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
민주당이 이번 보선에서 폭망한 개인적인 분석은 이렇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하시는 거랑 크게 다른 얘기는 없을 듯 하고요,
어쨌든 지금까지 게시판에서 눈팅을 하면서 하고싶은 말 많았지만 별 의미도 없겠다 싶어서 그냥 참았던 것들,
이참에 정리하고 가볼까 합니다. 그래서 글이 꽤 길어질 듯 합니다.
1. 악재는 한꺼번에 옵니다.
중병이라도 앓게 되면 시시콜콜한 잔병이 따라오죠.
마치 짠 듯이 우연의 일치처럼 동시에 터지지만, 사실은 속에서 곪아가고 있었던 거죠.
이번 패배는 표면적으로 LH사태 때문이지만 그 배경엔 부동산정책의 실패, 그리고 그 전부터 쌓여왔던 정권에 대한 반감이 기저에 깔려 있어요.
중도, 혹은 20대 입장에서 보죠.
저는 가장 대표적인 세 사람을 꼽겠습니다. 조국, 윤미향, 박원순.
현 정권이 친문을 중심으로 86 운동권과, 시민단체, 여성계의 연대로 이루어져 있다면 저 세 명은 각각을 상징하는 인물들입니다.
이들이 차례차례 사고를 쳤죠.
단순히 개인의 부도덕이나 비리라면 그거 정리하고 넘어가면 될 듯 했습니다.
그런 사고야 야당이 훨씬 더 많았겠죠. 집권한 기간도 훨씬 기니까요.
문제는 저 사건을 대하는 집권세력과 진보층의 태도였습니다.
부도덕, 부패에 더해서 그걸 보호하기 위해 몰상식한 태도를 보인 카르텔, 정의 공의라는 좋은 가치를 걸고 뒤로 사익을 추구해왔던 행태들이 드러났죠.
저 일련의 사태를 겪고난 20대들은 더이상 진보가 말하는 정의를 믿지 않아요.
야당은 더하지 않았냐고 항변하시지만 이제 도덕성은 선택 기준에 후순위로 밀려버렸습니다.
야당? 나쁜놈이죠. 여당이요? 나쁜놈인데다가 무능력하고 그러면서도 정의를 파는 위선집단입니다. 이게 현정부에 실망한 20대들의 마음이죠.
더이상 도덕성이 판단의 기준이 되지 않는데, 생태탕을 아무리 외쳐봐야 먹히겠습니까?
총선때 180석.. 솔직히 코로나 정국에서 정권 편 들어준 거잖아요. 그거 없었으면 진작에 찾아왔을 겁니다.
차마 그자찍은 못하겠다는 리미터가 그때는 유효했지만, LH 사태로 그게 벗겨져버린 거죠.
그리고 이제 20대는 당당히 야당을 찍을 겁니다.
민주당은 스스로 부끄러워서 민주당 지지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샤이 진보를 찾아야 하고요.
2. 민주당의 스펙트럼
제가 봐왔던 역대 민주당(그래봤자 디제이 이후지만) 중에서 가장 왼쪽에 있습니다.
물론 지지율 30이라는 수치는 무시못할 쪽수는 맞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왼쪽 끝에 다닥다닥 붙어 있어요.
정당 지지자들이 흔히 갖는, 세상을 선악의 대결로 보는 버릇 때문인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악으로 보고 몰아내는 과정을 통해
민주당은 어느 때보다도 선명성 강하고 충실한 콘크리트 지지자를 갖게 되었죠.
이걸 정당뿐만 아니라 친민주적인 커뮤니티에서도 똑같은 짓을 하다보니 사실상 민주당 당원게시판과 차이가 없어져버렸어요.
물론 그걸로 지지율 관리하는데 도움을 받기도 했겠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이 착각에 빠져버린 겁니다.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보편적이고 옳은 것이라고요.
그러니 당당하게 계몽을 하고, 니들은 역사의식이 없네, 교육을 잘못받았네, 일베네 꾸짖고 다니는 거죠.
근데요, 민주당 지지자들이 공유하는 정서와 가치관은 그냥 거기서만 통하는 겁니다. 거기라는 건 정치스펙트럼의 왼쪽 한구석이죠.
야당 극성 지지자들의, 구멍난 난닝구와 변기 수조의 벽돌 한조각에 감동받고 아빠 잃고 동생들을 챙겨야 하는 소녀가장에 눈물 흘리는 감성....
이런 거에 정서적 공감이 가능합니까?
마찬가지예요. 민주당 지지자들이 감동받는 부분 울컥하는 부분 분노하는 부분이 중도와 20대에겐 그다지 의미가 없어요.
