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세계 최고의 골잡이던 바티... 그는 9년동안...이탈리아 피렌체를 연고로 하는 피오렌티아의 보랏빛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며 피렌체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던 선수였습니다.
그러다 피오렌티나가 2부리그로 떨어지자 수많은 명문클럽들이 그에게 엄청난 몸값을 제시하며 유혹을 했지만...그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피오렌티나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돈만을 좇던 현대 축구판에서 바티의 행동은 분명 쉽지 않은 것이었고 그의 결정은 피오렌티나 팬들에게는 크나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후 그는 놀라운 골 폭풍으로 다시 1년만에 피오렌티나를 1부리그로 복귀시키고..'바티골'이라는 별명까지 얻게되었습니다.
그러나 서른이 넘도록 아직 우승컵을 하나도 안지 못한 '바티골'은...피오렌티나 팬들에게 눈물을 머금고 이적을 결심합니다. 언젠가는 다시 제2의 고향인 피렌체...피오렌티나로 돌아올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피오렌티나 팬들 역시도 그를 놓아 보냅니다.
우승을 위해 바티골이 선택한 클럽은...이탈리아 수도를 연고로 하는 'AS로마' 이적후 수많은 골을 뽑아내며 로마의 우승을 일궈내 자신의 경력에 드디어 챔피언이라는 한줄을 기록하게 되었지만... 바티스타는 우승을 만든 AS로마의 레전드로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이유는..바티골이 로마로 이적후.. 처음으로 친정인 피오렌티나를 상대로 로마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서게 되는데... 그는 경기 내내 어떠한 환호도 웃음도 흘리지 않은 채 경기에만 몰입하며.... 비록 적으로 만났지만 피오렌티나 팬들에게 예의를 지키겠다는 의미가 엿보였습니다.. 피오렌티나 팬들 역시도 그에게 박수를 보내며 그에 대한 애정이 변함없음을 보여주기도...
그후..그는 그날의 결승골이 된 첫번째 골을 집어넣고.. 바티골은 화려한 골 세리머니는 커녕 고개를 푹 숙인 채 자기 진영으로 돌아왔습니다.. 바티가 떠난후 부진에 허덕이던 친정팀을 상대로 골을 넣었다는 미안함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수 없었던 바티..... 이탈리아 언론에서는 비타골에게.."그라운드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라는 수사를 사용하기도..
피오렌티나 팬들은 자신들의 홈구장 앞에...자신들의 영원한 레젼드 바티의 동상을 만들어 지금도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병근...
그는 바티골이 피오렌티나에 뛴 9년보다 더 많은 10년이 넘게 우리 수원과 함께 한 선수입니다. 한클럽에서 10년 넘게 뛴 선수가 세계축구판에 과연 몇명이나 있을까요? 그것도 한클럽에서 309경기를 뛴 선수가..
우리가슴에 있는 별 세개는 물론..두번의 아시아 챔피언..그리고 수많은 국내외 컵대회 우승의 현장에는 항상 그가 함께 했습니다... 그는 비록..고종수 선수나..서정원 선수...김대의 선수처럼 화려함 몸 놀림으로 우리를 매료시키던 선수는 절대 아니지만... 항상 묵묵히 자신의 역활을 충실히, 수원의 고참 선수로 수원을 뒤에서 받쳐주던 선수였습니다. 몇년전..경기중 정신을 잃고 병원으로 이송되는 도중 정신을 차린 이병근 선수... 나는 여기 있으면 안된다고..나는 경기장에서 뛰어야 한다며 눈물을 흘리던 그 선수.. 당시 우리 많은 그랑들이 그의 프로의식과 수원에 대한 사랑에...감동을 했습니다.
비록 여러 가지 상황과 맞물려 대구로 이적하여 수원의 푸른 유니폼이 아닌... 대구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뛰고있지만..
그의 속은 언제나 수원의 푸른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부디 남은 선수생활...대구에서 잘 마무리 하시고... 언젠가는 꼭...우리 수원에서 은퇴경기라도 하면서.. 당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정식으로 ,당신을 떠나 보내고 싶습니다.
경기후 친정팀을 상대로 골을 기록하여 미안함인지.. 수원팬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인사하는 모습이 아닌... 당신의 그 서글 서글한 눈 웃음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