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설치가 검찰개혁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고, 만일 설치에 성공한다면 오히려 개혁과는 반대방향으로 갈 위험성이 큽니다.
검찰개혁의 골든타임이 지나고 있는데(이미 지났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아직도 마치 공수처 설치 여부라는 하나의 기준에 검찰개혁의 성패가 달린 것처럼 오해하는 분들이 계셔서 제 의견을 정리해서 올립니다.
이론적인 면은 모두 빼고 실질적인 면만을 볼 때 공수처 설치에 반대하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첫째는 공수처 설치는 새로운 권력기관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수처는 본질상 '사정기구'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공수처를 '특별사정기관'이라고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나라에 권력기관인 사정기구를 또하나 만드는데 반대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사법 과잉', '검찰 과잉'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실 겁니다. 그렇다면 기존의 권력기관의 권한과 힘을 축소하고 제한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또다른 특별권력기관을 만드는 것은 시대적 과제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정한 직급 이상의 고위 공직자를 수사 및 기소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는 전세계 어느 국가에도 없습니다. 최근 패스트 트랙 논의와 관련해서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사이에 공수처에 기소권을 주느냐 마느냐를 놓고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것도 선례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지켜지고 있습니다. 전관예우 등 권한남용도 우리처럼 심각한 곳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잘 되고 있는 국가들의 예를 따라서 우리 제도를 고치면 되지 굳이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제도를 만들어서 실험을 할 필요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말씀드리면, 그럼 어떤 방법이 있느냐, 글로벌 스탠다드는 무엇이냐, 라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당연히 방법이 있습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입니다. 전세계 어떤 선진국에서도 대한민국 검찰처럼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는 기관을 운영하지 않습니다. 우리 검찰의 모든 문제가 검찰이 경찰처럼 전면적인 수사에 나서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보면 경찰이 기소권을 행사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검찰에서 수사권을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하면 바로 개혁이 이루어집니다. 모든 선진국이 이런 방식으로 검찰 권력을 통제하고 있는데 왜 우리만 안 된다는 것인지 저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사정기관인 공수처가 일단 설치되면 악용될 위험성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저는 문재인 정부에서 공수처가 만들어지더라도 청와대가 악용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도는 선의를 기대하고 설계해서는 안 됩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박근혜 정부 우병우 민정수석이 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공수처 설치에 찬성하는 분들은, 검찰 외에 공수처가 있으면 서로 경쟁하면서 국민들에게 봉사할 것이기 때문에 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저는 조직 원리를 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 중심제 국가입니다. 권력기관들은 본질적으로 청와대를 바라봅니다. 역대 정권은 검찰 하나만 가지고도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왔습니다. 공수처라는 권력기관이 하나 더 생기면 이제 양손에 검찰과 공수처를 들고 전횡을 일삼을 위험성이 있습니다.
우병우 민정수석 체제에서 만약 공수처가 있다면 정말 상황이 더 나아졌을까요? 저는 훨씬 더 나빴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어떤 분들은 공수처는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는 기관(!)'이라 정권에 충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수십년간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게 하는데 실패해왔는데, 무슨 기발한 방법이 있어서 공수처는 그런 착한 기관으로 만들 수 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방법이 있다면 기존 검찰을 왜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는 기관으로 만들지 않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공수처 설치에 반대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공수처는 세계 어느 곳에도 비슷한 예가 없는 조직입니다. 이런 권력기관을 만들려면 최소한 깊이 있는 토론을 벌여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공수처 설치에 반대하면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것처럼 치부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은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책으로 얻으려는 목표에 투철해야지 특정한 제도 그 자체에 집착하는 것은 부작용만 불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