'너는 왜 나같이 생각하지 않는데?' 라고 따져봤자 '내가 왜 너처럼 생각해야 하는데?'라는 답밖엔 돌아오지 않아요.
사실 게시판을 보면서 안타까웠던 게,
지지자들에게만 먹히는 얘기를 풀면서 중도와 20대가 자기들에게 표를 줄 거라고 착각하는 글들이었습니다.
무상급식이요? 애들 밥 안 주겠다는 오세훈이 악마라서 그때 그 애들이 표를 안 줄 거라고요?
지금의 20대는 거기에 별 감정 없어요. 그때 대부분 급식 잘 먹었어요. 당시의 서울이 급식비도 못낼 정도로 가난한 도시가 아니었잖아요.
걔들이 경험한 건 급식비를 누가 내느냐로 정치하는 어른들이 싸웠다는 거,
무상급식으로 급히 바뀌면서 겪었던 행정상의 혼란이었죠.
지금 와서 보면 보편복지와 선별복지의 관점 차이인 건데, 이걸 가지고 어느 한쪽이 악이라고 판단하겠습니까?
엠비 시즌2.
더이상 도덕성이 판단기준의 우선순위가 아닌데 오세훈에게 이명박을 씌운다고 타격이 가겠습니까?
돈 먹고 감옥간 거 다 알아요. 그리고 대중교통 시스템과 청계천을 만들었다는 것도 알죠.
걔들에게 이명박은 부패한 정치인이지만 동시에 유능한 행정가이기도 한 거예요.
엠비 시즌2라고 조롱해도 '그럼 시장 역할은 꽤 하겠네?' 라는 기대치가 심어지는 거죠.
오세훈 시장이 중간에 잡혀가도 잘못을 저질렀으면 감옥가야지... 할 겁니다.
자기들이 뽑았으니 인물에 충성하면서 지키겠다고 울고불고 안해요.
필요하면 가져다 쓰고, 잘못하면 손절하는 거예요. 그게 이상한 게 아니잖아요.
당신은 탐욕에 투표하지 않았다, 역사에 부끄럽지 말자 등등
민주당 지지자에겐 먹히는 감성이 전혀 안먹혔어요. 앞으로도 안먹힐 겁니다.
노무현.
제일 빡치는 부분입니다.
민주당에서 문제가 터지거나 표를 구걸할 때마다 노통을 끌어오는 거요.
이럴수록 노통에게 민주당의 위선, 부패, 무능이 덧씌워집니다.
20대에게 노무현은 조국이고, 윤미향이고 박원순이 되어가고 있어요.
더이상 노통을 팔아봤자 도움되지 않고 표가 되지 않는 상황이 오면 그때서야 내려놓겠죠.
그때의 노무현은 젊은 세대에게 얼마나 망가져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민주당이 다시 민심을 찾아오고 선거에서 이길까요?
스펙트럼을 넓혀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지지자들이 하는 얘기 귓등으로도 안듣습니다.
적어도 지금의 야당은 얘들 얘기는 들어주죠. 연단에 올라가서 떠들도록 만들어주죠.
태극기 노인들도 지들이 안먹힌다는 거 알아서 빠졌잖아요.
어제 마지막 유세에서 오세훈 바로 전에 연단에 올라간 학생 연설 한번 찾아보세요. 보기 싫어도 지피지기로 한번만 보세요.
사대강으로 엠비 놀리고 오세훈을 오세이돈으로 조롱하던 아이가 어떻게 변해서 오세훈을 지지하게 되었는지 명쾌하게 얘기하더군요.
그게 20대의 정서예요. 일단은 들어보고 20대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판단하도록 하죠.
그리고 운동권, 시민단체, 여성계 말인데요.
운동권은 반시장적인 실험으로 내 삶을 파괴하는 무능력한 아마추어밖엔 안됩니다. 그들 관점에서는요.
시민단체? 연줄로 빨대 꼽아서 세금 빨아먹는, 조선말기의 서원 같은 거예요.
여성계... 페미니즘이 젊은세대를 어떻게 분열시키고 서로간에 증오를 키웠는지 그들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죠.
이 세 집단이 현 정부에 붙어있는 한 떨어져나간 민심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야당이 예전처럼 멍청한 짓을 하면야 어찌어찌 이길 수도 있겠지만, (집권당 메리트도 있고요)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걔들은 되게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더군요.
20대가 보수화되었다고 보진 않아요. 그냥 반민주당 성향입니다.
하지만 이런 표심이 계속 유지된다면 가치관이 그쪽에 맞춰지겠죠.
다만 정치를 선악의 대결로만 보는 어른들의 실수를 걔들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