교적 최근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젊은 세대의 여론이 확산되는 인터넷상에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는 과거의 일을 절대 잊지 않는다. 몇 년 전 진선미 의원실에서 한 보좌관이 메갈리아에 인증을 한 일은 지금도 인터넷상에서 회자되고 있다.

 

 

 

물론 가장 최근에 분노가 폭발한 사건은 일각의 남성혐오 문화(남성혐오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가 오프라인으로까지 침투한 사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수역 사건이었다.

 

 

 

여기서 이들의 분노를 자세히 들여다 보자. 이는 크게 다음과 같이 나눠진다. 1. 사법적 영역에서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고 성범죄 무고의 사각지대를 늘리는 등) 법 앞에서의 원칙이 훼손됐다'는 불만, 2.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여성이 승진이 유리한 내근직에 주로 배치 되고 여대에 약대와 로스쿨이 별도로 설치되며 창업과 취업에서도 가산점이 부여되는 등) 성별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부터 공정한 경쟁의 룰이 붕괴한다'는 불만, 3. (최모씨 책 출간 홍보 과정에서 '한(국)남(성)'을 조롱의 의미로 사용한 yes24 사건이 보여주듯이) 문화적으로 남성성을 조롱하고 공격하는 관행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었다는 불만, 4. '아무도 우리들의 불만을 들어주지 않는다'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특히 마지막 불만이 가장 결정타이다.

 

 

 

이것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 남성들의 믿음의 붕괴로 이어졌다.

 

 

 

좋았던(?) 옛시절의 레닌식 수사법을 빌리자면, 이 모든 젊은 남성들의 불만에 대해서 '막대 구부리기'의 논리(막대가 오른쪽으로 구부러져 있으므로 이번에는 막대를 왼쪽으로 구부려야 공정하다)로 응수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래왔다. 다른 정치적 영역에서 이런 비유는 사실상 사은유가 되었지만 여전히 젠더 문제에서만큼은 레닌식의 수사법이 전가의 보도로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수사법에 20~30대 남성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진보진영과 민주개혁세력 주류는 젊은 남성들의 분노에 대해 관성적으로 '여성들이 오죽했으면', '여성이 그 동안 당해왔으므로', 등등의 워딩을 꺼내들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 논리 내적으로 전도된 형태의 가부장적 시혜주의에 지나지 않으며 이미 가부장적 특권에 대한 일말의 환상도 없는 20대 남성들이 그 정도도 눈치채지 못할 바보들이 아니라는 점을 기성세대는 깨달아야 한다. 참고로 정례적인 사회조사 통계를 보면 1인가구와 비혼문화에 대한 긍정적 인식의 확산 정도는 지난 10년간 오히려 남성에서 더 빠르게 진행되어 왔다.

 

 

 

다시 시야를 넓게 보자. 우리는 한국사회에서 20-30대가 처한 특수한 조건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미 30대부터 대학진학률에서 남녀 간의 격차는 역전되었고, 이들 세대 내의 임금 격차도 적거나 20대의 경우에는 거의 없다(즉 대부분의 임금격차는 40~50대가 벌려 놓았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IMF 이후 형성된 물질적 조건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성장한 이들에게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고용안정' 등의 특권(?)에 다가가는 것이 가진 것 없는 젊은이들이 인식하는 사회적 정의의 가장 직관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남성들에게 '성별 할당제'나 '여대 약대 로스쿨' 등으로 대변되는 가장 온건한 형태의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조차도 사회적 공정성을 훼손하는 '거악(巨惡)'으로 인식된지 오래이다.

 

 

 

그런데 기성세대 진보의 문제는 이들의 인식을 조건지운 물질적 조건을 바꾸는 데 거의 무능력했던 주제에, 자신의 특수한 조건, 특수한 세계관, 특수한 생활감정에 이입해서 훈수를 두길 즐겨한다는 점이다. 내가 예언하건대 이번 설문조사 결과로 진보진영 내에서 20대 '남성' 개새끼론이 등장할 것이다. 아니, 이미 어쩌면 등장했는지도 모른다.

