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현 기자. 한겨레는 왜 검찰 뒤를 졸졸 쫓아다니나.

Cross_X 작성일 19.09.23 20:5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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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법조가 왜 검찰 편향적이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드릴게요. 사실 이 문제는 외부에서 강하게 비판하지 않으면 안 바뀔 수준으로 내부에서 곪고 곪아서, 한겨레 구성원 누군가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듯 이야기를 꺼냈어야 해요. 하지만 내부의 문제를 외부에 꺼내는건 쉽지 않아요. 그간 아무도 얘기하지 않으니까 이 지경이 된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제 개인의 관찰이자 의견이지만 직접 한겨레 법조팀에 있어봤기에 참조는 될 거라 믿어요. 이건 한겨레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겨레를 구하고자 하는 각별한 마음에서 쓰는 겁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제가 언젠가는 썼을 글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계신 논란의 강희철 기자는 대표적인 검찰통인데, 사실은 그 안에서 매우 존경받는 사람이에요. 이해가 안되시죠? 그건 법조팀이 검찰 중심의 취재로 돌아가고 그럴 수 밖에 없는 구조라서 그래요.

저도 한겨레 법조팀에 있으면서 검찰 중심의 기사 속보를 전하는 관행을 바꿔보겠다고 나름의 다양한 계획을 세워봤어요. 그들은 불편하게 들리겠지만, 저는 솔직히 한겨레 법조 기사가 평소 상당히 문제가 많다고 느꼈고 그걸 바꿔보고 싶어 법조팀에 자원해서 들어갔었어요. 그들은 웬 이상한 애가 법조팀에 오겠다고 해서 의아했을수 있을 거예요. 마지못해 저를 받아들였겠지만 저는 사실 칼을 들고 그 팀을 수술하겠단 각오로 들어간거였어요. 건방지게도 그랬습니다.

정치적으로 굉장히 병들어있는 조직인 검찰이 아닌, 그나마 공판중심제가 자리 잡은 법원 중심의 기획 기사를 쓰려고 해봤어요. 굉장히 아이디어도 많이 내고 노력했어요. 근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걸 몇개월 안가 깨닳았어요. 한겨레 법조기자들이 문제라기보다는 법조 보도 시장의 구조적 문제에 원인이 있어요.

대표적인게 수사 속보 보도예요. 이걸 신경 안쓰려고 해도 신경 쓸수 밖에 없어요. 속보는 법원에서 나오지 않아요. 그리고 편집국에서 수사 속보를 원해요. 타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단독을 건져오길 원해요. 이건 수사가 시작되는 검찰팀에서 나올수 밖에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레 법조팀내 발언권이 검찰취재팀에 실리게 되고 대부분 언론사의 '법조 반장'은 법원이 아닌 검찰에 있어요. 그리고 웬지 법원 취재팀 기자는 뭔가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주니어' 취급받는 경향과 분위기기 생겨요. 이거 절대 부인 못할 겁니다. 그런거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고요.

판사보다는 검사와 친한 기자들이 수사속보를 많이 건지고 또 조직 내 능력자가 되어가요. 그들이 결국 커서 나중에 법조 반장이 되고 법조 팀장이 돼요. 책도 쓰고 점점 영향력이 커지지요. 그러면 시각이 자연스레 친검 법조팀이 되는거예요. 강희철도 그렇게 만들어진 선한 '괴물 법조 기자'예요. 괴물이란 비유를 쓰는건, 상당히 법조 기자로서 능력이 탁월한데 결국 전체 법조 기사의 틀과 방향을 망가뜨리기 때문이에요.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진 능력자인데, 그게 법조 보도 시장에서 요구받는 능력의 사실상 전부라서 본인이 괴물이 되어있는지도 몰라요.

근데 더큰 문제는, 그런 괴물 법조 기자들만 그 바닥에서 살아 남아요. 후배들도 존경하고요. 그렇게 저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기자는 점점 그 법조 바닥에서 마음이 떠나서 '스스로' 방출되지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법조 이너서클' 같은게 생기게 돼요. 지난 10년간 한겨레 법조 기사를 누가 써왔는지 통계를 내보면 알아요. 많아봤자 20명(그중에서도 주도권을 가진 기자들은 10명도 안돼요)이 안될거예요. 또 법조팀장을 어떤 사람들이 주로 맡아왔는지 찾아보면, 법원중심의 관록을 쌓아온 취재 기자가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될거예요. 왜 이러냐면 '친검 성향'의 기자들끼리 무슨 고인물처럼 계속 돌고 돌아서 그래요. 자기들끼리 일해보면 금방 느끼잖아요. 새로운 후배가 들어왔다 쳐요. 근데 뭔가 대화해보면 좀 안맞고 그러면 같이 일하기 싫어지잖아요. 결국 그 후배기자는 일탈해요. 이미 검찰 중심의 취재가 자리잡혀 있기에, 그 문화에 적응하는 기자들만 다시 법조팀에 자원 해서 가요.

