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로스앤젤레스, 김형태 특파원] 지난 몇 년간 미국의 야구광 사이에서는 한 가지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마구(魔球)'를 던지는 투수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들은 당시 인터넷에 떠돌던 마쓰자카 다이스케(26.세이부 라이온스)의 투구 동영상을 목격한 사람들이었다.
마쓰자카가 마구를 던진다는 소문은 이제 정설처럼 굳어지고 있다. 마쓰자카의 마구를 추적해 칼럼을 쓴 인물만도 한두 명이 아니다. 팬들 사이에 인식되고 있는 마구의 정체는 '자이로볼(Gyroball)'이다.
자이로볼의 기원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과학자인 히메노 류타로와 데즈카 가즈시가 공동 저술한 책 '기적투의 비밀'에서 자이로볼은 처음 공개됐다.
히메노와 데즈카는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수 천 번에 걸친 시뮬레이션 결과 자이로볼이 실제 야구에서 구사할 수 있는 공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를 위해 수많은 수학공식과 그림을 동원, 자이로볼 투구법을 상세히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자이로볼을 던지는 법은 다음과 같다. 우완투수의 경우 오른손으로 공의 양쪽 표면을 직구 그립으로 잡는다. 무엇보다 딜리버리 순간 투수의 엉덩이와 공을 던지는 어깨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야 한다.
오른 어깨가 회전할 때 손가락은 공을 채지 말고 끌어 당긴다. 손목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180도 가까이 회전하며 공을 던진 뒤 손바닥이 3루 베이스를 향해야 한다. 마치 우완투수가 스크루볼을 던지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다만 마지막에 공을 놓는 손가락이 스크루볼과 달리 검지여야 한다. 스크루볼은 중지로 마무리 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론대로라면 이 공을 칠 수 있는 타자는 아무도 없다는 게 이들 과학자의 주장이다. 공의 회전이 워낙 심해서 타자가 방망이 중심에 맞히려는 순간 배트 주변부에 맞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슬라이더의 원리에 컷패스트볼을 합쳐놓은 듯한 효과를 발휘하는데 공의 낙폭이 엄청나다고 한다.
자이로볼 이론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실제 이런 공을 던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저 일본 투수들이 가끔씩 구사하는 슈트(리버스 슬라이더)의 변종일 뿐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문제의 그 동영상은 달랐다. 마쓰자카의 투구폼과 그립이 자이로볼의 그것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것이다. 이 동영상은 돌고 돌아 한때 미국 최대 포털 사이트인 야후닷컴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에서 자이로볼을 실제 던진 투수는 지금까지 없다. 그런 공을 들어본 적도, 구경한 적도 없는 투수가 대다수다. 그러나 자이로볼의 비밀에 팬들의 호기심은 극에 달했다.
심지어 직접 팔을 걷어붙이며 시험에 나선 팬도 있었다. 고등학교 야구팀 코치로 재직 중인 친구를 찾아가 자이로볼의 원리와 던지는 방법을 설명하고 테스트를 요청했다. 해당 고교 에이스를 상대로 시험한 결과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고 한다.
10분 정도 자이로볼을 연습해본 이 투수는 한 연습경기에서 이 공을 구사해봤는데 완벽하지 않은 투구폼에서 나온 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효과를 나타냈다.
오른손 타자의 몸쪽을 향해 직구처럼 날아오더니 홈플레이트 안쪽 코너를 스치면서 1루측 덕아웃을 향해 갑자기 급회전했다. 타석에 섰던 타자는 몸쪽으로 날아오는 공을 피하려다 타이밍을 놓친 뒤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을 향해 헛스윙에 그쳤다.
보통 커브를 제대로 구사했을 때 낙폭은 6인치(약 15cm) 정도, 스플리터의 경우 1피트(약 30cm) 정도다. 그런데 대충 시험해본 자이로볼의 낙폭은 믿거나 말거나 일지 모르나 무려 3피트(약 90cm)에 달한다고 한다. 공의 낙폭도 낙폭이지만 회전속도가 가히 총알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자이로볼에 대한 입소문이 얼머나 대단했는지 나중에는 커트 실링도 그 구질의 존재 여부에 관심을 나타낼 정도였다.
하지만 '마구의 주인공'인 마쓰자카는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는 지난 3월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당시 한 미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아니라 한신 타이거스의 베테랑 좌완 호시노 노부유키가 이 공을 한 번 던져본 적이 있다"거나 "만화에서나 나오는 얘기 아니냐"며 답변을 회피하기 일쑤였다.
마쓰자카와 자이로볼에 대한 미국 야구계의 관심은 그의 메이저리그행이 임박한 요즘 절정에 달한 듯하다. 그가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을 경우 말로만 듣던 '전설의 구질'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돼 있다.
지난 80년대 유행이 된 SF볼 이후 야구에서 신 구질은 나타나지 않았다. 스플리터 하나로 브루스 서터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로저 클레멘스는 선수생활을 10년이나 연장했다. (실제 구사할 수 있다면) 마쓰자카는 이 공을 미국 무대에서 얼마나 자주 던질지, 무엇보다 자이로볼은 과연 야구계에 새로운 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