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쓴 사람 잘못이지 칼이 잘못이냐는 항변은 틀렸다”
자전적 에세이 ‘검사내전’ 쓴 김웅 인천지검 공안부장
경향신문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2018.01.19 17:46:00
5시간이나 자신을 조사한 검사에게 범죄 피의자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저… 그런데요, 선생님. 제가 검사님 얼굴 한번만 뵙고 갈 순 없을까요? 제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장난기가 발동한 검사가 답했다. “무슨 말씀이신데요? 제가 전해드릴게요.” 피의자는 한층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뇨. 제가 직접 말씀드려야 해서요.” 보다 못한 검사실 수사관이 나섰다. “저분이 검사님이세요.” 피의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에잇, 거짓말하지 마세요!”
‘검사’ 하면 피의자를 사정없이 겁박하는 ‘갑’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검찰 조사를 받다가 졸도했다거나,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도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포장된 이미지는 통상 둘 중 하나다. 불굴의 의지로 악의 무리를 단죄하는 정의의 사도이거나, 출세를 위해 권력과 유착하는 부패의 한 축이거나. 김웅 인천지검 공안부장(47)은 이런 세상의 편견을 단박에 무너뜨린다.
인상부터 남달랐다. 착하다 못해 어수룩해 보이는 얼굴에다, 사투리가 말씨에 배인 그는 검사보다는 산골 초등학교 선생님 인상에 가까웠다. 그런데 공안부장이라니! 그는 “그게 무기”라고 했다. 범죄자들이 그를 만만하게 보고 스스로 무장해제하면서 허점을 쉽게 노출한다는 얘기였다. 그에겐 유머감각도 있다. ‘천성’이라기보다는 오래 갈고닦은 ‘내공’으로 느껴졌다. 최근 그가 낸 에세이 <검사내전>(부키)이 독자들의 호응을 얻는 이유일 것이다. 검사생활 18년의 대부분을 형사부에서 보낸 그의 경험이 녹아 있는 이 책은 출간 일주일 만에 5쇄(누적 6000부)를 찍었다. 형사부는 경제·교통·환경·외국인범죄·여성·소년범죄 등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반 사건을 담당한다. ‘형사통’인 그가 인천지검 공안부장으로 발령받은 것은 지난해 8월이다. 김 공안부장을 지난 17일 인천지검에서 만났다. 그는 눈가에 커다란 살색 반창고를 붙이고 나타났다.
- 얼굴의 반창고는 어쩌다가.
“연말에 아는 분이 강화도에서 맛있는 물고기를 잡아왔다고 해서 만났어요. 소주 3잔반을 마신 상태에서 전화를 받으러 나갔는데, 갑자기 아스팔트가 정말 사람을 덮치더라니까요. ‘꽝’ 했는데 얼굴 한쪽이 곤죽이 됐어요. 계속 피부과에 다니고 있는데, 의사가 그러던데요. 정말 살성이 좋다고(웃음).”
그는 1970년 전남 여천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막걸리를 만드는 도갓집 주인이었다. 매일 그의 집에 들러 막걸리를 반 주전자씩 얻어간 뒷집 노인은 그가 태어나자 3년 치 술값 대신 이름을 지어줬다. 술과는 그런 기막힌 인연이 있는데도 그는 술엔 젬병이었다. 술 몇 잔에 혼절한 적도 있다. “검사 초임 시절 가장 힘든 일이 폭탄주 문화였다”고 말할 정도다. 소주 3잔반 때문에 길에 넘어진 이유다.
- 스스로 ‘조직에 맞지 않는 타입’이라고 밝혔는데, 왜 검사가 됐습니까.
“대학(서울대 정치학과)을 졸업한 후에 딱히 취직할 생각을 안 했어요. 1년 동안 농구만 했죠. 사법시험을 통과한 친구가 어느 날 찾아와서 제게 사법시험을 보라고 권유했어요. 합격하면 면허증이 생기니 뭘 해도 먹고살 수 있다고 해서 4년을 공부해 합격했죠. 시보생활을 해보니 판사는 너무 점잖고 앉아서 일만 하는 것 같았는데 검사는 끈끈한 정 같은 게 있었어요. 검찰에 갈 성적이 된다고 해서 검사가 됐어요.”
- 처음 발령받은 검찰청에서 별명이 ‘당청꼴찌’(우리 청에서 꼴찌)였고, 분위기 파악 못하고 윗사람 비위를 거스르는 바른말만 골라 하다가 ‘또라이 검사’라는 별명도 붙었다고요. 검찰은 ‘상명하복’ 문화가 어느 조직보다 강할 것 같은데 어떻게 버텼나요.
