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왜 날리일까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변

땅콩까라멜 작성일 24.08.20 12:35:21 수정일 24.08.20 12: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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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런승만  띄우기 “민족배신자들의 구세주” (런승만이 욕처먹는거중 하나는 민족배신자들을 요직에 등용했고 그 사람들이 권력과 부를 현대까지 가져왔음)

 

2.다까끼 미화 (런승만의 업적을 승계하여 민족배신자들"본인포함" 의 구세주가 됨 요직에 민족배신자들 대거 등용

 

3.민족배신자들 눈에 임시정부는 가시같은 존제 김구는 테러리스트로 격하시키고 일제강점기의 정당성을 띄워야 자기들의 정당성이 생김 

 

그동안 잠잠했는데 왜 이번에 유난을 떠냐면 석열이가 뒤를 받처주니까 그럼 왜 석열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느냐? 의 의문이 생길 것이다

석열가 민족배신자 후손인가? 에 대한 물음은 나무 위키내용을 검토해보라 그당시 일제강정기때 요직에 앉은 사람들중 애국자가 있는지 생각해 보라 해방후 승만이의 등용중 민족배신자의 비율을 생각해 보라

 

1907년 관립한성영어학교[2], 1909년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했다. 1915년 도쿄고등상업학교 졸업 후 조선은행(조선은행은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을 보조하는 대표적인 식민지 금융기구로, 일반 상업은행 업무도 겸하면서 조선인 일반은행이 성장하는 것을 차단하였다. 또, 조선은행권 발행으로 조선에서 식민 통치 비용을 조달하고 일제의 대륙 침략 정책 수행을 위한 도구로 이용했다.)에 입사하였으며, 대구경일은행(大邱慶一銀行) 취체역 지배인, 한일은행 업무과장·서무과장, 동일은행[3] 취체역 지배인, 조선상업은행 두취[4] 등을 역임했다.

광복 후 미군정청 재무부장, 조선은행 총재, 흥업은행·상업은행·서울은행의 은행장을 지냈으며, 4.19 혁명허정 내각에서 재무부장관을 지냈다.

조선정구협회 회장, 금융통화운영위원, 서울은행 고문, 경성전기주식회사 대표이사, 대한생명보험주식회사 이사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75년 6월 26일 사망했다.

 

어릴때부터 일본과 일본 왕을 숭배, 찬양하는 사상교육을 받은 아버지 밑에서 자란 석열이가 정상적인 민족관을 가지고 있을까? 그걸 찍은 2찍은 놀랍지도 않다 다까끼 딸도 뽑아주는 마당에…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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