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친일 행각은 역사가 오래고 뿌리가 깊다. 대표적인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보겠다. 1919년의 3·1혁명에 화들짝 놀란 일제 조선총독부가 사탕 발림처럼 발표한 '문화정책'에 따라 1920년에 창간된 조선일보의 중심은 대지주계급과 예속자본가들의 친일단체인 대정친목회와 유정회 등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조선일보는 1934년 11월 11일자 석간 1면 기사('대원수 폐하 대본영에 나가시다')에서 일본 왕의 움직임을 이렇게 보도했다. "천황 폐하께서는 11일부터 거행할 올해 육군특별대연습을 어통재(御統裁)하시기 위하여 10일 동경어발 일로 대본영에 나가시다." 일본 왕의 생일인 '천장절'(1939년 4월 29일)을 맞아 조선일보가 조간 1면 머리에 올린 사설('봉축 천장가절')은 과연 이것이 우리 민족의 한 사람이 쓴 것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광명이 동천에 충일하고 생생한 기력이 모토(牟土)에 편만하여 있다. (···) 춘풍이 신록에 빛나는 이 청상한 계절에 제하여 만민일체로 천장의 가절을 봉축하는 것은 해마다 경하의 염을 새롭게 하고 감격의 정을 깊이 하는 바 있다."(참고로 말하면, 동아일보도 조선일보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