“처음에 당청꼴찌라고 하니까, ‘이 상태로 나가면 계속 꼴찌로 남겠구나’ 싶어서 꼴찌라는 불명예만 벗어나자고 마음먹었어요. 부장들은 서로 저를 안 받으려고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선망하던 조사부에 발령이 났어요. 열심히 했죠. 또 사건을 맡다보면 사람구경, 세상구경 하는 재미가 만만치 않아요. ‘내가 가진 게 참 많구나’ 하는 감사하는 마음도 저절로 생기죠. 그러다보니 위기 때마다 뭔가 다른 일이 생기면서 나갈 타이밍을 놓쳤던 것 같아요. 밖에서 볼 때는 어떨지 모르지만 검찰 내부에 있으면 선후배 간의 인간적인 정도 깊거든요.”
- 책에서 다양한 사기꾼 사례를 소개했는데, 한 편의 무협지를 보는 듯했습니다. 검사생활 18년간의 노하우에서 나온, 사기꾼을 알아보는 비법이란 게 있을까요.
“아무리 근사한 이야기로 현혹한다고 해도 정당한 노동의 대가보다 3배, 4배 훨씬 많은 이득을 주겠다고 하면 다 사기라고 보면 돼요. 많은 피해자들은 사기꾼의 거짓말에 속기보다 자기 마음속의 욕심 때문에 사기를 당해요. 아무리 허술한 속임수라도 피해자의 욕심과 만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죠.”
- 88학번인데 졸업 후 5년이 지난 1997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을 보면 군대는 안 갔나봅니다.
“못 갔죠. 대학에 다닐 때 양쪽 폐에 크게 기흉이 생겨 수술을 했거든요. 지금도 당시 양쪽 폐 위쪽으로 길게 박아놓은 철심 때문에 공항을 오갈 때 금속탐지기에 걸려요(웃음).”
- 폐는 어쩌다 그렇게 됐는데요.
“생활을 엉망으로 해서 그렇죠. 당시 줄담배를 피우고 잘 먹지도 않고 운동도 안 했거든요. 정말 아무것도 안 하면서 집에만 있었어요. 소원이 55㎏(그의 키는 1m87이다)을 넘어보는 것일 정도로 전 늘 가시처럼 말라 있었어요. 심한 대인기피증에 걸렸고 자학과 자폐가 심했죠. 다행히 서울대와 이화여대를 셔틀처럼 떠돌던 시끄럽고 쾌활한 한 노숙자와 어울려 다니다가, 그의 도움으로 정상적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검사내전>엔 그가 ‘길동도사’로 부른 노숙자에 대한 이야기가 살짝 나온다. 어느 날 길동도사는 그에게 서울대 도서관 앞 통로에 신문지를 깔고 5분 동안만 앉아 있으라고 강권했다. “언제까지 병신같이 살 거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노숙자 옆에 있는 거나 신문지 위에 앉아 있는 거나 부끄럽기는 매한가지여서 눈 딱 감고 시키는 대로 했다고 한다. 눈은 감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웅성거림을 느꼈다는 그는 “그때 섬광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뒤로 거짓말처럼 명랑해졌고, 다시 수업에도 들어갔고, 운동도 시작했고, 담배도 줄였다는 것이다.
- 초등학생 때도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면서요.
“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또래에게 왕따를 당했는데, 수술을 받고 반년 가까이 입원하면서 친구 사귈 기회가 더 없었어요. 다리에 박은 철심은 1년 후 뺐지만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만 3㎝ 이상 더 길어졌어요(웃음).”
- 친구 대신 유일한 즐거움이 책읽기였다죠. 꽤 많은 책을 탐독한 것으로 아는데, 작가를 꿈꿔본 적은 없었습니까.
“고등학교 때와 대학 때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어요. 그러다 대학 와서 판금됐다가 풀린 백석 시인의 시집을 접한 후 마음을 접었죠. 제가 노력으로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청와대는 지난 14일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국가정보원의 대공(對共)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고 전문성이 필요한 경제·금융 등 특별수사에 대한 1차 수사권은 검찰에 남기지만 이를 제외한 모든 1차 수사권은 경찰에 넘긴다는 내용이다. 또 검찰의 고위공직자 수사기능도 신설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맡기기로 했다.
- 청와대의 발표와 관련해 검찰 내 분위기는 어떤가요.
“청와대의 발표엔 구체성이 결여돼 있어서 대다수 검사들이 처음엔 ‘어, 저게 뭐지?’라는 반응을 보였어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 어떤 점 때문인가요.
“예를 들면 특수수사만 해도 개념이 모호하거든요. 특수수사가 뭔지 규정된 게 없어요. 하지만 저는 검찰개혁의 취지에는 공감해요. 이번에도 청와대가 사법개혁에 대한 일종의 화두를 던진 것이라고 생각하죠. 지금은 수사권이라는 엄청난 권한을 누구한테 주느냐만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번 기회를 우리나라 형사사법제도뿐만 아니라 전체 사법체계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으로 삼아야 해요. 이를 통해 무엇보다 막강한 권력을 지닌 수사기관 전체의 힘을 줄여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 왜요.
