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블로그에 썼던 글인데 수정해서 올려봅니다.
-------------------------------------------------------------------------
요즘 의대정원을 늘리는 문제로 의사단체와 정부의 갈등이 심화되어 있다. 특히 8월 7일에 전공의들이 단체행동을 한 것에 이어서 8월 14일에는 개원의사를 포함한 의사들의 단체행동이 있었고, 8월 21일부터는 전공의들의 무기한 파업이 이어지고 있다 . 정부에서는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의사의 숫자가 부족하다는 논리로 의대정원을 확대에 이를 수급하겠다고 한다. 의사단체들은 의사의 숫자가 절대 부족하지 않으며, 의대정원 늘리기는 현 의료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고 반발한다. 이번 정책의 추진자체가 의사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단순히 OECD 천명당 의사수라는 단편적인 통계를 가지고 추진하는 것이라 의사들 입장에서는 반발을 할 수 밖에 없다.
대체적으로 여론이 의사편은 아니지만 의대정원 확대에 대한 기사의 댓글들을 보면 의사들 입장에서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의료체계에 대한 지식이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해서 다소 오해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댓글을 보면 의사들이 치과나, 피부과, 성형외과에 몰리는데 의사들이 많아지면 이런 과 말고 다른 과를 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늘어날 것이라는 글들이 있다. 이런 글을 보면 일반인들이 이 정책에 호의적인 이유가 내가 보기에는 의료 체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인 것 같다. 이에 대한 설명을 통해 좀 더 의사들이 이 정책을 반대하는 이유를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일단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의사와 치과의사는 면허자체가 다른 직업군이다. 일부 일반인들 중에는 의사가 된 다음 과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치과를 선택한다고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이미 학생을 뽑을 때부터 의대와 치대를 따로 뽑고 면허시험도 다르기 때문에 의사가 치과의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또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전공과를 선택하는 과정에 대한 문제다. 인턴, 전공의, 전문의, 전임의 등등 용어도 혼란스러워서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의사 수련 과정
먼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의대에 들어가서 예과 2년과 본과 4년 또는 4년제 학부를 졸업하고 의전원에 들어가서 4년의 기간을 거치고, 의사면허 시험을 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의사국가고시에 합격을 하게 되면 의사면허가 나오게 되는데 이때부터 의사는 모든 진료와 의료술기를 할 수 있다. 따로 전공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의료일을 시작하는 의사를 일반의사 또는 지피(GP, general physician)이라고 하는데 대략 30%정도 의사면허를 가진 사람들이 바로 의사일을 시작한다. 지피들은 대개 간단한 질환을 보는 동네 의원들을 하거나 요양병원 근무, 검진을 하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미용쪽일을 많이 한다. 이 미용을 하는 분들을 흔히들 미용관련과인 피부과나 성형외과 전문의라고 잘못 알고들 있지만 실질적으로 전공과정을 거치지 않는 미용지피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알고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 전문의만이 <~~과의원>이라고 병원명을 지을수 있다. 예를 들어 내과 전문의를 가진 사람만이 <00내과의원>, 피부과전문의만이 <00피부과의원>이라고 할 수 있고, 전문의 자격이 없이 의사면허만 있는 사람(지피)은 <00의원 진료과목 : 00과>라고 표기를 한다. 예를 들면 미용지피들이 대개 <00의원 진료과목 : 피부과, 성형외과>라고 표기를 하며, 다른 전공을 가진 전문의도 <00의원 진료과목 : 피부과, 성형외과>로 표기하고 병원을 개설할 수 있다. 아니면 미용을 한다는 느낌을 주는 <00클리닉> 등도 흔히 볼 수 있다. 따라서 미용을 하는 의사들이 피부과나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경우가 많다.