 

 

 

40~50대 진보, 특히 해당 연령층의 남성들은, 젠더문제에 대해 갖는 자신들의 상징적 부채감은 이미 30대 이하부터는 사라졌다는 사실부터 직면하고 학습해야 한다. 20~30대 남성들은 여성이 때로는 불리한 조건에 처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에는 납득할 수 있다. 자신의 어머니가 가부장제의 피해자였다는 주장에는 납득한다. 그러나 현 사회에서 모든 여성이 선천적으로 사회경제적 약자일수 밖에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고개를 격렬하게 가로 젓는다. 만일 이들이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이들이 처한 인식의 조건을 바꾸거나 아니면 적어도 이들과 소통하는 모양새를 보여서 이들의 인식형성에 개입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이들이 구의역 비정규직 희생자와 태안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희생자 그리고 택배 상하차 알바생들에게 대해 갖는 공감대에서 출발해서 진보가 지향하는 (경쟁의 정의보다) '더 큰 정의'가 있다는 것을 피부에 와닿게 납득을 시켜야 한다.

 

 

 

지난 날 분출된 20대 남성들의 젠더문제에 대한 요구를 모두 다 수용할 필요는 없다. 나 역시 이들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진보는 이들의 불만에서 합리적 핵심만 취하고 버릴 건 버리면 된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젊은 남성들의 불만 역시 공정하게 인지하고 소통한다는 인상을 줘야 했다. 그랬다면 최악의 결과는 면할 수 있었다. 예컨대 나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정부가 워마드 시위대와 정책적 협의를 한 것은 젊은 남녀 모두에게 매우 좋지 않은 신호를 줬다고 생각한다. 옳건 그르건 무언가 자신이 믿는 정의가 실현될 거라고 믿고 청와대에 청원을 올리는 순진한 젊은 남성들에게 성의 있는 답변(그것이 공감의 제스처가 되었든 반론의 제스처가 되었든)을 올리는 것은 적어도 '남경들아 분위기 좆창내지 말고 웃어'라는 피켓을 들며 홍대 몰카 피해자를 조롱하는 혜화역의 정신병자들과 대화하는 것보다 훨씬 정의로운 제스처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자신들 세대 내에서만 자명하게 통용되었던 전제를 내려놓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나는 이번 20대 남성 지지율 하락이 일시적인 현상이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나는 결과적으로는 래디컬 페미니즘 진영이 유포한 남녀 갈등 프레임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을 발목 잡은 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를 인식한 이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결국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덧붙여, 지금까지 20대 남성은 이러쿵 저러쿵 하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정체성 정치를 극도로 혐오하는 나로서는 불편하다. 특히 지금 이 사태를 초래한 래디컬 페미니즘은 사회경제적 계급이 아닌 남성과 여성 등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적대적 프레임을 형성하는 정체성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다. 사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에 대해 높은 지지를 보내던 20대 남성들이 젠더이슈를 중심으로 결집하며 문 정부에 대해 비토의사를 밝힌 것은 '정체성 정치'의 논리 그 자체로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결국 둘 중 하나이다. 정체성 정체의 문법을 희석시키고 전통적인 사회경제적 불평등에서 선명한 전선을 그을 것인가, 아니면 정체성 정치를 진보의 핵심적 가치로 고수할 것인가.

 

 

 

후자를 선택한다면 20대 남성 지지율이 이탈하고 나아가 현 정부에 대한 적극적 비토세력이 되는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내가 볼 때 이 경우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이제야 상황이 명확해졌다고 도리어 좋아할 것 같다).

 

 

 

전자를 선택한다면 과거처럼 진보진영이 메갈 워마드 프레임에 휘둘리는 짓을 그만둬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워마드의 분노를 이해해야 한다는 인권위원장의 발언이나, 메갈리아에 감사해야 한다는 여가부 장관의 발언은 나는 앞으로는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정의롭지도 않을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p.s. 20대 남성들의 지지율 붕괴가 젠더문제 때문이 아니라 고용난 등의 사회경제적 곤경 때문이라는 현실도피적 주장을 간혹 볼 수 있다. 이들은 '상수는 변수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사회과학의 오랜 금언을 외울 필요가 있다. 고용난은 이미 오랜 사회경제적 어려움이었고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피해갈 수 없다. 그게 20대 남성의 지지율 붕괴의 원인이었다고 믿는 것은 이해할만한 태도이지만 적어도 과학적인 태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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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후반으로써 20대의 낮은 지지율에 대한 글중에 제일 공감이 가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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