법조 고급 취재원들도 법조 이너서클 기자들끼리 독식해요. 예를 들어, 헌법재판관이나 검사장급들을 법조팀이 공식적으로 만찬할 때 해당 법조팀원만 참석하지않아요. 이미 법조팀을 나갔는데, 기꺼이 초대받는 선배 기자들이 있어요. 제가 주욱 지켜보니 그 물이 그 물이에요. 드러난 실체는 없는데 분명히 존재하는 일종의 '한겨레 법조 이너서클'이죠. 고인물들이에요. 그리고 그들끼리만 고급취재원을 공유받고 나눠갖는 문화가 있어요. 저는 법조팀을 나와 경찰청 출입기자를 하면서부터는 단 한번도 그 모임에 초대받지 못했어요. 그러면 저는 판단하는 거죠. '아, 나는 그 이너서클에 들어가지 못한 기자구나.'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그 이너서클 기자들은 자신들만이 법조 전문가라고 생각해요. 타 부서에서 법조 기사를 쓰면 온갖 비판을 공개적으로 해요. 예를 들어, 제가 토요판팀에서 '간첩증거조작 사건'을 밝혀냈을 때 그 이너서클 기자중 한명이 계속 찾아와서 검찰 시각 쪽의 견해를 강조하며 비판하고 돌아간 적 있습니다. 저도 엄연히 법조계 자문을 듣고 철저히 검증해서 쓰는 기사이고 제 기사의 자존심이 있어 너무 불쾌했지만, 그들은 그런 지적을 당연하게 여겨요. 제가 경찰팀으로 옮겨도 그들은 심지어 경찰팀에서 쓴 수사권 조정 기사에 대해서도 비판히고 지적해왔어요. 그런 무례함을 당연하게 여기는 신문사 내 분위기가 있지요. 심각한데 아무도 문제제기를 안해요. '법조 이너서클'에 대한 권위가 어느새 독버섯처럼 자리해서 그래요.

그렇게 고인물들이 되어가고 자기들끼리만 얘기하니까, 그들 내부는 한겨레 법조팀이 어떻게 변질되어가는지 몰라요. 아마 제가 이런 글 쓰면 놀랄걸요. 그러나 한겨레 법조 기사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죠. 제게도 여러 법학자나 변호사들이 '강희철이 어떤 기자냐'고 물어오는데, 저는 그사람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괴물 기자들이 법조보도 시장에서 살아남는 구조를 설명해주곤 했어요. 이건 그래서 한겨레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한겨레 법조팀 내부에서는 여전히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과도한 책임을 묻는다고 억울해 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큰 책임이 있는 선배 기자가 농담으로 억울하다고 얘기하는걸 제가 여러차례 들었어요. 사실 그런 농담이 일상적으로 나온다는게 저로서는 충격이었지만, 당시엔 저도 겉으로 문제제기 하지 않았죠. 왜냐면, 굳이 다투기 싫고 저도 법조팀에서 당분간은 '말 잘듣는 기자'가 되어야 했으니까요. 그러니 문제의 심각성을 그들은 모르는 겁니다.

한겨레 젊은 기자들이 '강희철의 법조외전'같은 문제많은 칼럼에 대해 지적하기는 커녕, 편집국장이 삭제조처하는 걸 되레 문제 삼은 걸보고 저는 많이 놀랐어요. 한겨레 기자 사회의 권력 지형도가 법조로 많이 넘어간 징후로 보아요. 사실 법조팀 나와야 정치부도 가고 더 고급 취재처를 돌아다니다가 부장도 되고 승진하는 문화가 몇년새 자리잡혀가고 있어요. 민첩한 후배들은 이런 거를 아마 눈치챘을 거예요. 그래서 그 지겹고 때로는 '역겨운 검사'들을 만나야만 하는 고된 출입처인 법조팀에 들어가려고 기를 쓰고 노력하는 문화가 한겨레에서마저도 자리잡아가고 있어요. 법조팀은 한겨레의 수많은 정체성중 하나인데 어느새 다른 언론사들처럼 한겨레의 중심 취재부서가 돼있어요. 정말 심각하지요.

한겨레 편집국장이나 사장이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이 문화는 쉽게 안바뀔거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수사 속보 포기해도 좋으니, 검증된 것만 쓰자고 회사의 책임자가 선언 해야 해요. 다른 곳에서 기사 쓰거나 말거나, 한겨레는 검찰의 공식 브리핑으로 발표된거만 기사 쓰고 그외 한겨레가 자체 검증을 완료한 기사에 한해서만 기사를 쓰는 것으로 법조 기사를 바꾸자고 해야 해요. 그러면서 검찰이 아닌 법원중심의 취재 관행으로 서서히 옮겨 가야 해요. 그리고 검찰 수사속보 잘 캐오는 기자가 능력자로 대접받고 이후 고급출입처를 보장받는 관행도 반드시 없애야 해요. 한겨레니까, 그렇게 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할수 있어요.

이 고민들은 제가 여전히 한겨레 구성원이라면 저도 아마 솔직하게 안꺼냈을 거예요. 불편한 거 싫거든요.
하지만 한겨레 구성원들도 이제는 솔직하게 인정할건 인정하고 내부 고민을 다시 시작해야 해요.

제 지적과 관찰이 다 옳지는 않을 거예요. 제가 오해하고 있는거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결국 '시끄러움'은 논의의 불쏘시개가 돼요. 제 글이 그정도의 역할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더이상 한겨레 기자는 아니지만, 한겨레는 우리 시민 사회 모두의 자산이잖아요. 불쾌하게 느낄 한겨레 기자들이 많겠지만 부디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시민사회가 지적하는 한겨레 법조 기사의 문제를, 부디 잘 모르는 비전문가 혹은 진영주의자들의 투덜거림으로 여겨선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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