만약 의사면허를 딴 후에 전공을 하기로 한다면 대학병원급 병원에서 먼저 인턴 1년을 하고, 특정과에 지원을 해서 합격을 하면 그 과에서 대개 3~4년 전공의 수련과정을 거친 후 전문의 자격시험을 보게 된다. 예를 들어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되려면 인턴 1년을 하고 이비인후과에 지원을 해서 합격을 한 후, 이비인후과 전공의로 4년을 수련받은 후 전문의 자격시험을 보고 합격을 한 뒤에서야 이비인후과전문의가 되는 것이다. 총 5년이 소요된다.
2019년 전공의 지원율
위의 2019년 전공의 지원 경쟁률을 보면 일반인들이 흔히 의사를 하면 피부과나 성형외과만 간다고 착각을 하시는데 실제 1년에 뽑는 인원은 피부과 60명정도, 성형외과 60명 정도로 얼마되지 않는다. 실제로 일반인들이 의사들이 대부분 이런과 전공을 한다고 착각을 하지만 실제로 이과를 전공할 수 있는 사람은 1년에 120명정도 뿐이다. 이 과를 전공하지 않아도 의사면허만 있으면 미용진료를 할 수 있고, 실제로 이런 과 전문의들이 아닌 미용지피들이 훨씬 많다. 또한 경쟁률을 보면 알겠지만 1:1이 넘게 지원한다는 것은 떨어지는 인원들이 있다는 의미인데 실제로 여기서 떨어지게 되면 1년 뒤에나 다시 지원이 가능하다. 실제로 인기과에 떨어지고 나서 1년 뒤에 다시 지원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과에 지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수가 지피로 나와서 일을 하게 되는데, 이때도 대부분 미용지피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1:1이 되지 않은 과들(소아과, 응급의학과, 외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흉부외과 등)로 남은 인원이 이동이 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미 많은 수의 지피가 있는데 이들 과에 갈 동기 자체를 유도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전공의를 하게 되면 고강도 수련과 업무를 하게 된다. 지금은 전공의법으로 주 80시간 이상 근무하지 못하게 막고 있지만 이전에는 100시간 넘게 일을 했고 지금도 실질적으로 80시간은 넘게 일을 하는 전공의들이 많다. 전공의들의 주업무는 대형병원에서 교수들이 하는 거의 모든 의료업무를 챙기는 것이다. 쉽게 말해 교수가 외래 진료를 보면 그 외래 진료에서 처방한 검사나 처치를 시행하고, 수술을 하면 수술에 대한 어시스트 및 전후 처리, 병동에서 입원환자에 대해 주치의로 교수가 큰 틀에서 내린 지시사항을 세부까지 다 챙기는 역할을 한다. 실질적으로 대형병원에서 교수만으로 일이 돌아가지는 않고 전공의가 많은 업무를 처리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전공의 수련상황은 이런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전공의의 주업무가 되어버려 실질적인 수련을 하며 전공을 배우는 과정이 소홀히 하게 되면서 주객이 전도되어버린 상태다. 전공의들이 수련의 질 문제를 언급하는 이유다. 또한 급여도 일하는 시간에 비하면 최저급여수준이다. 그렇다보니 미용지피를 하면 전공의의 절반도 일하지 않고 2~3배를 벌기 때문에 힘든 수련과정을 하느니 바로 지피를 하는 걸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공의 이후의 추가 수련의 과정도 있다. 알기 쉽게 내과를 예로 설명하면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내과 전문의가 되면 미용지피보다 급여가 적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전임의(펠로우, 박사로 치면 포닥같은 개념)로 서브스페셜을 추가적으로 수련하게 된다. 내과의 경우 서브스페셜 과목이 방대하여 흔히 알고 있는 소화기 내과, 호흡기 내과, 신장 내과 등의 세부 전문과목을 대개 2년정도 더 수련을 받는다(심장내과에서 부정맥을 다루는 세부과목은 5년이상 받는 경우도 있다). 보통 내시경을 다룰 줄 아는 소화기내과 전임의(펠로우)를 해야 미용지피보다 나은 대우를 받는다. 그러니까 무려 인턴 1년, 전공의 4년 (최근에는 3년으로 바뀜), 펠로우 2년 총 7년을 더 해야 미용지피보다 나은 대우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든 전공의과정을 거치고 나서 그 과 일을 계속 하지 않은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아는 신경외과 전문의 선생님은 전공의과정이 끝나고 지방흡입을 하고 있다. 