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녀석입니다. 기억하시는 분이 있으실런지 모르겠지만...
몇일동안 보이지 않다가, 오늘 오전에 녀석이 동네 놀이터를 기웃거리더군요. 보니까 옆에 어떤분이 참치캔 하나를
따서 먹으라고 놔둔것 같은데 그것도 먹지도 않고... 간만에 봐서 반가와 바로 옆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소세지 두개
를 사들고 나왔는데... 다시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더라구요...
그래서 포기하고 오늘 일과를 끝내고...
방금전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집에 돌아오는데.. 가로등 불빛을 피해 주차된 자동차 그림자에서 그녀석이 다시
앉아있었습니다. 그래서 아까 오전에 사뒀던 소세지를 까서 주려고 했더니, 이녀석 왠일인지 지난번과는 다르게
냄새만 맡을 뿐 소세지를 먹을 생각을 안하네요. 아니 소세지의 냄새를 맡는다기 보다 내 손에 코를 대고 내 냄새를
맡는듯 했습니다. 그리고는 전과 같이 저에게 몸을 부벼대더군요. 소세지좀 먹여보려 했지만 결국 몇번 씹어만 볼
뿐 먹지 않았습니다.
이녀석 어딘가 아픈건지... 가만 보니 몸도 지난번에 비해 야윈것 같기도 하고...
그저 불빛을 피해 그림자속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거나, 내게 몸을 부벼대거나 할뿐 더이상 먹으려 하지 않네요.
그래서 저도 오랜만에 놀이터 그네에 앉아서 같이 녀석을 바라봤습니다. 녀석 그저 제 앞에서 뒹굴거나 풀을 입으로
뜯어먹는 시늉을 할뿐... 어디론가 떠나지 않네요. 지난번에 함께 있는것을 보았던듯 한 조금 더 큰 고양이가 바로
옆을 지나가는데, 오히려 이번엔 큰고양이를 피하는 듯 한 눈빛도 보이고...
그네에서 일어나 좀더 편한 자리로 옮겨 앉으니 녀석 또 졸졸 저를 따라옵니다. 그리고 가만히 있으니, 녀석 제 발
끝에 몸을 웅크리고는 눈을 감고 슬슬 졸기 시작합니다. (고양이도 밤되면 자는가보네요) 하지만...
저도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에 이제 곧 집에 들어가서 쉬어야 하는데...
뭐 녀석이 저를 못들어가게 붙드는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내가 움직여도 눈을 뜨고 날 바라보는 이녀석을 그냥
두고 집에 돌아가는게 쉽지 않더군요... 결국 조금씩 조금씩 집 방향으로 걸어 나오니 녀석도 조금씩 조금씩
날 따라 나오다가, 결국 놀이터를 벗어나지 않고 내가 떠나는것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정말 몹쓸짓을 해버린것 같습니다. 처음에 만났을때, 두번째 만났을때는 그저 이 고양이와 제가 뭔가 인연이
있을것 같다며 왠지 좋았었는데... 마치 '어린왕자'에서 어린왕자가 장미와 만난것처럼...
사막에서 여우와 만난것처럼... 뭔가 신비한 만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길들인것에는 책임이 있어야 한다는 여우의 말을 잊고 있었나봅니다...
그저 집에 데려오지 않고 자유롭게 살도록 내버려둔것만으로 그 책임을 피할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난 길가를 돌아다니는 많은 고양이들 가운데 이녀석을 한번에 찾아낼 수 있고, 녀석도 저를 알아보고는 제게 다가와
몸을 부벼대는... 이 고양이와 저는 서로를 길들여버렸나봅니다... 곧 다시 만날 수 있겠지만...
녀석을 밖에 그대로 두고 들어와야 하는게.. 이리도 미안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할 줄 알았다면...
그저 지나가는 수많은 길고양이들 중 한마리로 그냥 내버려둘걸...
이녀석과 헤어지는게 참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