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미리 밝혀 둘것은 저는 좌파 우파 이런거 잘 모르고 친구들이나 가족과도 정치이야기 잘 안하는
타입입니다.
의견이 대립되거나 나눠지면 얼굴 붉히며 헤어지거든요. 그래서 주의 분들이 정치이야기로 싸우면 듣기만하다가
잘못된 팩트나 과거만을 수정해주는편이구요.
우연찮게 명에의전당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고 이글을 씁니다. 80년대 두환이형... 잘못한 이야기는 모두 알고
계시니 이것저것 빼고 경제에 대한 이야기만 해보겠습니다. 사실에 맞지 않거나 틀린점이 있다면 댓글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이상하게 두환이형은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군인같지 않은 면모를 보여준것이 유독 '경제'관념인듯 합니다.
물론 곁에 김재익님과 같은 경제수석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김재익님을 경제수석으로 앉힌것도 두환이형이죠.
쿠테타로 정권을 잡자마자 79년 오일쇼크로 인해 집권초기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보일기미가 보이자 두환이형은
경제에대해 고민을 하고 국내 경제학자들을 모아놓고 과외를 받고 조언을 구합니다. 그중 스탠퍼드 경제학 박사인
'김재익'님이 전두환의 마음을 사로 잡았고 전두환은 김재익분에게 경제수석자리를 제안합니다.
당시 김재익분은 전두환에게 "내 정책은 인기도 없을테고 저항에 많이 부딪힐수 있는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반문하지만 전두환은 김재익분에게 "여러말 할것 없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고말하죠.
남다른 총애를 받던 김재익분에게 쿠테타초기맴버들의 시기와 견제를 받자 전두환이 직접나서서 김재익을 옹호한일도
많았습니다. 80년 10월 경제수석으로 김재익을 임명 후 많은것이 변화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박정희정권때 분문률인
경제관념인 '경제성장을 위해 물가를 희생하고, 정부가 성장을 견인, 선도기업에게는 특혜를 준다. 그리고 내수시장
보호를 위해 수입물품에 관세를 많이 매긴다.' 라는 사고를 180도 틀어 버립니다.
김재익은 '성장보단 물가안정, 경제는 민간이 주도 하고 독과점은 철폐되어야한다. 대외무역확대를 위해 개방화에 동참'
이라는 완전다른 생각을 가지고 경제를 바꿔나가기 2년이 채 안되었을때....
30프로가 넘었던 물가 상승률이 82년 5%때로 낮아지게 됩니다. 물가가 낮아지니 금융자산 안정화를 가져와 민간저축 증대
를 불러오고 이로인해 투자재원이 늘어나 경제성장이 더욱 늘어나게되고 화폐가치가 안정이 되자 부동산투기현상도 줄어
들게되죠. 그런데 82년 4월 이때 '장영자'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아... 전두환때 김재익님의 이야기만 쓰려고 했는데 장영자 사건이 나오는 군요... 장영자 사건을 또 써야하네요...
글이 너무 길어지는데..) 우리나라 80년대 초기까지만 해도 저축이 재대로 이뤄지지않아 은행에 돈이 많지 않았고
여러이유로 공공부문 금융이 부실해서 기업들은 사금융에서 돈을 많이 융통해서 썻는데(약 3분의1이 사금융.
그때당시 경제성장률은 10프로를 윗돌아 기업들은 만성적인 자금부족 사태를 겪고있는터라 금리를 따지기보다
자금의 안정적인 확보를 더 중요시 여겨 사채이자는 신경도 안쓰고 땡겨쓰던 시절)이런 기업들을 상대로 장영자는
달콤한 거래를 제안 합니다. "님아... 나 큰손임. 우리 형부가 누군줄 앎? ㅎㅎ 내가 10억 드릴테니 담보로 어음 50억 발행
해주삼. ㅇㅋ? 10억쓰고 어음 날짜에 이자쳐서 갚으면 인정해드림요." 이런식으로 여러 기업에 대출을 해준 후 받은
어음들을 시장에 30억으로 내놓아 남은 차익을 챙겨 80년초 당시 착복한 밝혀진돈만 7111억원..........
(장영자가 정치자금 브로커라는 설도 있습니다.. 제가보기엔 그냥 사기꾼체질... 죽을때까지 사기침...)
이러한 일이 당시 가능했던게 당시 은행은 금융실명제 전이 었기때문... 가명 또는 차명... 심지어 무기명으로 금융거래가
가능했었습니다. ('금융실명제'는 93년 김영삼정부때 시작)
김재익은 이러한 상황을 보고 당시에 '금융실명제'를 주장 했지만 당시 전두환의 지하정치자금확보와 기업들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83년 10월.... 북한이 전두환을 노리고 아웅산 묘소 테러를 계획했지만... 정작 전두환은 참관하지 않은채 비운의경제수석
'김재익'분은 경제수석 취임 3년만에 순직하시고 말죠..
김재익의 빅픽처 였던 '물가안정 -> 경제안정 -> 무역수지흑자'를 끝내 보지 못하고 김재익이 만들어 놨던 정책에 힘입어
85년 이후 무역흑자로 접어들게 되고 86년~89년에는 단군이래 최대 호황기라는 시대를 접하게 됩니다.
이때 운이 좋은게 저 달러, 저 물가, 저 유가라는 시대를 잘 만나기도 했습니다.
참고 : 만쭈리 블로그
세줄요악
1. 김재익님이 만들어 놓은 정책과 로드뷰
2. 박정희형이 만들어 놓은 중화학
3. 3저호황 (저달러,저금리,저유가)에 잘올라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