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주장한 존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교수를 옹호하는 글을 올려 파문이 예상된다.
박 교수는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램지어) 교수의 글을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정확한 건 말할 수 없다”면서도 “보도만 보자면 이 교수의 주장은 역사적 디테일에서는 크게 틀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발언했다.
박 교수는 그 근거로 중국 우한에 위치한 위안소에 당시 일본군이 위안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비를 세웠다는 점을 들었다.
박 교수는 “공양비는 말하자면 영혼을 위해 세워진 비”라며 “일본군이 위안부를 왜 위로했을까. 물론 강제로 끌어와 강제노동을 시킨 노예를 위로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 공양비는 위안부와 군의 관계가 일방적으로 압박 받는 존재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일본군이 폭격으로 숨진 조선인 위안부를 수습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박유하 세종대 교수. 연합뉴스
박 교수는 “위로를 받았다고 해서 피해자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니다”면서도 “징용이나 징병처럼 (위안부가) 동원당한 건 사실이지만 남성 피해자에 비해 여성 피해자들은 ‘법’이라는 강제틀의 바깥에서 동원되었다”면서 자발적 지원을 암시했다.
이어 “그런 의미에서 매춘부와 성노예 담론 모두 문제가 있다”며 “30년이나 양쪽 극단의 주장에 휘둘려 왔지만 이제 그 대립을 지양할 때가 됐다. ‘성노예’ 설을 유포·확산·정착시켜온 학자들은 아마 당혹스러울 것이고 또다시 비난과 규탄에 나서야겠지만 미국 학자까지 이 싸움에 등판하도록 만든 것은 바로 그들 자신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고 저격했다.
박 교수는 이 과정에서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을 전범 기업으로 보기 어렵다고 강변했다. 그는 “무조건 망언이니 심지어 전범 기업 교수니 할 이야기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쓰비시를 전범 기업이라고 하는 것도 문제지만 기업의 연구비가 역사·정치적 목적으로 주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도 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연합뉴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박 교수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일본 문화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 결론으로 보여진다”고 반박했다. 호사카 교수는 8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위령비를 세웠다는 사진 하나만으로 위안부가 성노예가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사고의 깊이가 얕다”고 지적했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영혼을 위로하지 않으면 산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고유 신앙 ‘어령(御靈)신앙’이 있다. 거의 모든 일본인의 마음속에 있는 종교 아닌 종교”라며 “상대에게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러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경우, 영혼의 복수가 무서워 반성의 의미에서 위령비를 세우는 경우가 매우 많다. 대표적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 때 전리품으로 조선 군인의 귀와 코를 베어 본국에 보내 ‘이령’(耳塚·귀무덤)을 만들었는데 그 앞에도 공양탑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호사카 교수는 “미쓰비시를 전범 기업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은 박 교수 의견에 불과하다”며 “전쟁 당시 행위에 대해 미쓰비시가 충분히 사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쓰비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노역에 동원했던 미국과 중국에는 사과와 보상을 약속했으나 여기에 한국인 피해자는 빠졌다. 또한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 판결을 2년 넘게 무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호사카 교수는 “램지어 교수가 작성한 논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분석 중이다. 반박하는 내용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고도 덧붙였다.
존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교수. 유튜브 캡처
문제가 된 논문은 램지어 교수의 '태평양전쟁 당시 성(性) 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이다. 지난 1일 우파 매체인 일본 산케이 신문이 램지어 교수의 논문 일부를 공개했다. 이 논문은 학술지 '인터내셔널 리뷰 오브 로 앤드 이코노믹스(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 3월호에 실릴 예정이다.
논문의 핵심은 위안부는 모두 공인된 자발적 매춘부이고 일본에 의해 납치돼 매춘을 강요받은 ‘성노예’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램지어 교수는 군대를 따라다닌 위안부는 일반 매춘부보다 돈을 더 많이 받았다고 했다.
램지어 교수는 유소년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 지난 2018년에는 일본 경제와 사회를 홍보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 훈장인 ‘욱일장’ 6가지 중 세 번째인 ‘욱일중수장’을 받았다. 램지어 교수의 공식 직함은 ‘미쓰비시 일본 법학 교수’(Mitsubishi professor of Japanese legal studies)다. 이 직함은 지난 1972년 미쓰비시가 하버드 법대에 100만 달러를 기부하면서 생긴 직함으로 알려졌다.
램지어 교수 공식 직함은 ‘미쓰비시 일본 법학 교수’다. 하버드 법대 홈페이지 캡처.
램지어 교수 논문은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카터 에커트 하버드대 한국사 교수는 7일(현지시간) “경험적으로나 역사적, 도덕적으로 비참할 정도로 결함이 있는 논문”이라고 비판했다.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역사학과 교수도 “근거 자료가 부실하고 학문적 증거를 고려할 때 얼빠진 학술작품”이라고 질타했다. 하버드대 학부 한인 유학생회(KISA)는 대학 본부에 램지어 교수의 사과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박 교수는 지난 2013년 저서 제국의 위안부를 출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책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 ‘정신적 위안자’, ‘군인의 전쟁 수행을 도운 애국처녀’ 등으로 표현했다.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박 교수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박 교수가 허위사실을 적시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으며 이 과정에서 고의성이 있었다는 판단이다.
당시 박 교수는 책에 쓴 표현이 ‘학문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3년 넘게 계류 중이다.
jjy4791@kukinews.com
https://news.v.daum.net/v/20210209061202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