“우리나라는 ‘고소·고발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고소 건수가 다른 나라들보다 월등히 많아요. 명예훼손을 비롯해 모든 분쟁에 수사기관이 개입하죠. 그러면 당연히 수사기관은 힘이 세지고, 언제든지 국민들의 삶에 개입하는 권한도 받아요. 무서운 일이에요. 우리는 무슨 큰일이 생기면 일단 검찰 수사부터 들어가지만, 미국만 해도 그럴 경우 상원에 위원회가 생기고, 위원회에서 조사한 후 개정법안이 만들어져요.”
- 이번 청와대 발표의 핵심은 국정원과 검찰의 권한 축소로 보여요. 역대 정권마다 있었던 ‘정치검찰’ 논란 등 검찰의 자업자득 아닐까요.
“검찰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칼에 불과한데 칼을 쓴 사람이 잘못이지 칼이 잘못이냐’는 목소리가 우리 내부에서 나와요. 저는 크게 잘못된 생각이라고 봐요. 검찰은 칼이 아니었어요. 스스로 생각할 줄 알았고, 그에 따라 특정 방향을 향해 움직였어요. 대한민국 기관 중에서 스스로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가장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게 검찰이에요. 그런데도 마치 다른 사람의 탓인 양 책임을 회피하는 건 비겁한 일이죠. 제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후배가 있으면 ‘그게 바로 검새(경찰이 검사를 비하해 부르는 말)스럽다는 것’이라고 따끔하게 말해줘요. 이번 청와대 발표에서 검찰개혁의 핵심 과제인 인사권 이야기가 빠진 것은 아쉬워요.”
- 인사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나요.
“외국의 예를 보면 독립된 인사위원회를 구성해 검찰총장도 거기서 선출해요. 행정부 수반이 대통령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인사권을 보장해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검찰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행정기관의 운영원칙과는 다른 원리를 적용하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고 봐요. 특히 검찰은 기소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권으로부터 독립된 인사원칙을 갖고 있어야 해요.”
-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간 것도 이명박(MB) 정부 시절 검찰 수사였죠. 지금은 MB와 관련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고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검찰에도 너무 큰 상처를 남겼어요. 수사도 잘못됐고, 검찰의 이미지도 추락했어요. 그때부터 정말 많은 게 왜곡되고 무너졌어요. 범죄혐의가 있으면 수사하는 것은 맞아요.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뇌물로 받은 1억원짜리 시계를 논두렁에 갖다 버렸다’는 등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언론에 먼저 흘러나간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죠. 수사기관이 언론에 고의로 내용을 미리 누설하거나, 피의자든 참고인이든 수사의 대상을 완전히 나쁜 사람으로 단정적으로 몰아가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해요.”
- 책에서 공명심과 대중의 환호에 사로잡혀 양심까지 마취시키며 거물 행세하는 검사들이 정의의 사도로 각광을 받고 떠나면, 다음 세대가 그 부작용으로 고통받는다고 했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선배들이 한 잘못을 후배들이 뒤집어쓴다는 얘기예요. 지금 검사들이 왜 이렇게 욕을 먹어야 하는지, 미안한 마음이 앞서요.”
그는 책을 쓴 배경에도 이런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보다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으로 살아가겠다’고 어느 선배가 말씀하셨듯이, 독자들에게 언론에 드러나지 않는 99%의 검사들은 생활인으로서 당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 지난해 공안부장이 됐죠. 공안부라고 하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간첩이나 반정부 시위자를 혹독하게 잡아넣는 검사를 연상하는데요.
“인천지검 공안부에 1년 동안 배당되는 사건이 5000건이 조금 넘어요. 국가보안법 사건은 4건이고 집시법은 24건이죠. 나머지는 전부 임금이나 퇴직금 체불,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이에요. 한마디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공안부를 찾아오는 거죠. 그만큼 보람도 커요.”
인터뷰는 점심시간을 훌쩍 지나 3시간가량 이뤄졌다. 그는 달변이었다. 취재를 마치고 주차장을 향해 같이 걸으며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국민의 눈에 비친 검찰상을 엿보게 했다는 점에서 ‘블랙코미디’처럼 들렸다.
“어느 날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고 출두한 피의자가 씩씩대며 저한테 따졌어요. ‘하물며 냉장고나 세탁기도 배달해주는데, 검사는 뭐가 잘나서 사람을 오라가라 하는 거요? 용건 있는 사람이 찾아오는 게 맞는 거 아니요?’ 하더라고요. 저는 ‘선생님, 냉장고나 세탁기는 무거우니까 직접 배달해주지만 선생님은 몸만 움직이시면 되니, 수고스럽지만 그냥 이렇게 나와주시지요’ 하고 달랬어요.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죠. ‘이분 말씀이 영 틀리지는 않네.’”
[출처] 자전적 에세이 ‘검사내전’ 쓴 김웅 인천지검 공안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