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특설대는) 소규모이면서도 군기가 잡혀 있던 부대였기에 게릴라를 상대로 커다란 전과를 올렸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대 게릴라전-미국은 왜 패배했는가>(1993년, 일본어판)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953417.html#csidx2b5219a5c76aa4c82109ddfc48cfff7
백선엽의 상세한 기록은 잘 알꺼니까 간단하게 요약해 봅니다.
1.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서 독립군을 "적극적으로" 때려 잡았다.
2. 6.25를 거치며 북한을 "적극적으로" 때려잡아 남한의 민주주의에 이바지 했다.
이건 논란의 여지가 없는거 맞지요?
지금의 논란은 저 사람을 현충원에 안장하느냐? 마느냐?
1의 매국과 2의 애국의 크기를 누가 비교할 수 있는가?
애국보다 친일을 더 많이 했다?
친일보다 애국을 더 많이 했다?
뭐 더하고 빼고 해서 뭐가 더 크다고 계산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비슷해 보이긴 함.
그런데 말입니다
백선엽이 친일에 대한 대가로 옥살이를 한 게 있음? (없는걸로 앎)
백선엽이 애국에 대한 대가로는 각종 훈장과 수 차례 받았으니 연금도 꽤나 받았을것 같네요
그럼 '대가'라는 관점에서
애국에 대한 대가는 어느정도 받았으니 친일에 대한 대가(형벌)이 더 크다고 생각되네요.
백 번 양보해서
친일 = 애국 똑같다고 퉁 칩시다.
그럼 아무것도 없죠?
현충원에 안장은 안 되는거지요.
어림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