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고독한들개a 작성일 20.06.25 07: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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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전쟁의 시작 

1948년 남쪽은 자유민주주의의 대한민국북쪽에는 공산주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두 개의 단독정부가 수립되었고이후 이념적 대립과 냉전은 고도되었습니다.

그러던 1950년 6월 25일 새벽 4북한군은 선제 타격 작전 계획에 따라 38도선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합니다.

242대의 전차를 앞세워 기습적으로 침공하며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은 유엔군과 소련중공군까지 합세하며 커지게 됩니다.

당시 6월 25일은 일요일로 대부분의 병력이 외출하며 북한군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3년 후 휴전협정

6월 28일 북한군이 서울에 진입하였습니다.

당시의 이승만대통령은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며 UN군의 지원을 받게 되고,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며 28일에 다시 서울을 수복하게 됩니다.

이후에도 38선을 중심으로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며 1951년 7월부터는 휴전협정이 시작되었는데요.

2년 간의 협정과 전쟁 끝에전쟁 발발 3년 1개월 2일만인 1953년 7월 27휴전협정이 맺어집니다.

무려 3년 간에 걸친 전쟁이 정전되며 더 이상의 총성은 들리지 않았지만,

 

한반도는 남한과 북한 둘로 나뉘게 됩니다.

16개국 - UN군의 참전

전쟁 당시 UN군이 참전하며 대한민국과 함께 싸워주었습니다.

16개의 전투부대 파견국(미국영국호주네덜란드캐나다뉴질랜드태국,

그리스남아공벨기에필리핀터키룩셈부르크콜롬비아에티오피아프랑스)

 5개의 의료지원 및 시설 파견국(스웨덴인도덴마크노르웨이이탈리아)에서

 많은 유엔군이 참가하며 우리 한국에 힘을 보탰습니다.

 

62만 명 한국군 피해자 수

6.25전쟁은 우리 민족이 치른 전쟁 중에서도 가장 처참한 전쟁 피해를 입혔습니다.

군사작전과 이념투쟁이 중첩되며 살상력을 더했는데요.

휴전 이후 우리나라는 개인 가옥학교공공시설도로철도교량 등 다양한 산업시설들이 파괴되며

사회 경제체제의 기반과 함께 국민의 생활터전이 황폐화되었습니다.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자료에 따르면여기에 전사한 한국군의 수는 13만 8천 여명부상자 45만 여명,

실종자까지 포함하며 6.25전쟁으로 인한 한국군 약 62만 명에 달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한국군 뿐만 아니라 전쟁에 참여했던 약 15만 명의 유엔군의 목숨도 앗아갔습니다.

 

1000만 명 이산가족 수

  한국전쟁의 피해는 단순히 국군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전 국토의 80% 가량에서 전쟁이 벌어진만큼 민간인 피해도 상당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부모님과 헤어지거나 부모이 돌아가신 전쟁고아만 무려 약 1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남북의 민간인 사상실종자 수는 모두 약 100만 여명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당시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인 약 1,000만 명은 가족과 이별한 이산가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쟁은 끝이 났지만 남과 북으로 떨어지게 된 이들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출처] [6.25전쟁 69주년숫자로 보는 가슴 아픈 남북역사, 6.25한국전쟁|작성자 경기도교육청

 

"6.25 노래" 가사가 바뀐 것 아십니까?

  사실 왜곡을 이 정도로 철저히 하는 세력이 지난 십 년간 정권을 쥐고 바꿔 놓은 역사의 편린이라지만, 그 파장은 오래 갈 것 입니 

■ 가사까지 편집된 “6.25의 노래”...금지곡으로도 모자라

■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6.25의 노래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10년 간 금지곡이 되었고,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이 노래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참으로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되는 대목입니다.

‘6.25의 노래’는 지금의 30대 이상이라면 초등학교 시절부터 자주 부르던 노래였습니다.

특히 매년 6월 달이 되면 선생님의 반주 소리에 자주 따라서 부르곤 하였습니다.

 

● 그런데...,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이 곡을 《10년간 금지곡》으로 지정한 것도 모자라,

그 가사까지도 아래와 같은 황당한 내용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출처: 이승현, 조갑제닷컴 회원 논객께서 지적해 주신 그 내용과 문제점을 아래에 스크랩해 봅니다....》 / 참고로 “6.25의 노래”의 원 가사는 본 글의 마지막에 게재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모 시인 ‘별이 되신 님이시여!’를 지은 "심재방" 시인이 개사를 맡았다고 합니다.

  《新 6.25 노래》 (심재방 지음) 1.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조국의 산하가 두 동강나던 날을

동포의 가슴에다 총칼을 들이대어 핏물 강이 되고 주검 산이 된 날을

  2.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동포 형제를 원수로 만든

그들을 겨레의 이름으로 부수고 또 부수어 선열의 흘린 피 헛되지 않게 시리

  3.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자유와 민주와 평화와 번영 위해

민족의 공적과 싸우고 또 싸워서 통일의 그 날이 기어이 오게 시리

   (후렴) 이제야 이루리 그 날의 숙원을 동포의 힘 모아 하나의 나라로

피의 원한 풀어 하나의 겨레로 이제야 이루리 한 나라 한 겨레

● 1절에는 북괴군이 남침했던 내용 대신 남?북한이 서로 총칼을 들이대었다는 정황만 설명하고 있다.

● 2절에 가서는 "6.25 전쟁"의 책임은 북한이 아니라 '외세'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외세'란 어디일까?

● 3절은 민족의 공적과 싸워서 통일을 이루자는 내용을 담았다. '민족의 공적'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이러한 가사 내용으로 "6.25 전쟁"을 설명할 수 있을까?

  "6.25 전쟁"이라는 민족 최대의 비극을 왜곡하고 전쟁의 책임이 있는 를 씌어주는 《‘신 6.25의 노래’》 는

역사 속에 사라져야 할 것이다. 종북좌파들의 영악함은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전교조를 통해서 아이 때부터 세뇌를 시키고, 수십 년을 불러오며 반공정신을 일깨워 준 6.25의 노래조차 이런 식으로 개사를 하면서 역사는 조금 조금씩 왜곡이 되고, 자라나는 세대는 그런 왜곡된 역사로 세뇌가 됩니다. 끔찍합니다.

♤ 참고로 《“6.25의 노래” 원곡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2.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불의의 역도들을 멧도적 오랑캐를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부수어 흘려 온 값진 피의 원한을 풀으리

3.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자유를 위하여서 싸우고 또 싸워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게 하리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 보자 허니, 이제 이 나라는 ‘? 나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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