외과 전공의를 하는 친구는 외과를 하는 이유가 성형외과가 인기가 있어 들어가지 못해 인기 없는 외과를 해서 외과적 술기를 익히고 전문의를 따고 나와서 성형수술을 하는 미용지피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실제로 외과 전문의들 중에 일자리가 없어서 미용지피일을 하시는 분이 많은 것으로 안다. 또한 흉부외과 전문의들도 취직자리가 없어서 하지정맥류 수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의사수가 적다고 느끼는 의사들은 없을 것이다. 많은 수의 의사들이 미용일을 하고 있으며, 보다시피 실질적으로 다 미용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수를 늘려봤자 미용지피를 늘리는 결과만 나올 것이라고 의사들은 안다. 결국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인기 기피과를 하는 전문의를 고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의사들이 수가의 실질적인 조정을 요구하는 것이 그 때문이다. 비인기과의 수가가 어느정도 보장이 되어야 그 과의 일을 할 수 있고, 그 수가가 병원에서 전문의를 고용하고, 그 전문의가 전공의들의 업무부담을 줄여주고, 그렇게 해서 전공의들이 지원을 할 수 있는 수련환경을 마련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야지 단순히 의사수만 늘린다고 그 과에 가지 않는다. 이미 넘치게 많은 미용지피 의사수만 제대로 분배가 되어도 해결될 일이라고 본다.
결국 수의 문제가 아니라 배치의 문제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피과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전문의를 더 고용할 수 있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전공의들이 단체행동을 나서는 것이 의아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전공의들이 업무가 힘들다면 전공의수를 늘리면 되는 것이니 의사수 증가에 왜 반대하는 지 모르겠다는 분들이 많다. 전공의가 힘들다고 전공의를 늘리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전공의에게 필요한 것은 동료 전공의가 아니라 전문의 선생님이다. 전문의가 있어야 전공의의 업무부담을 줄이고 실질적인 전공에 대한 수련이 가능하며, 그 전공의들이 나가서 취직을 할 일자리가 있는 것이다. 전공의가 늘어나면 좋은 것은 대형병원 뿐이다. 값싼 전공의들로 일을 돌리기 좋고 전문의 고용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전문의 고용을 회피해 와서 이런 기형적인 수련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방의 의사 부족 문제도 나는 이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의사들이 지방으로 내려갈 요인, 즉 일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의무복무같이 공공의대로 의사수를 늘려도 10년 지나면 지방에 남을 동력이 없고 다 서울 올라와서 미용지피를 할 것이다. 지방에 의사가 일할 수 있게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고 더 근본적으로는 서울공화국인 우리나라 자체의 체질 개선이 되어야 해결될 일로 보인다. 지방에 생활환경이 좋지 않아 이미 인구자체가 줄고 있다. 의사도 사람이기에 일자리만 있다고 거기로 가기에는 어렵고, 그 일자리가 그것을 뛰어넘을 만큼 매력이 있어야 한다. 실제로 의사의 페이가 서울에서 강남보다 강북이 높고, 서울보다 경기도의 페이가 더 높다. 강남의 페이가 적어도 의사들은 그쪽으로 몰리는 것은 돈보다 환경이 주는 메리트가 크기 때문이다. 지방 의사의 배치 문제도 수만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밑이 빠진 독에 물을 부어봤자 다 새고 말 것이다. 의사수의 증원이 먼저가 아니라 전문의를 고용할 수 있는 지원과 의료기관을 설립하고 전공의 수련과정의 질을 높인 후에도 의사의 수가 부족하다면 그때 논의해야 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