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출처 https://cm.asiae.co.kr/article/2017112111234529063
21일은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신청한지 20년이 되는 날이다.
2000년대 초반 등장한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는 국민들의 '과소비'를
주요 요인으로 잡고 이후 모두가 근검절약하며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해서 극복했다는 식의
교육이 성행했다.
지난해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런 내용을 담은 초등학교 게시판의
교육자료 사진이 나돌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말로 국민들의 과소비가
외환위기를 몰고 왔던 것일까?
이를 증명할 객관적 지표는 전혀 없다.
과소비가 국가 외환보유고를 결단 낼
정도로 발생했다면 앞서 소비자물가가
엄청나게 뛰었겠지만 물가상승률은
외환위기 이전인
1995년 4.5%,
이듬해 4.9%,
1997년에도 4.4%에 그쳤다.
오히려 외환위기 이후인 1998년에
물가상승률이 7.5%를 기록했고
이는 원화 환율 급락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 영향이 컸다.
가계저축률도 높았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도
우리나라의 가계저축률은 23.2%로
현재의 거의 10배에 달했다.
국민들이 무분별하게 과소비했다는
증거는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다.
오늘날에는 국민들의 과소비같은 요인보다는
당시 수출주도형 아시아 개발도상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원인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즉, 외자를 많이 유치하고 자국화폐 가치는
평가절하시킨 상황에서 대량의 수출을 통한
무역수지 흑자로 단기간에 경제발전을 이룩한
시스템 자체의 한계였다는 것.
이 체제는 잘 유지만 되면 자기자본이 적은
가난한 국가들이 외자를 동원해
자국 생산기술을 올리며
이렇게 번 돈을 다시 R&D에 투입하는
선순환체계를 만들 수도 있지만,
투기자본에 의해 한꺼번에
해외자본이 빠져나가면
외환위기가 일어날
위험성이 높은 체제였다.
당시 대기업들의 부실화도 심각했다.
1998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총 자산 기준으로 30대 기업집단을
지정해 발표했을 때, 이들 기업들의
평균 부채비율은 자기자본 대비
518%를 넘었다.
일부 기업들의 경우에는
부채비율이 1000%를 넘어서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위 '관치금융'으로
이 부실기업들과 연계된 시중은행들로
위기가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결국 외환위기는 거시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기업부실, 외환정책
동아시아 전반의 외환위기 등이
겹쳐서 일어난, 여러 요인들이
함께 작용해 일어난 사건이었다.
단순히 초등학생들에게
'과소비'의 위험성에
대한 예시로 쓰기엔
아주 복잡한 사건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