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뜨르비행장 :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소재.
메밀꽃밭 창백한 일제의 잔재
알뜨르 = 알(아랫쪽) + 드르(넓은 들판) 가 합쳐진 제주어 : 아랫쪽의 넓은 들판
알뜨르비행장은 일본 해군이 1931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하였고,
1937년 중일전쟁 초기 폭격기지로 사용하면서 1945년 일본 본토결전 작전준비 비행장으로 이용되었다.
이 시설물은 당시 일본군들이 제주도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건설한 전투기 격납고이다.
현재 19기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1기는 잔재만 남아 있으며, 이 가운데 10기가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일본 해군 공문에선 매입이라 표현하고 있으나 고작 100일만에 약 15만평의 거대한 땅을 매입하는 건
강제적 수탈이 아니고서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1933년 일본제국 해군에 의해 임시활주로 형식으로 최초 조성됐으며 당시 규모는 60,242평이었고,
활주로는 1400m x 70m 였다.
1937년 14만7258평을 추가 매입수탈하여 확장, 1차 완공 당시 규모가 약 20만 평에 이를 정도로 넓어졌다.
1937년 상하이 전투(제2차 상하이 사변) 당시 일본해군의 95식 육상공격기(G2H1) 6대와
96식 육상공격기(G3M) 6대가 폭격거점으로 사용했다.
즉, 중일전쟁 당시 중국으로 향하던 전투기와 폭격기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 곳이 바로 이 알뜨르 비행장이다.
덕분에 알뜨르 비행장이 중국이 국가적으로 가장 치를 떠는 난징 대학살의 배후거점으로도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1945년부터 일본 해군 901 항공대가 전진기지로 사용했다.
확장을 거듭해서 해방 시점엔 약 80만평에 달했으나 땅만 넓다 뿐이지,
전쟁 말기의 모자란 자원과 지역 주민 강제 동원이란 비효율적 방식으로 비행장은 물론 지하갱도 공사까지 하였고,
나중엔 그 모자라는 자재나 인력도 결전기지 공사에 쓰다보니 완공도 못한 채 패망하게 된다.
알뜨르비행장 활주로
알뜨르비행장터 주변에는 한국전쟁 당시 전쟁포로수용소가 있었습니다.
현재도 당시의 잔재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반중, 친중 포로구역이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알뜨르비행장 옆의 미군 한국전쟁 포로 수용소
1969년 항공지도 : 활주로를 중심으로 왼편 수용소 건물, 오른편에는 격납고들이 즐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