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마지막 글

배에힘쿡 작성일 22.01.09 16: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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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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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제 가족과 측근들에 대한 의혹으로

나라가 어지럽습니다. 부끄럽고 민망합니다.

몰랐다고, 모함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냐고 따져 묻지도 않겠습니다.

'노무현'답게 하겠습니다

잘못이 있으면 누구든 벌을 받아야 하며,

전직 대통령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제 제가 할 선택으로 상처받을 이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습니다.

어떤 꾸중과 질책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 서운하고 노여운 마음, 부디 저의 마지막 진심을 담은 이 편지로 조금이라도 달래지기를 빕니다.

누군가 저의 인생을 '싸움'이라는 한마디로 정의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정말로,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정치인이 되기 전 인간 '노무현'의 삶도 그랬습니다.

그 최초의 상대는 '가난'이라는 녀석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난'은 단지 불편한게 아니라, 사람을 비겁하고 치졸하게 만드는 고약한 놈이었습니다.

어쩌다 먹을거리가 하나 생기면, 형제들이 볼새라 저만의 비밀 장소에 감춰두고 먹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마음에도 그게 옳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너무나 배가 고파 나눠 먹을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집이 풍족하여,  화기애애 식탁에 둘러 앉아..  음식을 나눠 먹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 저의 꿈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 가난과의 긴 싸움을 끝냈을 때, 저는 어느새 처자식을 거느린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세무 전문 변호사로 돈을 좀 만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기뻤던 건,  제 아이들이 어린 날의 저처럼 먹을걸 숨겨두고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양보해라, 나눠 먹어라, 힘주어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성공한 사람들과 어울려 요트도 타고 멋도 좀 부렸습니다.

안사람은 그 시절을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종종 추억하곤 합니다. 정말로 이제 행복할 일만 남은 것 같았습니다.

그 행복은...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그 나이가 되도록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눈앞에서 나와 내 가족의 목을 죄는 가난과 싸우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그런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몸은 풍요와 여유에 취해갔지만, 눈에는 자꾸 그런 것들이 밟히기 시작했습니다.

곧,  세상엔 수없이 많은.. ‘노무현’들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죽어라 이 악물고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래서 먹을걸 숨길 수 밖에 없는 건.. 예전의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럴까.  왜 나라는 성장하는데, 가난한 이들은 왜 학교에조차 갈수 없는 가난을 자식에게까지 대물림하게 되는가.

점차 사회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경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왜곡된 역사가, 도처에 널린 반칙과 특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뒤늦은 깨달음은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것들을 외면하고,  저 혼자 소시민적 행복을 느끼며 살 수는 없었습니다.

그 후 저의 삶은 아시는 대로입니다.

인권변호사가 되었고, 국회의원이 되었고, 청문회에 나가 이름도 얻었고, 그리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늘 예전의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

돈이 없고 힘이 없어 세상으로부터 매맞고 짓밟히는 이들 편에 서고자 했습니다.

그 눈물을 멈추게 할 힘이 내게 없다면, 최소한 내 손등으로 닦아주기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두들 ‘대세’니 ‘주류’니 하는 것에 우루루 몰려갈 때, 원칙을 지키며 버티려 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비웃음 살때도, 그 바위가 잘못된 것이라면 내 몸이 박살나더라도 부딪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그 바위가 잘못되었다는 표시라도 나지 않겠습니까.

저를 굉장한 '싸움꾼'처럼 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았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겁도 많고 무서운 것도 많은, 그런 보통 사람입니다.

'3당합당'에 반대하고 '재야의 길'을 선택하며 큰소리는 쳤지만, 사실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따논 당상이라던 '종로'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갈 때도, 대통령 당선 확정을 통보받고도, 다리가 떨려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할만큼 두려웠습니다. 제가 대담한 강골이었다면 안 그랬을 것입니다.

그렇게 겁이 나도,  그런 선택들을 한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힘 없다고 짓밟히지 않는 세상,

한번 가난하면 죽을 때까지 가난한 게 아니라 열심히 노력하면 일어날 수 있는 세상,

명백한 부정에 타협하고 고개 숙여야 살아남는 세상이 아니라 개인의 양심에 따라 '이의 있습니다.!' 라고 외칠 수 있는 세상에

내 아이들을 살게 해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저를 대통령으로 뽑아주신 국민의 뜻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노무현은 짓밟혀도 됩니다. 무너져도 됩니다.

하지만 노무현을 지지했던 이들과, 그들이 꾼 꿈은 짓밟히고 무너져선,  안 됩니다. 그 꿈은 이 나라의 미래입니다.

우리의 아이들 뿐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그 아이들의 아이들도 살아가야할 나라입니다.

언제까지 대결과 분열을 가르칠 것입니까.

언제까지 증오와 반목을 가르칠 것입니까.

언제까지 특권과 반칙을 가르칠 것입니까.

사실은 모두가 불안하고, 또 불행하지 않습니까.

할아버지가 된지 오래지 않습니다.

자식들보다 더 귀엽습니다.

그애들이 자라나고 시집도 가는 걸 왜 보고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늘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해 왔습니다.

변호사 시절의 안락한 삶보다 눈 앞의 부조리에 맞서는 것이,

국회의원 한번 더 하는 것보다 지역주의 보스정치에 저항하는 것이,

대통령 되는 것보다 원칙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2002년, 저와 여러분이 함께 꾸었던 꿈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지키는 건.. 이 길 뿐입니다.

너무 슬퍼하거나 미안해하지 않기 바랍니다.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의 운명입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작별인사 하겠습니다.

대통령이었음보다, 이 아름다운 나라의 국민이었음이 더 큰 영광이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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